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문화’와 여성 정치인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형님문화’ 속 남성 정치인들은
남성의 눈과 언어로 보고 말한다

정치판 형님문화를 깨기 위해선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서
여성을 전략·단수 공천해야

후쿠시마 오염수, 간호법, 김남국 코인. 굵직한 사건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지만, 들끓는 수면 아래 정치세계에서는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한 후보들의 각축전이 달아오르고 있을 것이다. 존재감도 희미한 여당 대표나 검찰의 표적이 된 제1야당 대표는 권력 실세의 대리인이든 국회보다 법정에 서든 거대 정당의 공천권을 쥔 인물로서 언론의 조명을 받는다. 앞으로 10여개월은 어떤 정치적 사건이든 총선과 무관하게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때맞춰 선거법 개정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국회 의석수를 확대하거나 선거구제를 개편하는 문제들이 지방소멸, 지역갈등 같은 이슈들과 함께 다뤄졌다. 그런데 성별 불균형 문제는 왜 빠졌을까? 제21대 국회 여성 의원 비율은 19%로, 2021년 기준 국제의회연맹이 발표한 세계 190개국 중 121위이며, 전 세계 평균 여성 의원 비율(25.6%)에도 한참 못 미친다. 선거 직후 보도는 여성 의원 57명으로 ‘역대 최다 당선’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실은 부끄러워해야 할 결과였다.

현행 선거제도에서 여성의 국회 진출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공천’ 관행이다. 그리고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서 공천을 받을 수 있는가가 핵심이다. 그렇다면 여성이 공천 경쟁에서 싸워 이기면 되지 않는가. 안타깝게도 이 공천이라는 각축장은 급경사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정치세계를 관통하는 게임의 규칙이 철저히 남성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여성 정치인들은 정치라는 세계를 축구와 같다고 말한다. 전략과 전술, 몸값 키우기, 집단적 정서, 감독과 코치의 전능한 권력 등에서 남성들의 사고와 경험, 행동양식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공천은 일종의 선수 선발이다. 정당에서 후보 선발은 공천(관리)위원회나 전략공천위원회가 관리하며, 당대표와 주요 직책들, 즉 비서실장과 사무총장을 비롯한 전략기획과 정책 관련 조직 책임자들의 영향력이 작용한다. 공천을 관리하는 위원회는 여성 위원의 비율을 아예 명시하고 있지 않거나, 명시해도 실질적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예컨대, 50%를 여성으로 규정했다고 해서 여성들의 결정권이 그만큼 보장된 것은 아니다. 이 50%가 외부 위원으로 채워져도 외부의 여성 위원들이 정당 내 결정권자들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 양당의 의사결정권을 가진 직책에 여성들이 얼마나 포진해 있는가. 극소수다. 대다수가 남성인 것이다. 이런 남성중심적 구조, ‘50~60대 서울대 출신 남성’이 지배하는 엘리트 남성의 권력 결사체에서 최고위 지도부에 여성이 포함될 가능성은 극히 작다. 따라서 이 세계의 밑바닥에는 ‘형님문화’라고 불리는 일종의 남성 카르텔이 작동한다. 밥도 같이 먹고 술도 같이 마시고 등산도 사우나도 같이 가는, 물론 일도 같이하는 남성들의 동성사회적 연대다. 신뢰의 공동체지만 잘못하면 비리의 공동체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올드보이 네트워크에 여성들은 끼기도 어렵고 한두 명 끼어든다고 해도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형님문화’ 속 남성 정치인들은 남성의 눈으로 보고 남성의 언어로 말한다. 선거 포스터 속 흰 셔츠에 넥타이를 맨 100% 남성들의 모습을 ‘원팀’이라고 칭찬하며, 여성 정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70%에 이르는 여성 위원들에게 ‘밤새 허리띠를 풀고 이야기해 보자’고 열의를 표한다. 저출생, 기후변화가 심각하다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효과적인 대책은 내놓지 못한다. 관심도 이해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성은 경쟁력이 없지 않은가’ ‘여성이 능력을 보이려면 험지에 출마해서 당선돼 보라’고 하지만, 중요한 직책에서 일한 경험이 없어 경쟁력을 보일 기회도 없다. 험지에 출마해서 당선되기란 당대표도 어려운 일이다.

제도를 바꾸기에 시간이 걸린다면, 관행부터 바꿔보시라는 조언을 드린다. 이미 대한민국 공직선거법에는 “전국 지역구 총수의 100분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권고 규정이 있다. 21대 국회에서 당선된 지역구 여성 의원은 11.5%(29명)에 불과했다. 권고지만 이 규정을 현실화하는 방법이 있다. 전략공천, 단수공천이다. 단, 조건이 있다. 소위 험지가 아닌, 당선 가능 지역을 중심으로 한 공천이다. ‘왜 이런 여성에 대한 특혜가 필요한가’라고 묻는다면 ‘정치판의 형님문화를 깨기 위해서’라는 것이 답이 될 것이다. 국민의힘에서 대구·경북 지역 공천 50%, 더불어민주당에서 호남 지역 공천 50%를 여성에 할당하면 어떨까? 성평등 민주주의는 국회에서부터 실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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