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 @ 원도심’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

균형발전은 국가의 의무이고 권리다.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지닌다.”(헌법 제123조 2항), “국가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헌법 제122조) 이러한 헌법 정신에 따라 역대정부는 균형발전정책을 이어왔다.

[시선]‘혁신도시 @ 원도심’

권위주의 정권의 개발시대에는 ‘균형’보다 ‘발전’이 중시되었다. 국토를 고루 키우는 대신 성장거점을 집중 육성했다. 거점을 키우면 그 효과가 주변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이론은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경부축과 비경부축,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도시와 중소도시,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커졌다.

민주화 이후 국가정책의 중점이 ‘발전’에서 ‘균형’으로 옮겨졌다. 김영삼 정부는 지역균형발전과 지방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법을 만들고 수도권 공장총량제와 과밀부담금제를 실시했다. 김대중 정부는 수도권을 규제하던 방식에서 한발 나아가 지역산업을 육성하고 경쟁력을 키우는 지역발전정책으로 전환했지만 외환위기에 대응하느라 균형발전에 충분히 힘쓸 겨를이 없었다.

균형발전이 최상위 국정과제로 강조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때다. 후보시절에 수도 이전을 공약했고, 정부 출범 첫해에 ‘신행정수도건설특별조치법’을 제정했다. 이듬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서울과 과천에 있던 9부 2처 2청의 정부기관들이 세종특별자치시로 옮겨갔다. 행복도시 건설에 버금가는 또 하나 참여정부의 획기적 균형발전 정책은 공공기관 지방이전이다. 논란과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전국 11개 시·도에 혁신도시가 건설되었고,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수도권에 있던 345개 공공기관 가운데 153개 기관의 지방이전이 완료되었다.

국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참여정부가 취한 특단의 균형발전 의지와 전략에 공감하면서 딱 하나 아쉬움이 남는 옥에 티가 있다. 혁신도시의 ‘입지’다. 수도를 옮긴다는 웅대한 뜻에서 시작된 행복도시야 어쩔 수 없다 해도, 공공기관 이전을 위한 혁신도시는 도시 바깥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대신 도시 안의 텅 빈 원도심에 들일 수는 없었을까? 도청이 옮겨가 휑해진 전주 원도심에 지방자치인재개발원과 농촌진흥청 등 12개 기관이 들어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도시 밖으로 혁신도시와 기업도시를 짓는 대신 공공기관과 기업을 원도심 안으로 초대했다면 지금 원주는 어떤 모습일까? 원도심에 혁신도시를 들이는 ‘혁신도시@원도심’ 전략으로 공공기관 이전과 원도심 재생을 함께 묶어 풀 수는 없었을까?

인구감소시대에 짓는 신도시는 블랙홀과 같다. 주변에서 사람과 활력을 빼앗아 제 자신을 채운다. ‘윈-윈’이 아니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겨루는 ‘제로섬’ 게임이다. 원도심은 스스로 쇠락한 게 아니다. 뺏기고 털린 것이다. 참여정부의 균형발전정책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바란다. 이제 더는 신도시를 짓지 말자. 수도권에도, 비수도권에도. 그 어떤 명분으로도. 비어가는 걸 방치한 채 자꾸 새로 짓는다면 균형도 발전도 헛된 꿈이고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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