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참사’ 과제 남기고…사참위 씁쓸한 퇴장

김서영 기자

좌담회 열어 3년 6개월간의 활동 되짚어보니…

박항주 정의정책연구소 기후위기센터장, 박래군 4·16재단 상임이사,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문호승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왼쪽부터)이 6월 8일 서울 중구 사참위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좌담회를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박항주 정의정책연구소 기후위기센터장, 박래군 4·16재단 상임이사,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문호승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왼쪽부터)이 6월 8일 서울 중구 사참위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좌담회를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두개의 참사가 있다. 하나는 ‘한국전쟁 이래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냈다’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이고, 다른 하나는 전 국민이 함께 울었던 4·16 세월호 참사다. 이 두 비극의 진상을 밝혀내고,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는 목적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를 2018년 3월 꾸렸다. 그해 12월 조사를 개시했다.

그사이 우리는 ‘완전한 진실·온전한 치유·안전한 나라’에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사참위가 지난 6월 10일 조사활동을 종료했다. 오는 9월까지 종합보고서 제출만을 남겨놓고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 6월 8일 문호승 사참위 위원장, 박항주 정의정책연구소 기후위기센터장, 가습기 살균제 피해 당사자인 조순미 빅팀스(Victims) 위원장, 박래군 4·16재단 상임이사,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을 한자리에 모아 좌담회를 진행했다. 사참위 활동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지적이 오갔고, 남은 과제에 목소리가 모아졌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조순미 위원장은 이날 이동할 교통편을 찾지 못해 좌담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조 위원장과는 별도의 전화 인터뷰를 가진 후, 다른 참가자들의 논의에 덧붙였다.

-사참위 활동을 마치는 소회가 어떤가.

문호승(이하 문) “8년 전 세월호 참사를 접했을 때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에 분노했다. 그 에너지로 사참위에서 활동했는데,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한 점이 많았고, 특히 피해자분들께는 더욱 죄송하다.”

김종기(이하 김) “만감이 교차한다. 진상규명을 위해 지난 8년간 노력해왔는데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해 안타깝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은 끝까지 해야겠다.”

박래군 “국회가 위원을 9명으로 타협하는 바람에 사회적참사 2가지를 다루는 기구로서는 인력과 예산 제한이 많았다. 앞으로 재난은 계속 일어날 텐데 그때마다 특별법 만들고, 불완전한 위원회로 진실규명을 하라는 건 무책임한 것 아닌가. 독립적인 상설 조사기구를 둬야 한다.”

박항주 “2020년 국회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기능을 없애버렸다. 검찰이 피해자 주장을 더 빨리 조사했더라면 어땠을까를 주요하게 살펴보려던 참이었는데, 국회를 정점으로 하는 기득권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10여년 전 피해자들이 ‘고생하신다’며 준 박카스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먹겠다고 했는데 아직 그대로 있다.”

조순미(이하 조) “가습기 살균제 진상규명 기능이 빠지며 참사의 규모에 비해 잘 다뤄지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

조순미 빅팀스 투쟁본부 위원장이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빅팀스 제공

조순미 빅팀스 투쟁본부 위원장이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빅팀스 제공

-국정조사, 청문회, 위원회 같은 과거 활동과 비교해 사참위의 성과를 꼽자면.

문 “6월 7일 전원위원회 의결을 두고 ‘사참위가 결론을 내지 않았다’고 많이 보도됐는데, 저는 결론을 냈다고 생각한다. 위원들이 합의한 결론은 ‘세월호 침몰 원인이 외력인지 여부를 명확한 증거로 확인할 수 없다’란 것이다. 조사국에선 ‘외력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는데, 이 둘은 다르지 않다. ‘확보한 증거만 가지고는 외력을 침몰원인으로 결론낼 수 없다’는 점에서 양립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외력 가능성은 낮다’고 이해해도 무리가 없다. 앞서 선체조사위원회에서는 내인설과 외력설을 상호배타적인 두개의 결론으로 정리했는데, 우리는 그걸 각각 조사해 내인설의 핵심인 조타장치 고장은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의결하기도 했다.”

박래군 “세월호 침몰 원인은 사참위 전체 52개 조사과제 중 2~3개 정도인데 너무 이것만 쟁점이 된다. 사참위가 9월 제출할 권고안은 세월호·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첫 종합 권고안이라는 의의가 있다. 이 안을 정부와 정치권이 수용해 더 안전한 사회로 갈 수 있도록 하는 쪽에 관심을 모아주면 좋겠다.”

김 “진상규명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사참위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권고안도 진상규명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독립적 조사기구로서 사참위의 성과는 부정할 수 없지만 진상규명은 피해자와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다.”

조 “솔직한 말로 성과가 없는 것 같다. 사참위에서 초반부터 피해자 찾기 사업에 집중한 점이 아쉽다. 왜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2011년에서야 밝혀졌는지, 그 사이 피해자가 선제적으로 지원받을 부분은 무엇이었는지가 좀더 밝혀져야 했다. 피해자 지원을 제대로 하면 자연스레 홍보도 되고, 숨은 피해자도 찾는 것 아닐까. 당장 기존 피해자에 대한 지원도 어려운 상황에서 피해자 찾기는 진상규명국의 선순위가 아니었던 것 같다.”

문호승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6월 8일 서울 중구 사참위 사무실에서 활동 종료를 앞둔 소회를 밝히고 있다. / 권도현 기자

문호승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6월 8일 서울 중구 사참위 사무실에서 활동 종료를 앞둔 소회를 밝히고 있다. / 권도현 기자

-가해자 사법처리 결과와 사법정의 실현을 어떻게 생각하나.

문 “(세월호의 경우) 소수만 기소됐는데, 이를 두고 ‘사참위 조사가 잘못됐다’는 시각이 있다. 조사와 수사는 다르다. 조사는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는 반면, 수사는 형법을 어겼느냐를 본다. 검찰이 법을 어겼다고 판단할 정도로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에 대부분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가 나왔다. 사실 자체가 없었다는 게 아니다. 기소와 처벌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조사가 미진했다곤 볼 수 없다. 또 조사기관은 ‘문책’만 하는 수사기관과 달리 ‘문책’과 ‘대책’을 둘 다 한다. 대책으로서 우리 사회가 변화할 수 있게끔 권고안을 만들고 있다.”

박항주 “수만종에 달하는 화학물질을 정부가 다 관할할 수 없기 때문에 전반적인 안전책임은 기업에 두되 문제가 생길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해야 한다. 입증책임도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전환해야 한다. 왜 정보와 자료, 시간도 없는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나. 사법부와 준사법기관을 돌아보면, 2012년 공정위가 애경산업·이마트의 ‘가습기메이트’ 인체 위해성 여부를 들여다봤을 때 ‘위법하다’고 판단했더라면 재판 결과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기자 주: 2012년 2월 공정위는 애경산업·이마트에 대해 무혐의 결정했고, 2016년 2차 조사에서도 사실상 무혐의인 ‘심의절차 종료’로 종결했다). 또한 피해자들이 공정위 결정에 대해 2016년 9월 헌법소원을 제기했는데 헌법재판소가 아직까지도 판단을 내놓지 않고 있다. 초기 검찰수사도 제대로 안 됐다. 준사법기관인 공정위도 부실수사했다. 헌재는 결정을 안 한다.”

김 “최근 1심에서 해경 지휘부가 전부 무죄를 선고받았다. 판결문을 보면 ‘현장의 역할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해 구조 지시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죄를 물을 수 없다’는 황당한 내용이다. 현장과 지휘 각각의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조 “가해기업이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가했다는 점에서 가중처벌해야 한다. 가족을 위해 사용한 것이 우리의 삶을 이렇게 바꿔놓았다는 걸 돌아보면 울분이 터진다.”

조순미 빅팀스 투쟁본부 위원장. 빅팀스 제공

조순미 빅팀스 투쟁본부 위원장. 빅팀스 제공

-참사가 발생하면 국가와 사회에 대한 신뢰가 깨진다. 이를 되살리기 위해 정부나 기업에 무엇이 필요한가.

김 “세월호 참사 이후 진행된 국가폭력에 대해 퇴임 전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식 사과를 요청했다. 당시 정부가 유가족을 사찰하고 보수단체를 이용해 피해자를 모욕했다는 명백한 사실이 있으니 이에 대한 국가책임을 인정하길 바랐지만 하지 않았다. 참사가 발생한 건 박근혜 정부지만 박근혜 정부도 문재인 정부도 국가이고, 피해자는 국민이다. 그러니 ‘이전 정부에서 한 일이니 지금 정부는 책임이 없다’는 건 옳지 않다.”

박래군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전 정권에서 국가기관(국정원 등)을 동원해 피해자를 공격한 일에 대해 사과했다면, 하나의 선례로서 이후 (정부가) 그런 행위를 못 하게 하는 방지책이 됐을 것이다. 그마저도 하지 않고 떠난 점은 두고두고 아쉽다. 또 하나는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가 우리 법체계에 명기돼 있지 않다. 재난·참사 피해자의 기본적인 권리부터 시작해 진실을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박항주 “가습기 살균제 가해 기업의 기본 태도는, ‘법률적 책임은 없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률 기준으로 보면 맞는 얘기다. 피해분담금을 냈으니 책임지고 있다는 표현도 맞다. 사회적 책임은 돈으로만 해결하는 것도, 한 사건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화학물질 정보체계의 전달이다. 화학물질 생산과정의 노동자, 유통업자, 소비자에 대한 포괄적인 안전책임이 필요하다. 외국인 노동자가 화학물질을 다루고 있는데, 이들에게 안전 정보가 과연 얼마나 전달되는가. 정부를 보자면,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경우는 법적 다툼이 오래 이어지니 정부가 피해자 선구제를 하고 나중에 구상권을 행사하면 된다. 또 피해자를 위한 집단소송체계가 현재 없다. 그들의 소송을 대리할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 피해구제에 있어서 정부가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건 무능이자 폭력이다.”

조 “여야를 막론하고 국가가 참사를 당한 국민을 위해 해결에 나선다는 기본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

활동 종료를 앞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활동 종료를 앞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사참위 다음’을 맡을 윤석열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문 “사참위 권고안을 반가워할 기관은 없다. 법에 따르면 국회는 매년 사참위 권고사항을 각 기관이 이행하는지 시정하고 독촉할 임무가 있다. 권고사항을 얼마나 이행하는지 점검·공개하고 업데이트할 관리자를 두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또 사참위는 처음에 1년, 이후 1년 연장, 다시 1년 반 연장했다. 애초부터 4년으로 정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1년용 계획’은 조사대상과 범위에 한계가 있다. 4년을 내다보고 계획을 짰더라면 체계적이고 장기적으로 조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참사 상설조사기구가 생긴다면 이런 문제는 해소된다.”

김 “그래서 사참위가 9월에 발표할 보고서가 굉장히 중요하다. 미진하고 의혹이 남은 부분을 추가로 조사·수사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그래야지 그 이후로 나갈 수 있는 단서가 만들어진다. 유가족들은 2014년부터 수사권이 있는 조사기구를 요청했지만 ‘사법 근간을 흔든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앞으로는 진실규명에 의지가 있는 수사기구가 낫겠다.”

박래군 “피해자와 시민들이 허무주의에 빠질까 걱정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 사회가 한단계 나가는 일이 언제나 쉽진 않았다.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사참위 결과를 가지고 또 한발 나아가기 위해 힘을 만들어갈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박항주 “가습기 살균제 전문병원을 만들어야 한다. 피해자의 질환은 수십년에 걸쳐 점점 확대되거나 새로 발병하기 때문에 트라우마를 포함한 장기적·전문적 치료체계가 필요하다. 이들이 평생 안전한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구제에 나서야 한다. 이 같은 정부 책임은 외면하고 기업과 피해자 간 조정을 진행하는 건 그래서 기만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잊힐 권리’를 말한다. 당신 손으로 가족을 위해 뭔가를 샀는데, 그게 내 가족을 죽였다고 한다면 당연히 잊고 싶을 것이다. 진실규명과 피해구제가 제대로 이뤄져야만 잊힐 권리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

문 “세월호 쪽을 보자면, ‘왜 이렇게 오래 가느냐’, ‘그만하자’는 말도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우선 가족, 특히 자식의 죽음이기 때문에 잊지 못한다. 또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아니고 ‘목격’했기 때문에 그동안 도와줄 수 없었다는 무력감이 더해져 잊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조 “70일 넘게 농성 중임에도 사참위 관계자를 제외하면 유관부서 누구도 와보질 않는다. 피해자들은 전체 피해자의 명단도 모른다. 휠체어 타고, 산소호흡기 꽂고 같이 집회에 나갔던 피해자가 돌아가실 때마다 두려움이 들지만 우리가 우리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나. 앞으로는 강력한 청문회를 개최해 진상 규명을 끌어낼 계획이다. 국가와 가해 기업이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지원책을 논의하는 것이 순서다. 어떻게 가해자가 먼저 종국성을 논하며 ‘딜’을 하려 드나. (가습기 살균제 전문병원에 대해선) 차라리 피해자에 대한 종합적인 복지정책을 지원할 재단이 낫겠다.”

▶관련기사: 사참위가 밝힌 것과 밝히지 못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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