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무슬림 의상 ‘아바야’ 학교 내 착용 금지···논쟁 재점화

선명수 기자


무슬림 전통 의상 ‘아바야’를 입은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 게티이미지

무슬림 전통 의상 ‘아바야’를 입은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 게티이미지


프랑스 정부가 새 학기부터 학교에서 이슬람 전통 의상인 ‘아바야’ 착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교육과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 원칙에 따른 것으로, 종교 자유 및 세속주의 가치 수호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재점화될 조짐이다.

27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몽드 등에 따르면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교육부 장관은 프랑스 TF1 방송 인터뷰에서 “학교에서 더 이상 아바야를 입을 수 없다”며 “(착용 제한에 대한) 국가 차원의 명백한 규칙”을 새 학기가 시작되는 9월4일 이전에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아탈 장관은 “교실에서 학생의 겉모습을 보고 종교를 식별할 수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세속주의는 학교를 통해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하며, 아바야는 학교가 구성해야 하는 세속주의를 시험대에 올리는 ‘종교적 제스처’”라고 말했다.

프랑스가 종교색 강한 복장을 학교 및 공공장소에서 규제하는 것은 정교 분리 원칙인 ‘라이시테(프랑스 식 세속주의)’에 기반한 것이다. 프랑스 헌법에도 명시된 라이시테는 정치와 교육 등 공적 영역에서 종교를 철저히 배제하는 공화국의 핵심 원칙으로, 1905년 법으로 제정됐다.

이에 따라 19세기까지만 해도 가톨릭 교회의 사립학교가 독점했던 교육이 20세기 들어 자유주의와 세속주의 중심의 공교육 체계로 개편됐다. 공립 학교 및 정부 건물 등에 십자가 등 종교적 표식이 설치되는 것 역시 엄격하게 금지됐다.

이후 프랑스의 인구 및 종교 구성이 다변화되면서 공교육에 영향을 미칠 수 없도록 제한되는 ‘종교적 표식’의 범주도 다양해졌다.

프랑스 정부는 2004년부터 관련 법에 따라 학교에서 무슬림 여성들이 착용하는 머릿수건인 ‘히잡’ 착용을 금지했다. 히잡 뿐 아니라 큰 십자가나 유대교 모자인 ‘키파’, 시크교의 터번 등 “특정 종교적 성향을 드러내는 복장이나 표식 착용”이 모두 금지됐지만, 무슬림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히잡 금지 조치가 특히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히잡을 벗는 것을 거부해 퇴학 당하는 학생이 속출했다.

이후 프랑스는 2011년부터 유럽 국가 중 처음으로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포함해 몸 전체를 가리는 ‘부르카’와 눈만 가리지 않는 ‘니캅’ 착용을 금지했는데, 이는 프랑스 내 500만 무슬림 공동체의 거센 분노를 일으켰다.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부르카 금지법’ 추진 이유로 ‘무슬림 여성의 권익 신장’을 내세웠지만, 이 같은 조치가 자유·평등·박애 등 프랑스 공화국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이 사안이 표면상으로는 여성 인권과 종교 자유, 테러리즘 등 다양한 문제들을 포괄하고 있지만, 결국 그 기저에는 ‘반이슬람 정서’가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프랑스 최고행정법원은 머리부터 발목까지 온몸을 가리는 무슬림 식 여성 수영복 ‘부르키니(부르카와 비키니의 합성어)’를 공공장소에서 입을 수 없다고 판결해 논란이 다시 재점화되기도 했다.

‘히잡 금지’ 조치 이후에도 교육 현장에선 목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길고 헐렁한 옷인 아바야에 대해선 명확한 규정이 없었다. 무슬림 여학생들의 아바야 착용이 늘어나면서 일선 학교 및 학부모들의 문의와 논쟁도 잇따랐다.

르몽드는 정부 통계를 인용해 2022~2023학년도 일선 학교에서 보고된 종교 및 세속주의와 관련한 분쟁이 4710건으로 직전 학년도(2167건)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특히 최근 들어 아바야와 카미(무슬림 남성들이 착용하는 긴 옷) 착용과 관련한 분쟁이 월별 전체 보고의 40%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쟁점은 아바야를 관련법이 금지하고 있는 “눈에 띄는 종교적 표시”라고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아탈 장관의 전임자인 팝 은디아예 전 교육부 장관은 아바야 착용에 대한 전국학교장노동조합 질의에 “옷 길이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끝도 없는 (규제) 목록을 발표할 수는 없다”며 아바야 착용 금지에 대해 유보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교육부 장관(왼쪽)이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라레위니옹섬의 라포제션 초등학교에서 개학 첫날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교육부 장관(왼쪽)이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라레위니옹섬의 라포제션 초등학교에서 개학 첫날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 내 대표적인 무슬림 단체인 프랑스무슬림평의회(CFCM)는 지난 6월 아바야가 “무슬림의 종교적 상징이 아니다”라면서 “어떤 종류의 무슬림 전통 의복도 그 자체로 종교적 상징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결국 아탈 장관이 아바야 착용을 금지하기로 발표하자 학교장노동조합의 브뤼노 봅키위츠 사무총장은 “명확하지 않았던 지침이 분명해졌기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치권의 입장은 극명히 갈렸다. 히잡과 마찬가지로 아바야 착용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우파 성향 정당들은 환영 입장을 밝힌 반면 좌파 정당들은 이같은 조치가 무슬림 여학생들의 권리를 침해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좌파 성향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소속 크레망틴 오탱 하워의원은 “정부가 무슬림에 대한 ‘강박적 거부’를 표출하고 있다”며 이 같은 조치가 “위헌적”이라고 비판했다.

프랑스 언론들은 이번 발표가 지난 7월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된 아탈 장관의 첫 번째 주요 정책 결정이라고 전했다. 34세의 아탈 장관은 제랄드 다르매낭 내무장관(40)과 함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이을 차세대 정치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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