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부자' 중동 국가, 그들이 탄소중립 시대를 맞는 방법

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코로나19 대유행으로 3년간 가지 못했던 국외 출장을 지난달 다녀왔다. 연구자 단체인 전기전자공학자협회(IEEE)에 속한 학회 가운데 가장 오래된 ‘파워 앤드 에너지 소사이어티(PES)’에서 주관하는 아시아·태평양 중심의 모임이었다.

그곳에는 사우디, 이란 등 중동에서 온 참가자들이 다수 있었는데, 에너지 전환 시대에 중동의 산유국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때마침 카타르 월드컵이 시작하는 주간과 겹쳐 있었기에 축구 이야기를 시작으로 다가가서 자국의 에너지 상황이나 대응 방향 등을 들을 수 있었다.

월드컵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카타르는 아라비아 반도와 이란 사이에 있는 페르시아만에 위치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이란, 쿠웨이트 등 주요 산유국들 역시 페르시아만 주변에 밀집해 있다.

수평 시추와 수압 파쇄 기술로 이룬 셰일혁명을 통해 최대 산유국이 된 미국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2위의 석유 생산국이다. 그런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 원유를 가장 많이 수출한다. 이웃한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이란 등도 생산량 기준 10위권 이내에 들어가는 산유국이다.

석유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중동의 산유국들은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정책에 따라 원유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에너지 전환 시대를 맞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원유 생산에 치우쳤던 구조를 정유와 석유화학 등으로 확장하는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지난해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산유국들은 석유 산업 가치사슬 가운데 석유를 찾고 개발하는 ‘상류 부문’ 외에 정유공장에서 석유를 정제해 휘발유 등을 만드는 ‘하류 부문’으로의 다각화로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자국민의 고용을 늘리고 국제유가 변동에 취약한 경제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다. 원유부터 석유화학 부문까지의 수직 계열화를 통해 거래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탄소 발생이 석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천연가스 개발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발전 부문에서 석유 소비를 천연가스로 대체하거나 천연가스 수입을 줄이고 자급자족하기 위해서다.

중동 국가들은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수소에 대한 개발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탄소배출을 최소화한 공정으로 만든 ‘블루수소’ 생산과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공정 중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그린수소’ 생산과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해 자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다수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페르시아만 지역은 여름에 태양이 가장 높이 뜬 시점인 ‘남중’ 때 고도가 90도에 이른다. 천정(天頂)을 북회귀선이 지나고 있어 햇볕이 강하다. 이는 재생에너지인 태양광 발전에 아주 좋은 환경이다. 학회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이란 출신 참석자에 따르면 고원지대를 이용한 풍력 발전도 생산성이 꽤 높다고 한다.

풍부한 자원과 유리한 지형을 바탕으로 탄소중립 시대에 에너지 전략을 새롭게 짜고 있는 중동 지역 몇몇 나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한국에게 주어지지 않은 선택 가능 영역과 전략적인 조합이 에너지 전환 시대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이 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에 적합한 에너지 전략은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관련된 산업계와 연구계 등이 계속해서 함께 고민해 나간다면 딱 들어맞는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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