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공약 감별법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 <천천히 재생> 저자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내일모레(15일)다. 거리마다 공약을 담은 현수막이 빼곡하게 걸렸다. 공약의 상당수는 개발공약들이다. 4년 전 4·13 총선 때 서울지역 후보들이 공약한 지하철역 개수는 60개였다. 약속이 지켜진 것은 몇이나 될까? 홍수처럼 쏟아졌다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개발공약들을 이번 4·15 총선에서도 적지 않게 보게 될 것이다. 골라낼 줄 알아야 한다. 신뢰할 만한 공약과 헛된 유혹들을 어떻게 감별해낼 수 있을까?

[시선]개발공약 감별법

혹하지 말아야 할 첫 번째 유혹은 ‘안 해도 되는 개발’ 공약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하개발이다. 물론 꼭 필요하거나 불가피한 지하개발도 있다. 반대로 굳이 안 해도 되고, 그보다 더 좋은 대안이 있는 경우도 있다. 광화문광장 전면 보행화 주장은 자체로야 나무랄 데 없지만, 땅 위를 보행전용으로 바꾸려면 땅속에 차도를 새로 내야 한다. 전면 보행화란 결국 막대한 돈이 드는 지하개발을 하자는 뜻이 된다. 필요할 때 차량을 막고 광장으로 쓰면 될 일이다. 굳이 안 해도 되는 개발이다.

땅속 깊이 막히지 않는 고속도로를 뚫자는 주장은 서울과 부산 같은 대도시 개발공약의 단골 메뉴다. 이른바 대심도 지하도로는 천문학적 건설비가 들어갈 뿐만 아니라 대중교통 중심 교통체계를 자가용 위주로 되돌릴 시대착오적 발상인데도 틈만 나면 고개를 내민다. 고속도로나 철도의 지하화 주장이나 그 위를 덮어 덮개공원을 만들자는 주장도 같은 부류다. 효과가 전혀 없다는 게 아니다. 다른 시급한 일들에 앞서 그만한 비용을 들여 지금 꼭 해야 할 일인가를 묻는 것이다.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사람들이 걷고 쉬고 다채로운 활동을 즐기는 땅 위 장소들이다. 지하개발은 사람들을 땅속으로 끌어들여 거리를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 조심해서 해야 할 일이다.

‘막무가내식 개발’이나 ‘과도한 개발’ 공약에도 속지 말자. 개인 재산권을 존중하는 자본주의 도시에서 내 땅에 내 집을 지을 때에도 용도지역, 용도지구 같은 도시계획 규제와 건축법규를 지켜야 한다. 그것이 상식일진대, 밀도와 높이를 올려 주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재개발·재건축을 주민이 원하는 방식대로 추진하겠다는 공약이 버젓이 나온다. 달콤해 보여도 이뤄지기 힘든 약속이다. 치적을 과시하기 위해 내놓는 ‘상징물과 조형물’ 공약에도 넘어가지 말자. 현 정부의 정책에 맞지 않는 과도한 ‘규제완화’를 약속하는 여당 후보들 공약은 참으로 보기 민망하다. 공약은 그것을 내건 후보의 수준이고 또한 유권자들의 수준이기도 하다. 불량한 공약은 거절해야 한다. 자존감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법이다.

지금은 재생의 시대다. 개발을 남용하고 오용해서 벌어진 개발시대의 온갖 후유증을 치유해야 할 지금, 다시 “개발, 개발!”을 외치는 숱한 개발공약들에 나의 귀한 한 표를 내주지 말자. 개발과 재생은 시소의 양끝과 같다. 개발이 쉽고 유리해지면 재생은 어렵고 불리해진다. 코로나19 사태의 근원도 무절제한 개발과 무관하지 않다. 개발공약을 잘 감별한 뒤 천금 같은 한 표를 행사하자. 후회할 일 자초하지 말고. 남 탓도 그만하고. 지금 나와 당신의 선택이 우리의 내일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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