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갯벌의 노둣길

손제민 논설위원

“띄었냐?” “띄었다!” 앞뒤 가마꾼들이 노둣돌(징검돌)에 발을 디딜 때마다 내뱉는 음률에, 신행길의 신부는 멀미를 했을 것이다. 문병란이 짓고, 김원중이 부른 ‘직녀에게’의 노둣돌이 마음과 마음을 잇는 노랫말이었다면, 신부 같은 이들에게 노둣돌은 섬과 섬을 잇는 다리였다. 전남 신안군 암태도와 추포도 사이 옛 노둣길은 국내 최장 징검다리였다. 2.5㎞ 길이에 약 3만6000개 돌로 이뤄졌다고 한다. 1997년까지 썰물 때마다 모습을 드러내 두 섬을 이어준 고마운 교통로였다. 1866년 노둣길 개보수를 기념해 세워진 노도(路道)비에 따르면 이 길은 약 300년 전 지어진 걸로 추정된다(이재근 신안군청 학예연구사). 노둣길은 2000년 6월 콘크리트 둑길이 개통되자, 퇴적토에 덮여 자취를 감췄다. 그 후 갯벌 생물 채취를 생업으로 하던 어민들도 격감했다.

그런데 최근 신안군이 두 섬 사이에 교량을 놓고, 콘크리트 둑을 해체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둑에 막혔던 바닷물이 자유롭게 오가며 둑 안쪽에 쌓인 흙이 쓸려내려갔고, 옛 노둣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더 놀라운 건 갯벌에 칠게·낙지·짱뚱어 같은 생명도 돌아온 것이다. 신안군은 이것이 불과 3개월 만에 일어난 변화라고 했다. 서천·고창·보성·순천 갯벌과 함께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신안 갯벌이 복원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례와 대비되는 것은 여전히 새만금 방조제와 방수제에 갇혀 있는 군산·김제 갯벌이다. ‘죽음의 갯벌’을 전 세계에 보여준 지난여름 세계잼버리 뒤에도 새만금개발청은 해수유통을 확대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새만금호 내측 공사를 이유로 수문을 막아 새만금호 관리수위를 기존보다 더 낮췄다. 영화 <수라>의 주인공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은 이로 인해 갯벌·습지에 살던 생물이 햇볕에 장시간 노출돼 폐사하고, 용존산소 부족으로 수질은 더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지난 20년간 새만금호 수질 개선에 약 4조원을 쏟아부었지만 수질은 악화되기만 했다. 하루 1회 이뤄지던 해수유통을 2020년 2회로 늘리자 부족하나마 죽어가던 갯벌 생물이 살아날 기미를 보였다. 지금이라도 새만금 방조제 해수유통을 늘려야 한다. 신안 갯벌 사례를 보면 된다.

해수유통이 늘어나면서 과퇴적된 갯벌이 침식되어 옛 노둣길이 드러나기 시작한 모습. 작은 돌들이 선처럼 이어져 있는 것이 노둣길 흔적이라고 한다. 그 주변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골이 패여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다리가 새로 개통한 추포대교이고, 철거된 콘크리트 둑길이 그 옆에 있었다. 신안군청 제공

해수유통이 늘어나면서 과퇴적된 갯벌이 침식되어 옛 노둣길이 드러나기 시작한 모습. 작은 돌들이 선처럼 이어져 있는 것이 노둣길 흔적이라고 한다. 그 주변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골이 패여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다리가 새로 개통한 추포대교이고, 철거된 콘크리트 둑길이 그 옆에 있었다. 신안군청 제공

전남 신안군 암태도와 추포도를 잇던 옛 노둣길. 약 300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1997년까지 썰물 때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신안군·도서문화연구원이 2013년 편찬한 <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암태면 편>에 수록된 사진. 이재근 신안군 학예연구사 제공

전남 신안군 암태도와 추포도를 잇던 옛 노둣길. 약 300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1997년까지 썰물 때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신안군·도서문화연구원이 2013년 편찬한 <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암태면 편>에 수록된 사진. 이재근 신안군 학예연구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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