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이어 이번엔 ‘이스라엘 전쟁’···바이든 정부 중동전략 비상

선명수 기자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EPA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와중에 ‘중동 화약고’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며 세계 안보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이번 사태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교에 ‘올인’해온 조 바이든 정부의 중동 전략이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란이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의 배후에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이란과의 긴장 완화를 모색해온 바이든 정부는 더 큰 수세에 몰리게 됐다.

美 공들여온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 좌초 위기

바이든 대통령은 하마스의 기습 공격이 발생한 7일(현지시간) 긴급 연설을 통해 “미국은 이스라엘과 함께 한다”며 “미국은 75년 전 이스라엘이 건국한 지 11분 만에 이스라엘을 인정한 첫 번째 국가가 되었던 그 순간과 똑같이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며 변함 없는 지원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통화해 지원 방안 등을 논의했다.

그러나 내년 대선을 앞둔 그가 국내외적으로 복잡한 상황에 놓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 CNN은 이번 이스라엘 전쟁이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과 씨름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의 재임기간 중 가장 불안한 지정학적 위기 상황이 됐다고 평가했다.

당장 바이든 정부가 공을 들여온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 관계 정상화 및 이란과의 긴장 완화 노력이 위기에 봉착했다. 바이든 정부는 중동지역 안정을 위해 수니파 종주국이자 지역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해 왔다. 이를 통해 시아파 맹주이자 사우디의 ‘앙숙’인 이란에 대응하고,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의 움직임을 차단한다는 구상이 깔려 있었다.

그간 관계 정상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 유대인 정착촌 문제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인정을 둘러싼 입장 차였는데, 이번 사태로 이 문제에 대한 양측의 양보를 받아내려던 미국의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스라엘-하마스 간 충돌이 중동 전쟁으로 확전된다면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 움직임은 중단되거나 아예 무산될 수 있다.

미 워싱턴 소재 아랍걸프국가연구소의 후세인 이비쉬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하마스가 말 그대로 폭탄을 던진 것”이라며 “하마스의 목표는 이스라엘을 자극해 사우디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우디 관리도 WSJ에 “당분간 모든 것이 얼어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7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위를 한 시민이 걷고 있다. AP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위를 한 시민이 걷고 있다. AP연합뉴스

공화당, 일제히 바이든 맹폭···트럼프 “이스라엘 배신해”

바이든 정부가 이란과의 긴장 완화를 위해 기울여온 노력도 역풍을 맞게될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 당국자는 하마스의 배후에 이란이 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란이 특정한 공격에 연계돼 있다는 어떠한 징후도 보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지만, 당장 공화당 대선 주자들은 하마스의 공격이 바이든 정부의 ‘대이란 정책 실패’에 따른 것이라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관련해 긴급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관련해 긴급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바이든 정부는 지난달 이란에 억류돼 있던 미국인 5명을 석방해주는 대가로 한국이 이란에 지급해야 하는 원유대금 60억달러(약 8조원)에 대한 동결을 해제했는데, 이란이 이 자금을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지원했다는 것이 공화당 인사들의 주장이다.

공화당 유력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아이오와주 워털루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그들(이란)이 축적한 엄청난 부의 일부가 이번 공격에 흘러 들어갔다고 해도 놀랍지 않은 일”이라며 “바이든이 이스라엘을 배신했다”고 주장했다.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팀 스콧 상원의원 등 공화당의 다른 대선 후보들도 같은 이유로 바이든 정부를 맹비난했다.

이에 에이드리언 왓슨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이란이 돌려받은) 자금은 아직 단 한 푼도 지출되지 않았으며, 오늘의 끔찍한 공격과 전혀 관련이 없다”면서 “지금은 거짓 정보를 퍼뜨릴 때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우크라 전쟁 피로감에···바이든 정부, ‘두 개의 전쟁’ 부담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전쟁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미국이 중동에 얼만큼의 여력을 투입할 수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미국 내에선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라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반대 여론이 점차 높아지는 실정이다.

여기에 바이든 대통령이 지명한 신임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가 아직 의회 인준을 받지 못해 미국대사가 공석인 상태에서 이번 전쟁을 치르게 됐다.

네타냐후 총리의 극우 연정이 추진해온 사법 개편 시도로 바이든 행정부와 네타냐후 정권의 관계가 올해 들어 급속히 냉각된 것도 이번 사태의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CNN은 이번 사태로 연정 내 극우 정치인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면서 이 분쟁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개입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팔레스타인 내부의 정치적 분열로 신뢰할 만한 팔레스타인 측 협상 파트너를 찾기 어렵다는 점도 미국의 개입을 한층 어렵게 만들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이번 사태 발발 후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마흐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통화했지만, 그는 하마스가 장악한 가자지구에서는 통치권이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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