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호 경찰국장 연루 신군부 ‘녹화공작’이란…강제 징집 후 프락치 강요

이홍근 기자

“의식화 공작은 보안유지 목적상 ‘녹화공작’으로 호칭한다”

- 보안사령부 대공처의 ‘대 좌경 의식화 불순분자 대상 대공활동 지침’ 중

1981년 12월1일 대통령 전두환씨는 정권을 비판하는 학생운동이 확산하자 시위 가담 학생들에 대한 강제 징집을 지시했다. 국군보안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대공처는 징집당한 학생들의 이념을 바꿔 ‘프락치’로 활용하는 대공 활동을 전씨에게 제안했다. 신군부 ‘녹화공작’ 사업의 시작이었다. 1982년 9월부터 1984년 12월까지 집계된 녹화공작 대상자는 강제징집자 921명을 포함해 총 1192명이다.

1984년 한국기독교학생회총연맹, 대한가톨릭대학생 전국협의회, 민주화운동청년연합, 한국기독청년협의회, 명동천주교회청년단체 연합회 등 5개 단체가 녹화공작을 공론화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사업이 중단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노태우 정권 때까지 ‘선도공작’으로 이름만 바꿔 암암리에 사업이 진행됐다. 피해를 입은 학생은 2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녹화선도공작의문사진상규명대책위 소속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1월23일 서울 중구 군사망사고위원회 앞에서 김용권 의문사 사건 조사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녹화선도공작의문사진상규명대책위 소속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1월23일 서울 중구 군사망사고위원회 앞에서 김용권 의문사 사건 조사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신군부의 공작으로 의문사한 사례도 많다. 9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이윤성(성균관대 81학번), 김두황(고려대 80학번), 김용권(서울대 83학번), 이진래(서울대 77학번), 정성희(연세대 81학번), 최온순(동국대 81학번), 최우혁(서울대 84학번), 한영현(한양대 81학번), 한희철(서울대 79학번)씨 등 9명은 녹화·선도공작 과정에서 사망했다. 앞서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들 중 4명이 국가폭력과 관련이 있다고 인정했다.

의문사 피해자 중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사례는 이윤성씨 유족이 최초다. 이씨는 1982년 11월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백골단(경찰 사복체포조)’에 체포돼 군으로 끌려갔다. 이씨는 전역을 8일 앞둔 1983년 5월4일 사망했다. 헌병대는 이씨가 “불온 삐라와 책자를 소지해 월북을 기도한 혐의로 조사받던 중 처벌에 두려움으로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2000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 당시 헌병대 발표는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은 이씨의 입영 자체가 병역법을 위반한 강제 징집이며, 징집 후 운동권 출신 사병으로 분류돼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았다고 인정해 이씨의 유족에게 5억23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또 군이 이씨의 사망 경위를 은폐하고 조작했다고 밝혔다.

녹화공작 대상자 중에는 전향해 신군부의 정보원이 된 사례도 있다.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가 2007년 발표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학원·간첩편’에는 “조사 활동을 통해 새롭게 확인된 사실 가운데 하나는 과거 정보기관이 핵심 운동권 학생에 대해 순화·역이용 공작을 실시해 왔다는 점”이라며 “예컨대 ○○대 ○○○지하조직 총책 ○○○신병처리방안 검토보고 문건은 국보법 위반으로 체포된 ○○○에 대해 의법조치할 것이 아니라 순화를 하여 활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김순호 초대 경찰국장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경찰국 입구에서 직원 격려방문을 마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이준헌 기자

김순호 초대 경찰국장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경찰국 입구에서 직원 격려방문을 마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이준헌 기자

1989년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 동료들을 밀고해 경찰에 특채됐다는 의혹을 받는 김순호 행정안전부 경찰국장도 녹화공작 대상자였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인사들은 김 국장이 1983년 녹화공작 대상자로 군에 복무하면서 모교인 성균관대 교내 서클 동향을 보고했고 전역 후에도 활동을 이어갔다고 했다. 김 국장의 활동내역이 담긴 ‘존안자료’는 현재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지난 7일 김 국장의 인노회 밀고 의혹이 불거지자 ‘불법징집과 보안·기무사령부 불법공작 진실규명 공동신청인단’은 “김 국장은 녹화공작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이에 굴복한 변절자임이 확인됐다”며 “분노를 감출 수 없다”는 성명을 냈다.

‘녹화·선도공작 의문사 진상규명 대책위원회(대책위)’는 김 국장의 존안자료를 포함해 의문사 피해자들의 존안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책위는 지난해 2월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자는 물론 누락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피해자를 밝히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존안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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