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굿바이 안철수’ 이후

김태일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정체성의 차이를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제3 정치세력은 지속 불가능하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앞서 경험에서 봤듯이 언젠가 제1당, 제2당에 투항하여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신당 창당을 선언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원칙과 상식(김종민·이원욱·조응천 의원)과 박원석·정태근 전 민주당 의원,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체성의 차이를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제3 정치세력은 지속 불가능하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앞서 경험에서 봤듯이 언젠가 제1당, 제2당에 투항하여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신당 창당을 선언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원칙과 상식(김종민·이원욱·조응천 의원)과 박원석·정태근 전 민주당 의원,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 경향신문 자료사진

안철수는 떠났다. ‘청춘 콘서트’의 환호, ‘제3 정치세력’의 전율을 뒤로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탕진하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딸들에게 모든 걸 나누어주고 정처 없이 길을 떠나는 리어왕의 신세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했던 응원도, ‘그랬더라면 지금 의미 있는 대안일 텐데’라는 회한도 이제는 다 부질없는 넋두리다. ‘굿바이 안철수.’ 그에게 정치적 다양성 실현을 기대했던 시민들은 미련 없이 작별 인사를 보냈다. 그의 실험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거대 양당의 진영 대결이 만드는 혐오와 배제 정치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이 절망의 현실에서 그는 하나의 반면교사로만 남아 있다.

‘굿바이 안철수’ 이후, 제3 정치세력을 규합하자는 움직임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피 끓는 웅변으로, 혹은 간절한 호소로, 그리고 볼멘소리로 자신들의 정치적 서사를 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착잡하다. 모두 입을 모아 외치고 있는 것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패권과 정당민주주의의 부재에 대한 고발이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공감도 간다. 문제는, 그래서 너희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아직 답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철수는 ‘청춘 콘서트’의 환호, ‘제3 정치세력’의 전율을 뒤로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탕진하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사진은 2011년 9월2일 서울 서대문 구청에서 열린 ‘2011희망공감청춘콘서트’에 당시 신드롬을 일으킨 안철수 서울대융합기술대학원장이 시골의사 박경철과 함께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세례를 받는 모습이다. / 연합뉴스

안철수는 ‘청춘 콘서트’의 환호, ‘제3 정치세력’의 전율을 뒤로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탕진하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사진은 2011년 9월2일 서울 서대문 구청에서 열린 ‘2011희망공감청춘콘서트’에 당시 신드롬을 일으킨 안철수 서울대융합기술대학원장이 시골의사 박경철과 함께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세례를 받는 모습이다. / 연합뉴스

‘제3 정치세력’을 꿈꾸는 각양각색 흐름이 어디로 가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돌이켜 보면, 제3 정치세력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열쇠는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이다. 이른바 포지셔닝이라고 하는, 정체성 설정은 성공의 시작과 끝이다. 만일 제3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위치가 제1당, 제2당 ‘사이’ 어디쯤이라고 생각하는 한 실패는 예정돼 있다. 그간의 경험을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안철수가 대표한 국민의당의 경우, 제1당 가까이 위치를 설정하면 ‘권력의 2중대’라는 손가락질을 받았고, 제2당 쪽으로 조금이라도 자리를 옮기면 ‘적폐의 옹호자’라는 핀잔을 들었다. 정확히 위치를 자로 잰 후 이쪽저쪽에도 기울어지지 않은 한가운데에 포지션닝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다면 아마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었을 것이다. 제1당과 제2당 ‘사이’에서 위치를 찾는 한 거기가 어디든 딜레마를 피할 수 없다. 안철수는 어느 날 ‘극중(極中)주의’라는 개념을 들고나와 사람들이 어리둥절했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극중은 극좌, 극우에 대응하는 강력하고 확실한 가운데 노선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나 싶은데 당시에는 그게 뭐였는지 사실 잘 몰랐다. 그게 해답도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중요한 일인 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제3 정치세력은 제1당과 제2당 ‘사이’에서가 아니라 제1당과 제2당을 ‘넘어’ 위치를 설정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제3 정치세력은 제1당, 제2당과는 다른 하나의 ‘삼각형 꼭짓점’에 자리를 만들어 자신의 정체성을 설정해야 한다. 가령, 제1당이 ‘민주(民主)’라는 깃발을, 제2당이 ‘자유(自由)’라는 깃발을 들고 있다면 제3당은 ‘공화(共和)’라는 깃발이라도 들어올려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렇다는 말이다.

정체성의 차이를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제3 정치세력은 지속 불가능하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앞서 경험에서 봤듯이 언젠가 제1당, 제2당에 투항하여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조금 걱정스러운 건, 지금까지 제3 정치세력이라 자임하는 누구의 입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분명하게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각양각색 ‘제3 정치세력’을 도모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주로 조직 문제에 가 있다. 슈퍼빅텐트, 플랫폼, 연합 등 말의 성찬이라 할 정도로 다채롭다. 그것으로는 제3 정치세력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자신들의 깃발이 거대 양당의 그것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움직이는 제3 정치세력은 ‘잔여적 존재’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다. ‘찌꺼기 정당’ ‘나머지 정당’이라는 얘기다.

양당 패권과 정당 민주주의의 ‘부재증명’만으로, 분노에 찬 목소리만 가지고는 사랑을 계속 받기 어렵다. 다른 ‘깃발’을 만들어야 한다.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함께할 수 있는 분명하고 간단한 최소강령이 필요하다. 거대 양당도 ‘여러 가치를 망라하는 정당’이고 ‘샐러드 그릇’이며 ‘비빔밥 정당’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그런 개념이 그럴듯하게 보일지 모르나 신생 제3 정치세력에 그것을 쓰면 초라한 ‘잡탕 정당’으로 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쉽고 명료한 설명 개념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정당을 움직일 리더십을 만들기도 어려울 것이다.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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