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공약 예산 낭비 막으려면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선거 공약 예산 낭비 막으려면

자유주의 경제학의 대부인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돈 쓰는 방식을, 누구의 돈인가와 누구를 위해 쓰는가의 조합에 따라 4가지로 구분했다. 내 돈을 날 위해 쓰는 경우, 내 돈을 남 위해 쓰는 경우, 남의 돈을 날 위해 쓰는 경우, 남의 돈을 남 위해 쓰는 경우이다. 넷 중 어떤 경우가 가장 낭비가 심하겠는가.

내 돈을 날 위해 쓸 때, 가령 내가 쓸 물건을 내가 살 때는 꼼꼼히 가격과 품질을 따져보고 가장 큰 효용(만족)을 얻도록 가성비 최고인 것을 선택한다. 내 돈을 남 위해 쓸 때, 가령 회사 동료의 생일 선물을 살 때는 품질도 신경 쓰겠지만 우선은 가격을 더 따진다. 남의 돈을 날 위해 쓸 때, 가령 회사 법인카드로 식사할 땐 일단 한도까지 쓰고 보되 가장 맛있고 좋은 것을 사 먹으려 한다. 마지막으로 남의 돈을 남 위해 쓸 때는, 비록 일상에서 예를 찾기는 어렵지만, 자기가 책임질 필요가 없다면 비용에도 그다지 신경 안 쓸 것이고 품질도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정리하면 ‘내 돈 나에게’면 비용과 편익을 모두 꼼꼼히 따지고 ‘남의 돈 나에게’면 편익을 꼼꼼히 따지며 ‘내 돈 남에게’면 비용을 꼼꼼히 따지지만, ‘남의 돈 남에게’면 비용과 편익 모두 관심 밖이라는 얘기다. 당연히 ‘남의 돈 남에게’가 가장 낭비가 심한데, 이게 바로 정부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지나치게 단순화한 감은 있으나 정부 비효율의 본질을 제대로 짚었다.

어떻게 하면 남의 돈을 남 위해 쓰더라도 내 돈을 날 위해 쓰듯 할 수 있을까. 이게 행정학자들이 노상 연구하는 주제다. 솔직히는 내 돈 날 위해는 고사하고 남의 돈 날 위해 쓰는 것만큼이라도 되게 하는 게 목표다.

각종 SOC 사업 예타 면제 남발

행정엔 비록 남의 돈 남에게 쓰는 상황이지만 비용과 편익을 강제로 따지게 하는 장치가 제법 있다. 대표적인 게 예비타당성조사다. 국가재정법 규정에 따라 정부 돈이 300억원 이상 투입되는 사업은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예타의 핵심은 비용편익분석이다.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과 얻는 편익이 얼마씩인지를 따지는 것이다. 비용보다 편익이 클 때 사업을 하는 게 원칙이지만, 때론 편익이 비용에 못 미쳐도 차이가 너무 크지 않으면 통과된다.

예타를 거친 사업은 최소한의 효율성이 보장될까? 그렇지는 않다. 통과한 사업 중에도 엄청난 예산 낭비 사업이 꽤 많다. 편익을 제대로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A지역과 B지역을 잇는 전철 노선을 건설한다고 하자. 이 사업의 편익은 어떻게 계산할까? 편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향후 이 전철을 몇명이나 이용하고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수입이 얼마인가일 것이다. 비록 전문가가 추정한다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라 정확할 수는 없다. 어떤 가정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상당히 달라진다. 그래서 갑의 입장인 지자체장이나 유력 정치인이 요구하면, 설령 대놓고 요구하지 않더라도, 을의 처지인 전문가는 갑이 만족하도록 부풀린 편익을 내놓기 십상이다(어차피 남의 돈으로 하는 남 위한 일 아닌가!).

얼마 전 용인경전철 손해배상 청구 주민소송에서 법원은 사업을 추진했던 용인시장과 수요 예측을 잘못한 한국교통연구원에 200억원 이상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막상 전철을 개통해보니 수요는 교통연구원이 추정한 수치의 10%에도 못 미쳤다. 용인시장은 마땅히 거쳐야 할 절차를 생략하며 사업을 밀어붙였다. 그동안은 뻥튀기 수요 예측과 무리한 사업 추진의 책임을 물을 수 없었으나, 이제 법원 판결로 제동이 걸렸다. 긍정적인 변화다.

엉터리 수요 예측을 방지해 예타의 신뢰성을 높이면 예산 낭비 사업을 막을 수 있을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예타를 아예 건너뛰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재정법엔 예타를 면제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 원래는 불가피한 경우에 제한적으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이현령비현령식으로 남용되고 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광주와 대구를 연결하는 달빛철도, 대구·경북(TK) 신공항, 가덕도 신공항 등이 예타 면제를 받았으며, 그 밖에도 각종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들이 줄줄이 예타 면제를 기다리고 있다.

선거 공약은 ‘남의 돈 남에게’ 끝판왕이다. 남의 돈을 남 위해 더 많이 쓰겠다고 생색낼수록 표 얻는 데 도움 되니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 결과는? 그냥 질러본 공약(空約)에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다. 진짜 실행돼 엄청난 예산이 낭비되고, 두고두고 골칫거리 된 사례가 어디 한두 건인가.

비용 선명할 땐 헛공약 사라질 것

어찌하면 무리한 공약으로 인한 예산 낭비와 지키지 못할 공약(空約) 남발을 최소화할까. 사업 공약이 정치인들에게는 남의 돈을 남에게 쓰는 것이지만 국민 혹은 유권자 입장으로는 ‘우리 돈을 우리에게’ 쓰는 것이다. 그러니 실상을 알면 내 돈만큼은 아니라도 남의 돈보다는 관심을 갖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사탕발림 혜택뿐만 아니라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을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우리로 치면 국회예산정책처에서 각 당이 내놓은 공약 이행에 들어가는 비용을 추계해서 발표한다. 유권자들은 편익뿐만 아니라 비용(세금)도 고려하니 한결 신중해진다. 정당들도 일단 질러보는 공약은 결코 내놓지 못한다.

우리도 10여년 전 비슷한 시도를 했다. 기획재정부가 총선 복지 공약의 비용을 추계했는데, 정치권은 반발했고 이를 의식한 선관위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위반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복지만 콕 집고 행정부가 주도한 점은 부적절했으나 공약 비용 추계 자체는 필요했다. 낭비성 공약이 점입가경인 지금은 더욱 그렇다. 선거 공약 비용 추계는 국회예산정책처가 맡는 게 맞다. 중립성이 우려되면 각 당이 다시 검증하면 된다.

비용이 선명하게 드러나면 공약 남발은 사라질 것이다. 글쎄, 큰 정부를 지향하는 정당은 더 많은 예산과 더 큰 사업을,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정당은 그 반대를 택할까? 아니면 정당 간에 총액을 맞출 수도, 가령 총사업 비용이 50조원 정도가 되게 하자고 합의를 볼 수 있다. 어느 경우든 지금보다 좋은 공약이 개발되고 예산 낭비는 줄 것이며, 유권자들도 정책을 보고 선택하는 경향이 늘어날 것이다. 윈윈이니 나 같으면 당장 하자 할 것 같은데, 정치권은 어떨까?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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