외국인 가사도우미 ‘조정훈의 오발탄’

박송이 기자

최저임금 적용 배제 법안에 비난 여론 확산

지난해 6월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여성들이 가사노동자법 안착과 활성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지난해 6월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여성들이 가사노동자법 안착과 활성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주간경향] 지난 3월 21일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최저임금 적용에서 배제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을 적용하도록 한 가사근로자법 제6조 제1항에 “외국인 근로자인 가사근로자는 최저임금법 적용이 제외되는 가사사용인으로 본다”라는 단서 조항을 신설했다. 현행법상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하는 비전문인력 중 방문취업 동포(H-2)는 가사도우미 등 가사서비스 분야 취업이 가능하다. 방문취업동포가 아닌 일반 고용허가인력(E-9)은 의사소통이 중요한 서비스업 특성 등을 고려해 가사서비스 분야에 취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조 의원의 법안은 내국인과 중국동포 중심의 가사노동 고용시장이 고용허가제 대상인 16개국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확대 허용되면 이들을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 의원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월 100만원 이하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되며, 그 결과 저출생 및 여성 노동자의 경력단절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안이 발의되자 당장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과 가사노동 저평가를 우려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비난 여론이 들끓으면서 공동발의에 이름을 올렸던 김민석·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발의에서 빠졌다. 조 의원은 ‘의원 10명 이상 동의’라는 법안 발의 최소 요건을 채우지 못해 법안을 철회했다. 다음 날 권성동·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추가로 공동발의자에 이름을 올려 같은 내용의 법안을 다시 제출했다.

오세훈 시장은 조 의원 법안에 찬성

오세훈 서울시장은 조 의원의 법안에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오 시장은 지난해 9월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육아도우미 정책을 건의했다. 당시 오 시장은 홍콩과 싱가포르에서는 월 38만~76만원 수준에서 외국인 육아도우미를 고용하고 있다며, 한국에도 도입된다면 출산율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월 23일 자신의 SNS에 “(법안에 대해) 일부에서 ‘외국인 임금 차등 지급은 차별’이라거나 싱가포르, 홍콩, 일본 등 ‘이미 도입한 나라에서 효과가 미미했다’는 반대 논리를 펴고 있지만, 독보적인 세계 최악의 저출산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포기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과거라면 주저했을 모든 파격적인 방안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적용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파격이 아닌 반인권적이고 성차별적인 데다 시대착오적인 접근이며 저출생 완화에 대한 효과도 없을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주민센터 ‘친구’의 이진혜 변호사는 “외국인 가사노동자에 대해서만 최저임금 적용 제외를 한다는 것은 근로기준법, 헌법상 평등권에 위배되는 조치다”라며 “기존에 중소기업중앙회 등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차별적인 임금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지만, 이는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특히 돌봄노동을 하는 이주여성 노동자는 인권침해적 상황에 더욱 취약하다. 이 변호사는 “국제노동기구(ILO)는 2016년 ‘가사 이주노동자 보호’라는 연구에서 이주노동자가 성별·인종·민족·출신국가 및 사회적 지위에 따른 불평등으로 인해 임금체불, 장시간 노동, 직접 계약 원칙의 위반, 여권 압수,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적 자유의 침해, 굴욕적인 대우와 폭력, 강제노동 및 노동 착취를 위한 인신매매 등 인권침해적 상황에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말했다.

성차별적·계급차별적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법안에 대해 “한국의 저출생 문제 원인을 여성의 가사노동 부담에서 찾고 그 부담을 아주 저렴하게 이주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라며 “가사노동자가 대부분 여성임을 감안할 때, 이주 여성은 가사노동 기계로, 국내 여성은 출산의 도구로 바라보는 성차별적 발상이다”라고 지적했다. 비장애인이면서 일정한 재산이 있는 여성들을 출산의 대상으로 보고, 가사는 이주여성의 값싼 노동력으로 대신하겠다는 발상이라는 비판이다. 명숙 활동가는 “미국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는 ‘내니’의 얼굴은 아시아계, 동양인이다. 한국에서도 이를 똑같이 하겠다는 것”이라며 “여성에게 가사노동, 돌봄노동이 전가되는 한국사회의 문제적 현실은 그대로 둔 채, 여성 내부를 갈라치기 한 후 정주여성과 이주여성에게 각각 부담을 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여성을 동등한 사람으로 바라본다면 이러한 안이 머리에서 나올 수 없다”라고 말했다.

가사근로자법 무력화

가사노동에 대한 저평가도 문제로 지적된다. 2022년 1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주최로 <초고령 사회, 모두의 괜찮은 돌봄을 위하여-돌봄, ‘반값 노동’에서 ‘괜찮은 일자리’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발표된 ‘우리나라 돌봄노동은 얼마나 저평가되었는가’(함선유·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는 한국의 돌봄일자리 노동환경을 유럽·미국 등과 비교해 분석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돌봄직-비돌봄직 간 임금 격차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더 컸다. 직종별로 차이는 있으나 돌봄직은 비돌봄직에 비하여 시간당 임금이 낮을 뿐만 아니라, 불완전 고용에 따른 저임금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사 및 돌봄 일자리에 대한 저평가가 사회적 문제인데, 여기에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하자는 주장은 가사 및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더 후퇴시킬 수밖에 없다.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조정훈 의원이 말하는 가사도우미를 보면 집안에서 살림도 하고 아이도 돌보고, 환자가 있으면 환자도 돌보는 가정 내 전천후 돌봄노동자다. 그렇게 하는데 임금이 100만원이 안 된다는 건 이 노동은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사노동 자체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라면서 “외국인 가사노동자에 대한 임금을 이야기했지만, 결국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다. 결국 내국인 가사노동자들에 대해서도 그 정도의 임금을 받으면 되는 일이라고 보는 시각, 가사노동 자체에 대한 폄하가 깔려 있다”라고 말했다.

가사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가사근로자법’을 무력화시키는 법안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가사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늘 권리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된 가사근로자법은 일정한 요건을 갖춘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을 정부가 인증하고, 여기에 고용된 가사노동자의 최저임금, 4대 보험, 퇴직금 등의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상태다. 최영미 위원장은 “현재 36개 인증기관이 400~500명을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가 정착되는 속도가 느리다고도 하는데, 우리는 이 법이 자리 잡는 데 3년은 필요하다고 봤다. 홍보도 부족하고 정부 인증기관에 대한 인센티브도 부족하다. 사례가 3년 동안 쌓이게 되면 이후에는 확산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고용을 확대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고용노동부는 조정훈 의원 법안과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으며, 가사노동법의 적용에 따를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히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 ‘산업현장과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고용허가제 개편방안’을 발표하면서 올해 상반기 중으로 가사근로자법에 따라 공인을 받은 서비스인증기관이 한국어 능력이 검증된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는 시범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계획이 아직 수립된 것은 아니다”라며 “현행 가사근로자법에 따라 인증기관에 고용된 근로자에게는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고용허가제 개편방안에서도 가사근로자법에 따른 인증기관 방식을 검토한다고 한 만큼 현행 법체계에 따라 외국인노동자도 기본적으로 가사근로자법 적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저출생 대책 효과 입증 안 돼

조정훈 의원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의 사례로 언급한 싱가포르와 홍콩은 한국을 제외하고 아시아에서 합계출산율이 가장 낮은 국가다. 저출생 대책으로 내세웠지만,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고 접근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많다.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근시안적 접근이다. 저출생 문제는 우리 사회에 구조적 문제가 집약돼 있다. 우리보다 경제 수준이 덜 발달한 국가의 노동자들을 무조건 데려와 우리 사회에서 합의한 최저임금 기준마저 다 깨가면서 가사나 돌봄을 그들에게 떠넘긴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정책에 대한 접근이 너무 부실하다”라고 지적하며 “가사나 보육을 부모가 하기 싫어서 다른 이에게 떠넘기고 싶어한다는 생각부터 잘못됐다. 남자든 여자든 모두 아이도 키우고 가사도 하고 커리어도 추구하면서 적정 수준으로 일과 생활을 양립해 평화롭게 살고 싶어한다”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저출생 문제는 노동시장 문제를 풀어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 보육서비스의 종료시간과 부모의 퇴근시간이 일치하는 것처럼 노동시간의 지속적 단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양 교수는 “아직은 부모 손이 필요한 일정한 연령대의 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의 노동시간을 항상적으로 줄여줘야 한다. 외국은 초등학교의 하교시간, 보육서비스의 종료시간, 부모의 퇴근시간이 일치한다. 부모가 퇴근하면서 아이를 데려다가 나머지 시간을 같이 있을 수 있도록 종합적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아이를 키우느라 일을 그만두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결국 부모 중 하나가 일을 포기해야 한다면 한국사회의 성별 임금 격차를 생각할 때 여성이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구조적으로 불평등한 상황이 더 강화되면서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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