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유해동물’이라는 모순된 이름…그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 있을까

허진무 기자
사진작가 문선희가 촬영한 고라니 사진. 가망서사 제공

사진작가 문선희가 촬영한 고라니 사진. 가망서사 제공

사진작가 문선희가 촬영한 고라니 사진. 가망서사 제공

사진작가 문선희가 촬영한 고라니 사진. 가망서사 제공

이름보다 오래된

문선희 지음 | 가망서사 | 192쪽 | 2만9000원

사진작가 문선희는 2013년 어느날 아침에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운전하다 낯선 동물을 만났다. 나중에 백과사전을 찾아보고 그 동물이 고라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고라니는 몸의 길이가 80~100㎝, 높이가 55㎝, 몸무게가 15~20㎏ 정도인 사슴과 포유류이다. 한국 전역의 완만한 산기슭에 산다. 잎이 넓은 풀을 잘 먹는다. 자기 구역을 만들어 혼자 산다. 구역을 침범당하면 “악!” 크게 소리를 쳐서 침입자를 내쫓는다.

문선희는 10년 동안 국립생태원과 야생동물구조센터를 다니며 만난 고라니 200여마리 중 50여마리의 얼굴 사진을 <이름보다 오래된>에 담았다. 땅바닥을 기어다니며 고라니가 스스로 자신의 눈을 마주볼 때까지 기다린 끝에 조용히 셔터를 눌렀다. 문선희는 고라니의 얼굴을 기록한 작품으로 올해 일우사진상(다큐멘터리 부문)을 받았다.

고라니는 세계적인 멸종위기 동물이다. 전체의 60%인 약 45만마리가 한국에 산다. 한국에서는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해 현상금까지 걸고 죽인다. 고라니 살해를 야생동물의 ‘개체수 조절’이라고 부른다. 종종 ‘로드킬’ 교통사고를 일으키거나 농작물을 먹어치워 농가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다. 사냥꾼이 고라니를 죽이면 지방자치단체가 마리당 3만원을 준다.

사진작가 문선희가 촬영한 어린 고라니(윗줄)와 어른 고라니(아랫줄) 사진. 가망서사 제공

사진작가 문선희가 촬영한 어린 고라니(윗줄)와 어른 고라니(아랫줄) 사진. 가망서사 제공

문선희는 ‘개체수 조절’ 시도 자체에 의문을 품는다. “우리는 정확한 통계와 구성원들의 합의, 적극적인 제도적 뒷받침을 바탕으로 한 인구정책에도 실패했다. 그런 인간에게 과연 야생동물의 개체수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할 능력이 있긴 할까.”

문선희는 고라니의 사진을 찍으며 ‘초코’ ‘세모’ ‘보라’ 같은 이름을 붙였다. 저마다 다르게 생긴 고라니들의 얼굴을 보며 눈을 마주치게 된다. 굳이 거창한 생명윤리 사상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고라니의 눈을 들여다볼 때 마음이 흔들린다. “모든 존재에게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심연이 있다. 몸을 낮추고 눈을 맞추는 일, 그 단순한 경험만으로도 우리는 살아 숨쉬는 생명의 의미와 무게를 실감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약간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이미지로 여는 책]‘멸종위기 유해동물’이라는 모순된 이름…그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 있을까
사진작가 문선희. 가망서사 제공

사진작가 문선희. 가망서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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