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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법무부 장관에게 바란다

2019.09.01 20:38 입력 2019.09.01 20:40 수정

2012년 9월, 민주화운동의 거목이신 박형규 목사님 과거사 재심사건을 담당하며 검찰청법을 뒤져본 적이 있습니다. 무죄를 무죄라 말하지 못하던 때라, 상부와의 충돌을 예상하고 잠자던 이의제기권을 깨워야겠다 싶었으니까요. 법전을 아무리 뒤져도, 이의제기권 근거조항만 있을 뿐 행사방법과 처리 절차에 대한 조문을 찾지 못해 근거조항만 숙지한 채 상급자들의 사무실을 오갔는데, 그땐 다행히 무죄구형 결재가 났습니다.

[정동칼럼]차기 법무부 장관에게 바란다

2012년 12월, 또 다른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결국 “지시의 적법성과 정당성에 이의 있습니다. 검찰청법 7조 2항에 따른 이의제기권을 행사합니다”라 외쳐야 했고, 상부는 제 이의를 묵살하고 검사 교체로 대응했지요. 부득이 법정 검사출입문을 걸어 잠가야 했습니다.

중징계받고 5년에 걸쳐 징계취소소송을 진행하며, 이의제기권 도입과정을 비로소 공부했지요. 2003년 강금실 장관이 대검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하여 검찰청법이 어렵게 개정된 것인데, 법무부 검찰국과 대검이 절차규정을 일부러 만들지 않아 사문화시켰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더니 싶어 혀를 내둘렀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업무 특성상 절차규정을 만들 수 없다던 검찰이 정권교체 후인 2017년 12월 결국 만들었습니다.

이의제기권을 행사하였다가 징계까지 받은 당사자로 그간의 눈물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보람에 뿌듯해하며 내용을 확인하였다가 여전한 검찰에 분노하고 절망했습니다. 절차를 마련하는 척하며 이의제기한 검사는 물론 그 의견에 동조하는 여타 검사들마저 새로 이의제기할 기회를 원천봉쇄하고 기관장의 지시에 따르도록 한, 상명하복 강화 규정이었으니까요.

개혁하는 체 시늉만 하는 검찰에 분노하고, 검찰의 눈속임에 여전히 속는 법무부 장관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개혁을 무력화시키려는 악마의 디테일을 헤아릴 통찰과 식견이 있어야 하는데, 참여정부 때처럼 대검에, 대검과 한통속인 검찰국에 휘둘리는 듯하여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2018년 1월5일, 내부게시판을 통해 절차규정 개정을 건의하고, 행정규칙 심사권을 가진 법제처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예상대로 대검은 개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검은 절차규정을 만들었다고 치적 홍보를 하면서도, 정작 내용은 비공개하고 있지요. 개혁성과가 아니라 상명하복을 고수하려는 검찰의 방어막이니 공개할 수가 있겠습니까. 참여정부에서 도입한 검사의 이의제기권은 척박한 검찰에서 15년이 지나도록 아직 싹도 틔우지 못했습니다.

검찰개혁을 위해서는 이런 악마의 디테일에 맞서야 하기에, 예를 길게 들었습니다.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말한다>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조직의 변화는 인적 구성의 변화나 문화의 변화까지 이루어져야 하므로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막강한 법무부 장관의 권한과 개인 역량은 검찰의 변화 속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더딘 검찰개혁의 책임을 개혁 입법을 통과시키지 않는 국회에만 돌릴 수 없는 이유입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검사 인사에 있어 번번이 아쉬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출범 초기야 인수위 없이 황급히 출범한 것이라 이해했습니다만, 거듭된 인사에서 개혁과 자정업무를 담당한 검사들 면면을 보면 검찰개혁이 정말 더디겠구나 싶어 얼마나 안타깝던지요. 참여정부 시절, 검사와의 대화에서 강금실 장관은 “인사 과정에서 검찰총장 인사안을 전달받았으나, 이용호 게이트, 옷로비 사건, 피의자 고문치사 사건 등의 관련자가 들어 있어 납득할 수 없었다”고 답변했지요. 검찰 과거사위원회, 참여연대 등에서 검찰권 오남용 사례를 수차 지적하였는데, 관련 검사들이 여전히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피해자들은 물론 그들의 행적을 잘 알고 있는 검찰 안팎의 많은 사람들이 검찰개혁 의지를 체감할 수 있겠으며, 과연 그런 검사들이 검찰개혁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까요.

검찰개혁에 대한 시대적 요구는 명확합니다. 관료조직의 힘이 더욱 비대해지는 정권 3년차, 이제라도 기득권의 저항을 이겨내고 야당을 설득하여 검찰개혁을 이루어내려는 의지와 헌신, 정치검사들의 교언영색을 꿰뚫어보는 통찰과 식견, 친분이나 정치적 필요에 휘둘리지 않는 엄정한 신상필벌의 실천력 등을 갖춘 법무부 장관이 이제라도 왔으면 좋겠습니다. 기득권의 교묘한 저항에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고 헤맬 때 방향을 잡아주고, 아랫사람의 고언에 귀 기울여 길을 찾고, 검찰개혁이라는 불가능할 것 같은 꿈을 꾸다 지친 사람들을 다독여 함께 내일을 향해 계속 나아가게 하는 그런 사람이 장관이 되면, 정의로운 사회가 성큼 다가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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