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연결음이라도 만들어달라”···‘악성 민원’에서 교사 보호할 방안은

남지원 기자
추모객들이 지난 21일 교실에서 교사가 숨진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숨진 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추모객들이 지난 21일 교실에서 교사가 숨진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숨진 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에 ‘악성 민원’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교사들을 보호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교원단체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부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걸러낼 수 있는 법적·행정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주장한다. 학교의 특성상 담임교사는 학부모의 민원을 1년간 홀로 감당해야 하는데 폭언 등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할 장치는 부족하다. 상담원 같은 고객 응대 노동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고객에게 폭언을 들었을 때 전화를 끊는 등 업무를 일시적으로 중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다. 폭언 등이 통제받을 수 있음을 사전에 알리는 안내 문구, 통화연결음 등도 사용한다.

학교에는 이런 교사 보호 장치가 사실상 없다. 현행 교원지위법에 ‘교사가 상해·폭행·명예훼손 등의 피해를 입은 경우 치유와 명예회복을 위해 보호조치를 한다’고 규정돼 있기는 하지만 선제적으로 악성 민원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학교 현장에서는 경고 통화연결음 같은 사소한 조치라도 적용해달라는 요구가 나온다. 윤미숙 전국초등교사노조 정책실장은 지난 21일 CBS 라디오에서 “교실로 전화했을 때 ‘지금 이 사람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다’ 이런 통화연결음이라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달 12일부터 ‘교육 활동 보호를 위한 통화연결음 문구 공모전’을 벌이고 있으며 조만간 제작할 예정이다.

교사가 학급 민원을 혼자 처리하지 않도록 민원 창구를 교장·교감 등 관리자로 일원화하거나, 문제 제기 통로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좋은교사운동은 지난 20일 성명에서 “교육 활동에 문제가 있으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공식적인 창구를 학교 안에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저경력 교사가 어려운 보직을 떠맡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연구단체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는 “‘민원폭탄’이 예상되는 업무를 저경력 교사에게 떠맡기는 일이 공공연하다”며 “학부모 민원대응에 익숙하지 않은 교직경력 5년 이하 교사에게 과도한 민원이 예상되는 업무를 배정하지 못하도록 하고, 신규교사에게 학교 적응을 위한 수습기간을 부여하는 등의 제도를 시도교육청 규정이나 교육부 지침에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갈등상황 해결을 위해 상담교사 등 전문가 배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전국 초중고 전문상담교사 배치율은 44.7%에 불과하다. 이는 여러 학교를 도는 순회 전문상담교사까지 합친 비율이다. 실제 학교 배치율은 이보다 낮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상담교사 등을 모든 학교에 배치해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한 상담, 지역연계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며 “혁신학교 등에서 자체예산으로 상담전문가를 운영한 사례가 있는데, 교사 채용이 정원문제 등으로 장기과제라면 교육청이나 학교 차원에서 긴급하게 예산을 투여해 2학기부터 과밀학교부터 이런 제도를 시행할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교사들이 아동학대 신고 위험 때문에 생활지도를 포기하거나, 학부모가 교사와의 갈등 상황에서 아동학대 신고를 악용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국회에는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오는 28일 전체회의에서 이 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학생이 교권을 침해해 교권보호위원회의 조치를 받으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방안 등을 담은 교원지위법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다만 이 방안은 학교폭력의 학생부 기재 강화처럼 오히려 과도한 소송전을 불러와 교사들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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