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탐욕이 하와이 산불 키웠다…식민주의와 기후재앙

박은하 기자

플랜테이션 농업, 현지 공동체 해체

식생 변화 일으켜 기후재앙 후폭풍

현재도 탈탄소 명분 ‘녹색 식민주의’

얼마 전에도 비슷한 뉴스를 봤던 것 같은데 무슨 맥락에서 나온 건지 궁금할 때 있으시죠? ‘사이월드’가 단편적인 여러 국제 뉴스의 사이사이를 짚어 세계의 흐름을 보여드립니다.

산불로 폐허가 된 하와이 마우이섬. 2023년 8월 13일 촬영./ AFP연합뉴스

산불로 폐허가 된 하와이 마우이섬. 2023년 8월 13일 촬영./ AFP연합뉴스

“카나카 마오리족으로서 이곳 마우이섬에서 7대째 이어오고 있다. (산불을) 지켜보는 것이 가슴이 아프다. 식민지 탐욕이 우리 집을 불태우고 있다. 미국 정치인과 오염을 시킨 자들이 비난받아야 한다.”

하와이 원주민 지도자이자 전 하와이주 하원의원, 그린뉴딜 네트워크 전국위원인 카니엘라 잉(35)이 지난 9일(현지시간) 불타오르는 마우이섬을 담은 영상과 함께 엑스(X·옛 트위터)에 남긴 이다. 지난 8일 시작된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은 허리케인 ‘도라’를 타고 빠르게 번지면서 섬 전체를 집어삼켰다. 13일 기준 수색이 3%만 진행된 가운데 확인된 사망자 수만 93명이다.

잉은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라하이나는 본디 하와이 왕국의 수도였다면서, 기자들이 이 도시를 ‘하와이의 관광명소’로 규정짓는 것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잉은 ‘식민지 탐욕’이 기후재앙의 원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섬의 메인 거리를 끝에서 끝까지 걷는 일은 하와이 왕국 (멸망) 이후 (식민 플랜테이션 작물인) 설탕, 백단향, 파인애플에 이어 (최근의) 관광, 사치품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타임라인을 관통하는 디즈니랜드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다. 불은 이 궤적의 종점에 대한 비극적 상징이다.”

섬 전체를 태운 ‘최악의 산불’ 발생 원인으로 기후변화가 꼽히지만, 이번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250년 동안 하와이에서 진행돼 온 식민화 정책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쏘시개’ 외래종 식물이 마우이섬 뒤덮은 까닭

마른 풀로 뒤덮인 하와이 마우이섬의 들판. 소방관이 13일(현지시간) 잔불을 제거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마른 풀로 뒤덮인 하와이 마우이섬의 들판. 소방관이 13일(현지시간) 잔불을 제거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최근 몇년 동안 하와이에서 발생한 화재는 하와이를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유입된 외래종 식물이 불쏘시개가 돼 피해를 키웠다는 사실이 학계 연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하와이 비즈니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등에 따르면 마우이섬에는 기니그래스, 당밀그래스, 버펠그래스 등의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과거 사탕수수 농장으로 쓰였다가 현재 방치된 땅에서 주로 서식하지만, 무서운 생명력으로 번져나가 현재는 라하이나 주택가에서도 관찰된다.

이 식물들의 고향은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이다. 가뭄에 강해 몇 달 동안 비가 오지 않아도 죽지 않다가 한 번 비가 오면 며칠 만에 빠르게 성장한다. 하와이 왕국이 1898년 미국에 병합된 뒤 이곳의 숲을 밀어내고 우후죽순 들어선 플랜테이션 농장들은 목초지에서 동물의 사료로 사용하기 위해 번식력이 강한 이들 외래종 식물을 들여왔다.

하와이 경제가 농업에서 관광 위주로 전환하면서 1990년대에 대부분 농장들이 문을 닫았지만, 농장이 방치되면서 외래종 식물은 더욱 눈에 띄게 번성했다. 기후변화로 하와이 기후가 사바나 초원과 유사하게 건조해진 데다 하와이에는 풀을 먹어치울 대형 초식동물이 없었던 탓이다. 하와이 마노아대 산불전문가 클레이 트라우에르니히에 따르면 현재 외래종 식물은 재해에 강한 토착 식물을 밀어내고 마우이 섬 4분의 1을 뒤덮고 있다.

트라우에르니히는 2018년 마우이 섬에서 21채의 가옥을 태운 화재의 원인을 조사하면서 외래종 식물이 피해를 키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당장 기후변화 진행을 막을 수 없는 만큼 외래종 식물을 관리해 산불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언론 등을 통해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토지주들이 이 문제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현재 하와이의 토지는 몇몇 대기업과 부호들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데, 이 역시 식민화 정책의 결과다.

식민지배와 기후변화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호주 원주민이 2021년 4월 산불철을 앞두고 큰 화재를 막기 위해 들판에 소규모 불을 질러 마른 숲과 관목을 태우고 있다. (왼쪽 사진) 콩고민주공화국의 소규모 코발트 광산에서 아동을 포함한 노동자들이 안저장비 없이 맨손으로 전기차 배터리 원료로 사용되는 코발트를 캐고 있다. /월드프레스포토

호주 원주민이 2021년 4월 산불철을 앞두고 큰 화재를 막기 위해 들판에 소규모 불을 질러 마른 숲과 관목을 태우고 있다. (왼쪽 사진) 콩고민주공화국의 소규모 코발트 광산에서 아동을 포함한 노동자들이 안저장비 없이 맨손으로 전기차 배터리 원료로 사용되는 코발트를 캐고 있다. /월드프레스포토

결국 이번 하와이 산불 사태는 기후변화, 그리고 식민주의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기후변화가 1850년대 이후 산업화 활동의 결과물인 것을 감안하면 선진국의 산업 활동과 식민주의가 비서구 세계를 이중으로 착취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하와이뿐만이 아니라 식민지배 경험이 있는 여러 나라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자바섬은 네덜란드에 식민화된 후 1세기 만에 숲의 절반이 사라졌으며 현재도 식민지 시대 만들어진 팜유 재배와 수출이 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진은 2022년 발표한 연구에서 “토지 강탈과 공동체 파괴를 가져오는 식민지배 자체가 기후변화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식민 지배국의 식민지에 대한 인종주의에서 기인한 무시와 무지, 강압이 현재의 기후피해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올 여름 산불로 30명 이상이 사망한 알제리도 프랑스 식민정책으로 경관이 급속하게 바뀌었다. 전 국토의 90%가 사하라 사막인 알제리 유목민들은 건기가 되면 들에 불을 질러 바싹 마른 풀을 태웠다. 건기에 더 큰 산불을 막기 위한 이른바 ‘전략적 방화’이지만, 프랑스 식민당국은 알제리 유목민들의 목축과 방화가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금지했다. 프랑스인들은 알제리 조림사업을 위해 호주의 유칼립투스 나무를 심었다. 이 나무는 화재에 취약했을 뿐 아니라 외래종을 옮겨오는 과정에서 치명적인 병충해까지 전해져 알제리의 숲을 더욱 황폐화했다.

이 때문에 최근 재앙적 산불이 몇년째 전 국토를 불태우고 있는 호주에서는 원주민의 지혜를 존중하려는 움직임이 뒤늦게 일어나고 있다. 사진기자 단체인 월드프레스포토는 2022년 ‘올해의 보도사진’으로 호주 원주민이 관목에 불을 내는 장면을 담은 ‘불로 숲을 구하다(Saving Forests with Fire)’ 를 선정했다. 호주 정부는 2019~2020년 수개월 동안 지속된 산불을 겪은 뒤 호주 원주민을 소방당국에 채용해 산불관리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다. 전통적 방식으로 재해를 예방하고 생물다양성을 살리기 위해서다.

기후재앙 시대에도 ‘녹색 식민주의’ 계속된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소규모 코발트 광산에서 아동을 포함한 노동자들이 안저장비 없이 맨손으로 전기차 배터리 원료로 사용되는 코발트를 캐고 있다. /프랑스24 다큐멘터리 화면 캡쳐

콩고민주공화국의 소규모 코발트 광산에서 아동을 포함한 노동자들이 안저장비 없이 맨손으로 전기차 배터리 원료로 사용되는 코발트를 캐고 있다. /프랑스24 다큐멘터리 화면 캡쳐

비영리매체 글로벌 시티즌의 논설위원 아쿤다레 오쿠놀라는 지난 6월 칼럼에서 “기후위기와 식민주의는 불가분”이라며 “역사적이며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식민주의의 영향을 살피는 것은 기후변화 대응에 빼놓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여기서 식민주의를 “하나의 권력이 다른 종속된 지역이나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도 2022년 보고서에서 “역사적이고 지속적인 형태의 식민주의가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한 특정 사람과 장소의 취약성을 직접적으로 악화시켰다”고 밝혔다.

이처럼 기후위기가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과 성찰의 필요성을 보여줬음에도, 선진국의 ‘녹색식민주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선진국의 탈탄소 경제를 위해 착취당하는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의 코발트 광산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스마트폰·전기차 배터리의 원료인 코발트의 74%가 민주콩고에서 생산된다. 미 공영 라디오방송 NPR, 프랑스24, 가디언 등에 따르면 아동과 여성을 포함해 2만명 넘는 ‘장인’ 광부들이 하루 몇 달러의 임금을 받고 안전 장비 없이 맨손으로 코발트를 채굴한다.

선진국이 탈탄소 정책에 따라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전환한다면 민주콩고는 광산으로 인한 토양오염으로 초토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9~20세기 중반 벨기에 식민지 시절, 콩고인들이 고무채취에 동원돼 수백만명 이상이 죽거나 장애를 입었던 역사가 현재는 글로벌 공급망 경쟁 틈바구니에서 코발트 채굴에 동원돼 착취당하는 역사로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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