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에게 바란다

2019.07.01 06:00 입력 2019.07.30 10:18 수정

지난 6월25일, 검찰 과거사위원회 권고에 따라 문무일 총장은 과거 검찰권 행사가 불공정하였음을 인정하고 사과했습니다. 2012년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무죄구형을 하며 과거사 반성을 하였다가, 간부로부터 “선배들을 권력의 주구로 몰았다”는 질책을 들은 게 불과 몇 년 전이라, 놀라운 변화에 안도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늦은 검찰의 두루뭉술한 사과에 사법 피해자들과 국민들이 검찰을 용서해줄지… 자신이 없네요.

[정동칼럼]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에게 바란다

과거사위원회 권고로 몇몇 사건은 재수사에 착수하여 수사 결과가 뒤집어지기도 했지만, 대개의 사건은 공소시효 등의 한계를 넘지 못하여 책임자 처벌에 실패하였고, 문무일 총장의 사과로 일은 정리되는 수순입니다. 불공정했던 수사 책임자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검찰을 이끌었을까? 몹시 궁금하여 검찰 내부망을 뒤져보았습니다.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입니다. 저는 정치적 외풍에 흔들림 없이 오직 진실만을 추구하고 부정부패에 추상같은 정의로운 검찰을 꿈꿉니다. 국민의 인권을 소중히 여기고,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않는, 맑고 밝고 바르고 따뜻한 검찰을 소망합니다. 저는 어떤 어려움과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리에 연연해서 할 말을 못하거나, 합리적인 소신을 굽히는 일도 결코 없을 것입니다.”

2007년 11월, 임채진 검찰총장은 이런 취임사로 임기를 시작했지만, 정권의 입맛에 맞춰 정연주 KBS 사장을 배임으로, 광우병 방송 관련 <PD수첩> 관계자들을 명예훼손으로 무리하게 기소하는 등으로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더욱 짙게 한 채 중도 사퇴하였지요.

“우리의 상대는 범죄 그 자체입니다. 죄를 저지른 사람의 지위나 신분이 높건 낮건, 힘이 있건 없건 고려치 않아야 합니다. 부패와 비리에 대해서는 일체의 관용도 없어야 합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쳐도 저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2009년 8월, 김준규 검찰총장도 이런 포부를 밝히며 취임하였습니다만, G20 정상회의 홍보포스터에 풍자 쥐 그림을 그린 사람에 대한 무리한 구속영장 청구, 사건 청탁 대가로 차량 등을 선물 받은 속칭 ‘그랜저 검사’에 대한 부실수사와 과감한 불기소 결정 등으로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았습니다.

검란사태로 2012년 12월 중도 사퇴한 한상대 총장, 혼외자 논란을 초래한 채동욱 총장, 제가 직무유기 등으로 수사기관에 고발한 김진태, 김수남 총장을 비롯해 역대 총장들의 취임사와 퇴임사를 검찰 내부망에서 순서대로 찾아 읽어보았지요. 비장하고 결연한 단어들이 칼날인 양 화면을 뚫고 나오는 듯하다가, 그분들의 행적을 떠올리면, 장식용 칼인가 싶어 검찰 구성원으로서 마음이 무참해집니다.

문무일 총장은 취임사에서 “우리의 변화되어 가는 모습에 국민이 감동을 느끼게 해 보자”고 했지만, 검찰의 변화속도가 시대의 변화속도보다 더뎌 국민들의 기대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임기가 곧 끝나는 총장이 기자 간담회에서 한 사과에 진심을 담아내는 것은 차기 총장과 검찰에 남은 사람들의 몫입니다.

검찰은 범죄자에게 죄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법집행기관입니다만, 정작 내부에서 상명하복하여 검찰권을 불공정하게 행사한 검사들은 인사로 보답받을 뿐 문책받지 않았습니다. 차기 총장은 이제라도 책임을 물어주십시오. 읍참마속 없는 사과와 공직기강 확립은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검찰에, 검찰총장에게 집중된 권력을 옆으로, 아래로 나누어주십시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합니다. 검찰이 검찰권을 감당하지 못하여 개혁 대상이 되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다면, 내려놓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입니다.

윤석열 후보자는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위반으로 기소하기 위해 직을 걸어 후배들의 귀감이 된 선배입니다. 국민들이 그때 보여준 결기를 기억하고 환호할 때, 주범인 원세훈을 불구속 기소하기 위해 압력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여 결국 기소유예해버렸던 국정원 간부들을 비롯해 부끄러웠던 사건들을 기억해주십시오. 그 부끄러움이 양심의 거울이 되어줄 테니까요.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흥망을 알 수 있고, 동으로 거울을 삼으면 의관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한 당태종의 지혜는 리더의 덕목입니다. 검찰이나 정권이 아니라 나라를 앞세우고, 쓴소리에 귀를 열어주십시오. 검찰에 고통스러운 격랑의 시간입니다만,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마지막 순간이라는 절박함으로 검찰을 이끌어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저 또한 그러한 절박함으로 앞으로도 건의와 비판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잘못을 한다면 직을 걸고 말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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