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 금지법, ‘혁신경제 시대’ 진보의 미션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최병천의 21세기 진보] 타다 금지법, ‘혁신경제 시대’ 진보의 미션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이후 1797~1815년 기간 동안, 나폴레옹 전쟁이 벌어진다. 나폴레옹 전쟁은 초기엔 프랑스 혁명을 방위하는 성격을 가졌다. 점차 유럽 침략의 성격을 갖게 된다. 나폴레옹 전쟁 과정에, 영국은 1815년 곡물법을 제정한다. 당시 영국은 산업이, 프랑스는 농업이 발달해 있었다. 곡물법은 값싼 프랑스산 곡물의 수입금지를 타깃으로 했다. 쉽게 말해, 프랑스의 값싼 곡물 수입을 막기 위한 보호무역 정책이었다.

영국의 곡물법 폐지 관련 계급투쟁

영국에서 곡물법은 계급투쟁의 장(場)이었다. 곡물법 폐지 여부를 둘러싸고 각 계급들은 입장이 달랐다. 4개의 계급이 등장한다. ①지주 ②농민 ③산업자본가 ④산업노동자다. 곡물법 폐지를 반대했던 집단은 어디일까? 곡물법 폐지를 찬성했던 집단은 어디일까? 역사를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투쟁으로 이해하는 계급투쟁적 세계관에 의하면 ①지주와 ③산업자본가가 ‘지배계급 연합’이다. ②농민과 ④산업노동자가 ‘피지배계급 연합’이다.

그러나 실제 곡물법 폐지를 둘러싼 계급 연합 구도는 완전히 달랐다. ①지주와 ②농민이 한편이었다. 이들은 모두 곡물법 폐지를 반대했다. 농업에 대한 보호무역을 주장했다. ③산업자본가와 ④산업노동자가 한편이었다. 이들은 농업에 대한 자유무역을 주장했다. 지주와 농민은 ‘농업 세력’이라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해외의 값싼 농산물 수입을 막을수록 국내 농산물을 더 비싸게 팔 수 있었다. 보호무역을 옹호하는 이유다. 이 경우 소비자는 손해를 보게 된다.

산업자본가와 산업노동자 계급은 ‘산업 세력’이라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해외의 값싼 농산물이 수입될수록 생필품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자유무역을 주장한 이유다. 내용적으로 볼 때 지주와 농민은 ‘전통경제 연합’이었다. 산업자본가와 산업노동자는 ‘혁신경제 연합’이었다.

곡물법은 1846년 폐지된다. 영국 역사에서 곡물법 폐지는 영국의 산업자본가 계급이 지주 계급에 대해 ‘정치적으로’ 승리한 의미를 갖는다. 흥미로운 것은 곡물법 폐지 논쟁이 있던 시점에 영국 사회주의자들과 영국 노동운동의 입장이다. 영국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운동은 산업자본가들과 연대하여 ‘곡물법 폐지동맹’을 만들었다. 산업자본가와 연대투쟁을 했다.

사회주의 이론가인 카를 마르크스(1818~1883)는 곡물법 폐지 논란이 있던 시대의 사람이다. 마르크스가 유럽에서 셀럽이 된 계기였던 <공산당 선언> 발간은 1848년이었다. 당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모두 ‘곡물법 폐지’를 적극 찬성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산업노동자 계급의 이익에 부합했다. 다른 하나는 생산력 발전에 부응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혁신경제의 편’이 되기 위해서였다.

‘레프트 진보’ 아닌 ‘퓨처 진보’로

최근 대법원은 ‘타다 베이직 서비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2020년 2월 타다 베이직 서비스는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당시 국회는 1심에서 무죄가 나오자 아예 ‘타다 금지법’을 발의하고 통과시켰다. 2020년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이었다. 타다 금지법은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고, 국민의힘이 동조했다. 타다 금지법은 ‘혁신경제를 죽이는’ 상징적인 법안이 됐다.

오늘날 한국 정치에서, 정의당과 민주당을 흔히 ‘진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도대체 ‘진보’가 무엇인가? 우리는 진보의 개념 자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출현 이후 진보 개념은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존재했다.

첫째, 좌파(Left)다. 프랑스 혁명 이후 의장석을 기준으로, 급진파인 자코뱅당은 왼쪽에, 온건파인 지롱드당은 오른쪽에 앉았던 것에서 유래한다. ‘진보, 좌파, 급진주의’는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 경우, ‘더 센 주장’은 항상 진보적이다. 최저임금 1만원보다 2만원이 더 진보적이고, 2만원보다 3만원이 더 진보적이다. 그러나 생산성을 과도하게 초과하는 최저임금 인상은 반드시 큰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접근의 특징은 ‘경제학적 원리’와 상충되거나, 최소한 무관심하다.

둘째, 미래(Future)다. 진보 개념의 핵심을 미래로 보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전통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높이 평가하고, 생산력을 중시했던 것은 모두 미래를 중시 여겼기 때문이다. 이 경우, 진보의 핵심 미션은 ‘혁신경제의 편’이 되는 것이다. 유럽에서 복지국가를 주도했던 정당은 사회민주당(사민당) 계열이다. 사민당의 정체성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산업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민주적 방법을 사용하되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앞의 것은 ‘대표’에 관한 문제이고, 뒤의 것은 ‘가치’에 관한 문제다.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는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혁신경제 자본주의’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혁신경제 시대에 진보성향 정당은 누구를 대변하고,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할까?

한국 정치사에서 민주당의 핵심 정체성은 ‘민주화’였다. 지금은 혁신경제 시대다. 한국의 진보성향 정당들은 ‘지식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영국에서 곡물법 폐지 이전, 산업노동자와 산업자본가는 한편이었다. 마찬가지 원리로 전통 산업이 강력한 상황에서 혁신경제 노동자와 혁신경제 기업가 역시 한편이 될 수밖에 없다.

혁신경제는 ‘기존 경제’로 먹고살던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주게 된다. 혁신경제의 다른 표현은 갈등경제다. 진보는 혁신경제를 지원하되, 사회통합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갈등조정 역할을 해야 한다. ‘레프트(Left) 진보’를 버리고, ‘퓨처(Future) 진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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