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현장을 가다

지진 혼란 속 약탈행위 기승…한시가 급한 구조작업까지 위협

안타키아 | 김서영 기자    최서은 기자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6일째인 11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의 안타키아의 건물 잔해에서 한국 해외긴급구조대(KDRT)와 튀르키예 구조대가 생존자 구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안타키아(튀르키예)|문재원 기자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6일째인 11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의 안타키아의 건물 잔해에서 한국 해외긴급구조대(KDRT)와 튀르키예 구조대가 생존자 구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안타키아(튀르키예)|문재원 기자

깜깜한 한밤중인 11일(현지시간) 새벽 1시, 튀르키예 남부 안타키아의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 숙영지 앞 도로에 갑자기 일군의 차량이 달려나왔다. 어떤 일인지 물어보니 “댐이 터졌으니 빨리 대피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알고 보니 이는 거짓 정보였지만, 한동안 대피가 이어졌다. 결국 튀르키예 당국의 차량이 지나다니면서 확성기로 “지금 무슨 말이 떠돌고 있는데 거짓 정보이니 믿지 말라”는 방송을 하고서야 진정됐다.

강진 일주일째를 바라보는 튀르키예 재난 지역에서 가짜 뉴스 성행과 약탈 등 치안이 악화하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이날 밤 역시 안타키아 숙영지 근처에선 일부 주민들이 주인이 버리고 떠나버린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려다 적발돼 군중들이 몰려들며 소동이 일어났다. 시위라도 일어난 것처럼 군중이 시끌시끌해, 튀르키예 당국이 결국 공포탄 석 발을 쐈는데도 한동안 진정되지 않고 소란이 이어졌다. 앞서 아다나에서도 무너진 아파트 잔해에서 물건을 훔치려던 이들을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에 검거됐다는 소식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기도 했다. 전기와 수도가 끊겨 해가 진 이후 온통 깜깜해진 안타키아 곳곳에서는 무장한 군인들이 무리지어 순찰을 다녔다.

이 같은 치안 불안은 구조 작업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재난 지역 주민들과 구조대원들은 지진 발생 이후 약탈자들을 많이 목격했다며 불안을 호소했다. 튀르키예 하타이에 살고 있는 주민 아일린 카바사칼은 AFP통신에 “우리는 약탈자들로부터 집과 자동차를 지키고 있다”며 “우리는 악몽을 겪고 있다. 당국이 보호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안타키아에서 구조작업을 펼쳤던 구조대원 기젬은 안타키아를 ‘죽음’과 ‘파괴’의 장소로 묘사하며 “대부분 약탈자들이 흉기를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전했다.

튀르키예 국영 아나돌루통신에 따르면 이날까지 48명이 약탈 혐의로 체포됐다. 경찰은 이들이 훔친 현금, 카드, 보석류, 휴대전화 등을 비롯해 여러 개의 총을 압수했다. 구금된 이들 중 2명은 구호 활동가로 위장해 하타이 지방의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이송된 트럭 6대분의 식량을 가로채려 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구호대는 안보 불안을 이유로 구조 작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독일 구조대 측은 “집단 간 충돌과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는 보고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며 “식량과 물 공급도 부족해져 안보 상황이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안보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며 “튀르키예 당국이 상황이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즉시 작업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스트리아 구호대도 비슷한 이유로 작업을 중단했다가 당국으로부터 안전 보장을 받은 뒤 구호를 재개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약탈이나 납치 등 범죄에 연루된 사람들은 국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정부가 범죄에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거짓 정보가 횡행하는 것을 두고도 “특히 SNS에 거짓되고 근거 없는 뉴스를 퍼뜨림으로써 혼란을 일으키는 자들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11일 경고했다.

약탈에 나선 주민들 또한 이번 지진의 이재민인 만큼, 일부는 “상황이 절박해 약탈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기도 한다. 하타이에서 가전제품 판매점을 운영하는 니자메틴 빌메즈는 “아기용 물티슈나 음식, 물을 약탈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지진이 나고 처음 며칠간은 구호품이 전혀 도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위생 문제 또한 구조대원들의 구호 작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역에서는 생존자와 구조대원들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 수가 턱없이 부족하고, 곳곳에서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 기젬은 “사람들이 여기서 잔해에 깔리거나 부상으로 죽는 게 아니라면, 감염으로 죽을 것”이라며 “여기는 화장실이 없다”고 밝혔다.

도로 곳곳에는 담요만 덮여있는 시신들이 널려 있고, 마을 사람들은 악취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있다. 한 구조대원은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위생용품이라 생각한다”며 “질병이 퍼질까 두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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