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목격자, 사건의 해결사…‘리틀 빅 히어로’ 라이더들

강은 기자
거리의 목격자, 사건의 해결사…‘리틀 빅 히어로’ 라이더들

한강에 빠진 시민 등 구한 전성배씨

배달 라이더 ‘딸배’ 비하 등 낮은 사회 인식
세상에 도움 주고 있다는 사실 알리고 싶어

전성배씨(38)는 배달 라이더다. 매일 8시간씩, 주 6일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 위를 달린다. 지난해 7월 그는 사람을 구했다. 출근 전 서울 성수동 한강변으로 산책을 나갔을 때였다. 저 멀리 강 속으로 젊은 여성이 빨려들어가는 게 보였다.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시신도 못 찾으면 안 되는데’ ‘괜히 들어갔다 최악엔….’ 짧은 시간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신고하고 불과 3분, 그는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전씨는 지난 2일 소방청이 선정한 ‘119 의인상’의 주인공이 됐다. 전씨는 “저는 배달 라이더인데…”라는 말로 수상 소감의 운을 뗐다고 했다. “라이더에 대한 인식이 워낙 안 좋지만 우리도 주변에 도움을 주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전씨는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이 세상에 워낙 많은데 내가 이 상을 받아도 될지 고민이 많이 됐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씨의 말처럼 배달 라이더들은 종종 위험에 빠진 시민의 생명을 구하거나 경찰이 범죄자를 검거하도록 돕는다. 새벽 이른 시간부터 밤 늦게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곳곳을 다니다 보면 여러 사건·사고의 최초 목격자가 되는 일이 많다. 전씨는 “라이더들은 기동성이 뛰어나서 일종의 ‘순찰대’가 되곤 한다”고 말했다.

거리의 목격자, 사건의 해결사…‘리틀 빅 히어로’ 라이더들

폭우로 고립된 반지하 주민 구출한 은석준씨

기동성 뛰어난 라이더들은 일종의 ‘순찰대’
여러 사건·사고의 최초 목격자 되는 일 많아

지난 8월 폭우 피해 당시 신림동에서 반지하 주민을 구한 은석준씨(26)도 전씨와 함께 ‘9명의 의인’에 이름을 올린 배달 라이더다. 오후 11시,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할 즈음 반지하에 사람이 갇혔다는 얘기를 듣고 주택 복도로 헤엄쳐 들어갔다. ‘가장 끝 방’에서 사람 소리가 들리는 것을 확인한 은씨는 밖으로 나가 이웃들과 함께 창을 깨고 20대 남성을 구출했다. 은씨는 “위험하다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했다”고 말했다.

그는 “배달 일을 하다 보면 교통사고나 음주운전 현장을 수없이 보게 된다”고 했다. 2020년 10월엔 영등포구의 한 횡단보도에서 행인이 차에 깔리는 사고가 나자 주변 사람들과 함께 차량을 들어올린 적도 있다. 신고 경험이 쌓이다 보니 경찰로부터 수배차량 번호를 전달받아 메모해 놓는 습관도 생겼다. 은씨는 “많을 때는 절도범 수배차량 번호 3~4개가 오토바이 앞단에 붙어 있다”며 웃었다.

거리의 목격자, 사건의 해결사…‘리틀 빅 히어로’ 라이더들

역주행 음주운전차량 도주 막은 지현수씨

교통사고·음주운전 현장서 수없이 만나
더 큰 사고 막으려고 ‘도로 위 추격전’도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하는 차량이 보이면 ‘도로 위 추격전’을 벌이기도 한다. 2021년 6월 한밤중 배달을 하던 지현수씨(38)는 광진경찰서 인근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역주행해 달아나던 차량을 발견했다. 쫓아가보니 창문 너머로 술 냄새가 풍겼다. 운전자는 ‘네가 뭔데 그러냐’고 했지만, 지씨는 “더 큰 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경찰이 올 때까지 도주를 막았다.

라이더끼리의 활발한 소통도 적극적인 신고를 돕는 요인이다. 배달 기사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할 일이 적지만 하루종일 온라인 단체 대화방을 통해 근황을 묻고 답한다. 사건·사고 목격담은 물론 신고 후기까지 실시간 공유되니 세상 물정에 밝아진다. 이상한 조짐이 보일 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스레 직접 신고하게 된다.

거리의 목격자, 사건의 해결사…‘리틀 빅 히어로’ 라이더들

보이스피싱 전달책 경찰에 신고한 조용호씨

라이더들, 활발한 소통으로 세상 물정 밝아
이상한 조짐 보일 때 자연스레 직접 신고

경기 남부 지역에서 배달 일을 한다는 조용호씨(49)는 2022년 6월 틈틈이 겹벌이를 하러 일당 25만원짜리 심부름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가 보이스피싱 전달책을 신고한 적이 있다. 조씨는 “가명을 쓰라고 하거나 고객에게 먼저 알은체하지 말라고 하는 등 수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어서 곧장 근처 112치안센터로 갔다”고 말했다. 조씨는 이 신고로 경찰로부터 감사패와 신고 포상금도 받았다.

누군가는 ‘딸배(오토바이 배달 기사를 비하하는 멸칭)’라 부르며 무시하지만 이들은 배달업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전성배씨는 “사람들에게 욕이나 반말을 들으면 모멸감이 느껴질 때가 많다”면서도 “ ‘콜’을 자유롭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틈틈이 타인을 도울 여지가 있는 직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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