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마스 ‘적대적 공생’이 방치한 재앙…막을 곳은 협상 테이블

심진용 기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지난 10여년은 ‘봉쇄’와 ‘방치’로 요약된다. 이스라엘은 2007년 이후 가자지구를 봉쇄했고, 그로 인해 초래된 인도적 재앙은 방치했다. 미국과 유럽도 이를 방조했다. 미국이 예루살렘에 주이스라엘 대사관의 문을 연 14일(현지시간) 가자 주민 60명이 사망한 유혈 진압 사태는 그 결과다. 근본적인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제의 핵심은 하마스다. 이스라엘은 무장정파 하마스의 집권을 이유로 가자 봉쇄를 시작했다. 이스라엘과 미국, 유럽은 하마스와의 대화를 일절 배제했다. “테러세력과는 대화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민간 싱크탱크 유럽외교협회(ECFR)의 휴 로바트 연구원은 이와 같은 봉쇄와 배제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과거 미들이스트아이 기고에서 “가자 봉쇄 이후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파괴적인 충돌이 수차례 이어졌고, 인도적 위기는 심화했다. (로켓 공격 등) 하마스의 행태도 바꾸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하마스를 대하는 이스라엘의 태도는 모순적이다. 하마스를 가자지구 내에 몰아놓고 철저히 고립시키려 하면서도, 하마스가 완전히 붕괴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하마스가 무너지면 이슬람국가(IS)나 알카에다처럼 더 급진적이고 공격적인 무장세력이 득세할 위험이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에서 하마스를 축출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수만명의 군 병력을 동원해야 하고 장기간 주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위험 부담도 크고 비용도 많이 드는 선택지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대니얼 바이먼 선임연구원은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증오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하마스에 의존하고 있다”고 현 상황을 요약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필요악’으로 여기는 것처럼, 하마스도 이스라엘을 필요로 한다. 하마스는 내부 불만을 바깥으로 돌리기 위해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을 자극한다. 실질적인 타격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로켓 공격 등 무력 도발을 감행한다. 강경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적대적 공생’ 관계이며, 그 사이에 끼어 피해를 보는 것은 가자지구 민간인들뿐이다.

로바트는 미국과 유럽이 하마스와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15일 ECFR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유럽은 하마스와 대화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고 적었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하마스 내부에서 온건파 세력이 커질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하마스는 지난해 5월 기존 헌장을 대체하는 새로운 정책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스라엘을 파괴한다’는 기존 헌장의 문구를 삭제하는 등 한층 온건하고 유화적인 내용을 담았다. 국제사회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법으로 제시해온 ‘2국가 해법’을 일부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하기도 했다. 하마스 입장에서는 작지 않은 양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제야말로 하마스와 진지하게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가 세계를 속이려 한다”고 반응했다. 에드 로이스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인정하기 전까지는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라고 답했다. 결국 달라진 것은 없었다.

바이먼은 미국 인터넷매체 VOX 기고에서 “하마스가 양보하면 이를 인정해야 하며, 경제 압박 완화 같은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적었다. 로바트는 하마스가 무력 투쟁을 포기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마스를 테러단체 지정에서 해제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협상 등을 시도할 수 있다고 예시했다. 이들은 지금과 같은 봉쇄와 방치가 계속되는 한 지난 14일과 같은 재앙도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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