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운동, ‘교권’을 넘어서자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처음 생겼을 때를 기억한다. 전교조가 내세운 ‘참교육’ 이념의 구체적 체감은 ‘돈 받지 않는 교사, 때리지 않는 교사, 차별하지 않는 교사’였다. 정권의 탄압에도 학생과 학부모, 시민들의 지지를 얻으면서 전교조는 교육운동의 상징적 대표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교사들 사이에서 전교조 교사들은 동료를 비방하는 내부고발자로 여겨졌고, 교사의 권위와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비난받기도 했다. 그중 가장 큰 불만은 ‘어떻게 교사가 노동자냐’는 것이었는데, 그 부끄럽게 여기던 교사의 노동자성과 노동권은 1990년대 이후 교사의 임금과 처우를 개선시킨 핵심 조건이었다.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지금 교사들은 ‘교권’을 위해 싸운다. 전교조와 한국교총도 교권 앞에서는 한목소리로 단결하고, 교육감과 교장도 교권 보호를 외치며, 여야 정치인들도 한목소리로 교권을 옹호한다. 그런 가운데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은 교권 강화를 학생인권 탄압의 구실로 삼고 있다. 이런 양상에 우려를 표하면 많은 교사들이 ‘그 교권’과 ‘이 교권’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 교권은 권력, 권위, 특권이고, 이 교권은 ‘교육할 권리’ ‘교육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권력, 권위, 특권으로부터 분리된 권리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학교에는 힘 있는 교사, 힘없는 교사가 있고, 힘 있는 학부모와 그렇지 못한 학부모가 있다. 이런 힘의 서열은 사회적 권력관계를 반영한다. 서울 서초동 같은 곳에서 교사의 사회계급적 지위는 자신이 상대하는 일반 학부모 평균보다 낮을지 모르지만, 내가 사는 강원 인제라면 교사의 지역사회 내 지위는 서초동의 변호사급 정도는 될 것이다. 어떤 지역에선 학교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학부모가 교육을 방해한다지만, 다른 곳에선 학교에 너무나 무관심한 학부모들 때문에 어려움을 느낀다.

교사 집단 내부에 존재하는 지위 격차와 차별의 구조도 눈감을 수 없는 문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교사, 나이 많은 교사와 초임 발령자, 교사와 교육공무원, 교사와 돌봄전담사, 일반 교사와 보건·영양교사 등 특수교사의 관계는 수평적이지 않다. 일터를 지옥으로 만드는 일의 대부분이 이 구조 안에서 일어난다. 가해와 피해의 구조는 학부모와 교사 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은 이런 학교에서 누가 강자이고 약자인지, 강자가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매일매일 보고 있다.

이처럼 학교는 권력, 권위, 특권이 충돌하는 장이며, 교권 역시 그 자장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권력의 장 안에서 교권을 분리할 수 없을뿐더러, 정말로 ‘그런 교권’과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교권’ 개념을 재구성하고자 한다면, 교사운동은 우선 부당한 권위와 권력의 다른 이름으로서의 ‘그 교권’을 해체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것부터 해야 한다.

학교 외부의 노동체제와 사회체제 변화가 교사 집단의 계급성과 지위 변동에 미치는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교사 인기가 떨어졌다고 해도 한국 사회에서 교사는 그렇게 낮은 계층이 아니었다. 교대는 고등학교에서 성적 상위권이 돼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이러려고 교사 되었나’라는 말은 대학까지 ‘톱’을 지켜온 나름 ‘엘리트’들이 바늘구멍 같은 임용 관문을 통과한 후에 갑자기 갑질 소비자를 응대해야 하는 하층 서비스 노동현장에 떨어진 상황을 압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날 교사들이 느끼는 불안의 기저에는 신자유주의 이후 중간계급이 직면한 전문직 일자리 박탈과 지위·소득의 하락이라는 ‘하강의 공포’가 있다. 학부모의 불안에도 중간계급의 계급 재생산 위기가 깊숙이 자리한다. 교직은 점점 축소, 악화되고 있는 중간계급 일자리의 최전선이다. 이 속에서 학교는 격렬한 계급투쟁의 장이 된다.

모두를 경쟁의 굴레에 밀어 넣어 옆자리 동료도 적으로 만들고, 그 속에서 모두가 힘겨워하면서도 결국 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죽음의 교실을 만든 것이 학부모 민원 탓일까? 문제 학생과 학부모를 분리하면 교실은 안전해질까? 교육 위기의 진짜 주범인 신자유주의 교육체제와 노동체제에 맞서는 것을 회피한 채 교권 문제로 축소하는 한, 어떤 교권 보호 대책도 교사를 보호하지 못할 것이며, 서로를 향해 분노하고 증오하게 만드는 ‘을들의 싸움’으로 분열시키는 ‘교사 대 학생·학부모’ 구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최소한 진보적 교육운동이라면 조합주의에 갇힌 교사운동을 넘어서, ‘교육운동으로서의 교사운동’과 정치사회적 운동으로서의 교육운동을 다시 모색하기를 호소하고 부탁한다. 지금 교사를 포함해 학교 구성원 모두를 지켜줄 수 있는 건, ‘더 많은 인권과 더 많은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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