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는 어디 있는가읽음

다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일을 맞으며 그 유서를 읽어본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천정환 <자살론> 저자·성균관대 교수

천정환 <자살론> 저자·성균관대 교수

정치적 효과와 별도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자기동일성에 헌신한 윤리적 행위였다 할 수 있다. 즉 그 자살은 자신이 믿고 추구한 가치와 진리, 그리고 자신의 공적 자아를 위해 생명을 희생한 행동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리적 자살은 ‘인간동물’의 자기보존의 원리라는 한계를 넘고 흔히 ‘성찰’로 표상되는 상징계의 차원도 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초상징계적 행위와 결부된 진리는 언어로 이뤄지는 성찰이나 법보다 강하다. 그래서 자살은 속세에 남는 산 자들에게 언제나 큰 충격을 야기한다. 자살한 어떤 이가 생전에 그런 윤리적 존재였는지 확언할 수 없다 해도 자살행동은 (결과적으로) 그에 관련된 유력한 증거가 된다. 그것이 어떤 자살들이 갖는 힘이자 진리성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례 없던 정치가의 상을 지었다. 권력정치의 틀을 벗어나 자기보존이나 ‘현실 원칙’ 따위보다 윤리가 우월할 수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 죽음은 지금까지 울림이 큰 것이다.

이제 유서의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말에 주목해본다. 마치 죽음 뒤의 상황을 예측한 듯하다. 알다시피 한국정치는 노무현의 마지막 당부와는 정반대로 흘렀다. 한국을 지배해온 특권층과 수구 우파는 노무현의 삶과 죽음, 그리고 공과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다. 그들의 유치한 엘리트주의와 이데올로기가 눈을 가린다. 지배동맹은 이를 통해 증오·공포·조롱을 정치적·법적 행동으로 조직했다. 그러나 그들은 2002년, 2004년에 잇달아 노무현에게 패배했는데, 그 패배가 그들에겐 트라우마며 큰 치욕이었던 모양이다. 그 대결의 근본 성격은 무엇일까? 대중 대 기득권 엘리트, 인민주권 대 ‘현실정치’의 대결이라 볼 면을 갖고 있었다. 끝내 그들은 검찰력을 동원하여 노무현을 결정적으로 모욕하고 벼랑 앞에 몰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죽음이 일으킨 반대 방향의 효과에도 있다. 죽음을 통해 노무현은 비극적 영웅의 면모를 갖게 되었으나, 일부의 과도한 죄의식과 일방적 평가는 보통사람들의 공감대를 넘어버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의식, 이명박·검찰·언론에 대한 분노·증오의 감정을 노무현에 대한 우상화를 통해 역승화하려 했다. 그리고 일부는 그것을 현실정치에서의 ‘세력’으로써 운용했다. 그리하여 노무현의 죽음은 진영정치와 감정정치의 새 서막이 되었다. 그것은 앞에 말한 두 계열의 극단적 대립 감정을 기반으로 한다.

양자는 ‘노무현’을 매개로 증오의 정치를 되풀이하며 서로를 재생산해왔다. 양극 사이에서 2010년대 한국 대의정치는 병들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어떤가. ‘정치인 노무현’은 정녕 대중의 사랑을 받을 만한 면모를 지녔으나, ‘대통령 노무현’은 성공하지 못했다. ‘특권과 반칙 없는 사회’를 내세우고 검찰·재벌·서울대·강남 등 기득권 소굴을 위협한 적은 있었으나, 실제로는 잘 알려진 대로 계속 ‘왼쪽 깜박이’를 넣은 채 오른쪽으로 갔다.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의 심화도,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상승도, 비정규직 노동의 양산과 재벌 중심의 경제체제의 심화도 전혀 막지 못했다. 배달호, 김주익 같은 여러 노동운동가가 노무현 정부하에서 목숨을 끊었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평택미군기지, 대연정 문제 등을 계기로 진보진영과 시민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여전히 ‘바보 노무현’을 기리는 사람들과 같이 슬퍼한다. ‘노무현정신’이란 무엇인가? ‘꼬마 민주당’을 택했을 때 그는 정치의 ‘현실’과 상황논리보다는 기꺼이 손해 보는 정도를 택한 것이었다. ‘지역정치 타파’를 내세웠을 때 그가 한 일은 ‘지역’을 알리바이로 수행되는 기득권 정치의 구조와 비상식을 깨자는 것이었다. 눈앞의 선거 승리와 권력의 길이 아닌 원칙을 지키는 ‘바보’.

‘노무현정신’을 계승한다는 이들이여, 이제 이런 ‘바보’는 어디 있는가. 만약 ‘바보 노무현정신’에 근거한다면 시민의 자세도 명확한 듯하다. 어떤 핑계로든 ‘반칙과 특권’에 젖어 있는 자들과 결별하고, ‘진영’의 허상과 감정정치를 넘어 가난한 시민의 삶을 위한 정치를 향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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