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예능화와 공영방송 위기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재미있거나 자극적인 것이어야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 TV 예능 프로그램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대중들의 관심이 광고 수입과 구독 수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업적인 콘텐츠에만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진중한 토론과 시민의 공론화가 필요한 정치도 예능화되고 있다. 사실 진중한 토론과 공론화는 정치과정에 대한 이상적인 생각일 수 있다. 정치인과 정당 역시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받아야만 선거에서 이길 수 있고, 이런 관심과 지지를 획득하는 방법은 시대적 맥락에 따라 결정된다. 민주주의가 선동 정치나 금권 정치로 점철된 역사도 시대적 맥락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현재 한국 정치의 예능화는 SNS, 특히 유튜브의 발달과 대중적 이용이라는 맥락을 빼고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정농단 사건을 거치면서 국민의힘 계열의 정치 유튜버들이 극단적 지지자들의 관심을 끌면서 이를 통해 상업적 이득도 올릴 수 있었다. 보수 신문들이 주도하는 여론 형성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민주당 계열 지지자들은 그 이전부터 SNS를 이용하는 정치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였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는 민주당 계열 정치 유튜브 채널들로 결집하고 있다.

정치적 동기와 상업적 동기가 결합된 정치 유튜버의 역기능은 심각하다. 시청 시간이나 금전 기부 등으로 현시되는 소비자의 최대 지불 의사는 적극적 지지자들에서 훨씬 높은 반면, 중립적이거나 비당파적인 사람들과 유튜브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지불의사는 높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당파적이고 일방적인 주장이나 상대방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조롱하는 재미있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은 상업적으로도 이득이고,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을 여론화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정당화시킬 수도 있다.

이런 극단적 정치 유튜브 채널은 시청자의 확증편향을 강화시키고, 정치와 정책에 대한 진중한 토론과 시민의 공론화 과정을 무력화시킨다. 또한 전문가와 비당파적 시민을 정치 및 정책 과정에서 소외시킨다. 일관성 있는 평가 기준을 비당파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토론과 공론화 대신 누구를 비판하면 내 편이거나 아니거나 하는 식의 선입견으로 내용을 평가하도록 만들고 있다. 중도층의 정치 무관심화와 극단적 지지층의 편견 심화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온다.

TV·라디오 등 전통 언론매체도 정치 예능화에 가세하고 있다. 특히 라디오, 종편, 시사보도채널의 시사 프로그램이 유튜브화되고 있는데, 낮은 제작비에 상대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달성할 수 있는 예능화는 상업성과 정치적 편향성을 가진 매체에는 더 없이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여론 형성이란 공적 기능을 가진 언론매체로서의 특성과 법적 보호를 스스로 걷어차는 일이 될 수 있다.

디지털 플랫폼에 의한 정치적 확증편향과 소외의 심화는 비단 우리에게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언론 자유가 잘 보장되어 있다는 미국에서도 이에 대한 우려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미국 시카고대의 스티글러센터가 2019년에 발간한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보고서는 1996년 통신법에 도입된 제230조를 변경할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미국 통신법 제230조는 인터넷 서비스 공급업자에게 자신의 플랫폼에 게시되는 콘텐츠에 관련된 민사 소송에서 광범위한 면책권을 인정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 조항은 거대한 디지털 플랫폼이 등장하기 이전의 환경에서 입법된 것이었다. 스티글러센터 보고서는 책무감 있는 저널리즘의 생산·배포·소비를 위해 투명성 요건 및 언론 다양성을 위한 기여 요건 등을 충족시키는 조건 아래에서만 제230조의 면책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제시하고 있다.

공영방송 체제가 발달하지 않은 미국과 달리 한국적 맥락에서는 정치 유튜브 채널과 상업적 언론의 편향성과 정치의 예능화를 견제할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책무감, 비판적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공영방송의 재정적 지속 가능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짜뉴스’ 운운하는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KBS 수신료 분리 징수에 더해 과거 이명박 정부 때 방송 민영화를 추진했던 이동관씨를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한다면, 정치의 예능화와 공영방송의 위기를 더욱 부채질할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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