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잠자는 탄소 저감 법안들···‘원전 만능’ 정부·여당은 기후 변화 ‘무관심’

문광호 기자    조미덥 기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9일 서울 양천구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을 방문해 집중호우 대비 대심도 빗물터널 점검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9일 서울 양천구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을 방문해 집중호우 대비 대심도 빗물터널 점검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회에서 기후변화 대책으로 발의된 탄소배출 저감 관련 법안 중 3분의 2는 통과되지 못한 채 계류 중인 것으로 2일 확인됐다. 폭염과 수해 등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해졌음에도 정치권의 무관심 속 탄소 저감을 위한 다양한 논의들이 제대로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와 여당에 대해서는 수해 원인으로 기후 변화를 언급하면서도 그 근본 대책인 탄소 저감 노력에는 소홀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경향신문이 이날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21대 국회 출범 이후 법안 제안이유로 ‘기후변화’를 꼽은 291개 법안을 조사한 결과 탄소중립과 관련된 법안은 총 100개였다. 법안의 69%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전인 2022년 5월10일 전에 발의됐지만 현재까지 통과된 법안의 수는 33개에 불과했다. 관련 법안 67개가 법제사법위원회나 관련 상임위에 계류 중인 것이다.

탄소중립 법안을 내용별로 분류하면 ‘탄소배출량 저감’ ‘신재생에너지 육성’ ‘탄소인지 예산’ ‘탄소저감 투자’ ‘생태계 보존을 통한 탄소흡수’ 등으로 나뉜다. ‘탄소배출량 저감’의 대표적인 법안으로는 기동민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발의한 탄소세 기본법(탄소세법)이 꼽힌다. 탄소세법은 휘발유, 가스, 석탄 등이 에너지산업, 제조업, 건설업 등에 사용될 때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경우 그 물품을 탄소세의 과세대상으로 하는 법이다. 기후위기의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고 기후변화대책 마련 등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신재생에너지 육성 법안으로는 신영대 민주당 의원의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개정안’이 꼽힌다. 개정안은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의 입지에 관해 지자체별로 제각각인 이격거리(특정 시설로부터 떨어져 있어야 하는 거리) 제한을 철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주거지역 근처를 제외하고는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는 것이다. 탄소세법과 이 법은 환경단체가 그린피스가 지난 3월 선정한 ‘2030년 지구 온도 1.5℃ 상승’ 대응 대표법안으로도 선정됐지만 각각 기획재정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외에도 예산의 원칙에 ‘탄소중립을 위한 노력’을 반영하도록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맹성규 민주당 의원 발의), 탄소 배출량이 많은 석탄화력발전사업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는 ‘해외석탄발전투자금지 4법(한국전력법·수출입은행법·산업은행법·무역보험법 개정안) 등도 장기간 상임위에 계류 중인 상황이다.

의안정보시스템에서 기후변화 키워드로 검색되지 않은 법 중에도 유사한 취지의 법안들이 공론화를 기다리며 계류 중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2021년 7월 발의한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2021년 3월 발의한 탄소세법 등 대표적이다. 장 의원의 법안은 기존 과세 대상에 유연탄·무연탄·액화천연가스 등을 추가한다는 점, 용 의원의 법안은 탄소세 국민배당을 함께 추진한다는 점에서 기 의원 법안과 차이가 있다. 신재생에너지법안으로는 김원이 민주당 의원 등 47명이 발의한 풍력발전 보급촉진 특별법안이 2021년 5월 발의된 이래 2년 가까이 산자위에 계류 중이다.

국민의힘은 탄소 저감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 기후변화 키워드의 탄소중립 관련 법안의 발의자를 소속 정당별로 구분하면 더불어민주당 77개, 국민의힘 18개, 정의당 2개, 위원장 대안 3개였다. 국민의힘 법안 중에서는 이철규 사무총장이 지난 2월 발의한 ‘이산화탄소 포집·수송·저장 및 활용에 관한 법’에 같은 당 의원 24명이 공동발의에 참여하며 힘을 실었다. 이산화탄소의 포집·저장 및 활용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해달라는 산업계의 요구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의 무관심 속 이번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탄소 저감 정책은 점차 후퇴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3월 공개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따르면 산업 부문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 규모를 14.5%에서 11.4%로 3.1%포인트(810만t) 축소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보다 달성 목표를 한참 낮춘 것이다.

대신 정부와 여당은 소형 원자로 개발 등 원자력발전을 기후변화 대책으로 꼽는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19일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또 다른 과제는 기후 위기의 극복”이라며 “원전은 온실가스 발생을 줄이면서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 정부는 원전의 확대로 탄소중립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식, 최형두 의원은 지난해 11월 각각 ‘선진소형원자로’ ‘중소형원자로’를 기후변화 대책으로 꼽으며 관련 법을 발의했다. 최 의원은 제안설명에서 “기후변화 대응 수단으로 대표적 저탄소 에너지인 재생에너지 확대가 고려되고 있으나 기상 상황에 따라 발전량이 변해 안정적 전력공급이 어렵다”며 중소형원자로 개발 및 상용화를 제안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수해의 원인을 기후변화에서 찾으면서도 온실가스 배출 저감 등 기후변화 대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민간, 정부, 당의 긴밀한 협조 하에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국가재난관리체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개편 방안을 마련해주기 바란다”며 대책으로 하천 관리 등만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도 “기후변화로 인한 천재지변 양상이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전례없는 이상기후에 지금까지 해 온 방식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 평소에도 체계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디지털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춰야 된다”고 말했다.

용혜인 의원은 전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0여명의 국민의 목숨을 앗아간 극한 호우, 주말 새 15명의 국민의 목숨을 앗아간 극한 폭염 모두 기후 재앙의 순간이었다”며 “그러나 대한민국의 윤석열 정부는 기후위기라는 범인류적 사안에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용 의원은 “핵발전만을 기후위기 대응의 요술봉처럼 휘두르며 국민의 삶과 지구의 생태적 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며 “탄소 배출에 세금을 당장 부과해 비생태적인 생산과 소비를 빠르게 축소시켜 나가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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