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 “대통령실의 대법관 임명거부 예고, 법에 없는 정치행위”···‘걱정과 참담’ 공개 비판

김희진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왼쪽)과 윤석열 대통령(오른쪽). 연합뉴스,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명수 대법원장(왼쪽)과 윤석열 대통령(오른쪽). 연합뉴스, 경향신문 자료사진

현직판사가 대법관 임명 제청 과정에서 특정 후보를 겨냥해 임명 보류 가능성을 시사한 대통령실과 이를 따른 대법원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사법부 일원이 이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도권 지역 법원의 A판사는 지난 15일 법원 내부망에 ‘걱정과 참담 사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에서 이번 대법관 임명 제청 과정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A판사는 “대법원장 제청과 국회 동의를 받은 후보자라도 임명이 부적절하면 대통령이 임명을 거부하면 될 일”이라며 “누군가 특정인의 대법관 취임을 못마땅해 한다 해도 대법원장으로 하여금 제청을 못 하게 하는 건 헌법이 정한 바가 아니다”고 했다.

그는 이어 “‘특정 정치성향의 후보자가 (대법관에) 제청되면 임명을 거부할 수 있다’는 (대통령실의) 공개 언급은 후보자의 제청을 행정부가 임명 거부로써 적극 정쟁화하겠다는 예고나 다름없다”며 “임명 거부의 실행은 헌법상 권한행사 일지라도 임명 거부의 예고는 법에 없는 정치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번 대법관 제청은 대통령실에서 제청 전부터 윤 대통령이 특정 후보 임명 보류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례 없는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이념 성향 후보 2명을 김 대법원장이 제청할 경우 윤 대통령이 거부할 수 있는지 검토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윤 대통령이 ‘코드 인사’를 꽂으려 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김 대법원장은 이후 대통령실에서 지목한 것으로 알려진 두 후보가 아닌 서경환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권영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난 9일 임명 제청했다. A판사는 이를 두고 “대법원장의 제청권 행사에 ‘상당한 장애’가 초래된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A판사는 김 대법원장을 향해서도 “제청권 행사에 장애가 있었어도 극복해 권한을 올바로 행사했어야 한다”며 “존 로버츠 미국 연방대법원장처럼 ‘우리 사법부에 편향된 법관은 없다’ 할 수도, 김병로 전 대법원장처럼 ‘제청에 이의 있으면 임명 거부하시오’라고 할 수도 있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대법원장께서는 장애를 무시하기로 하셨나 보다. 그러나 아무도 이번 제청이 임명 거부 예고와 무관하게 이뤄졌다고 보지 않는 듯 하다”며 “법관이 어떤 경우에도 법과 양심에 따라서만 재판한다고 강변한들 누가 믿어줄지 모르겠다”고 했다.

A판사는 그러면서 “이번 사태가 유야무야 잊힌다면 머잖아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제청을 앞두고 대통령 측의 임명 거부 예고가 상시로 이뤄지는 세상을 보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참담하다”고 글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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