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수집 일의 기쁨과 슬픔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나는 그들을 착취하고 있다. 시급 1만원의 일에 400원도 안 준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배가 고프면 빵이 아니라 케이크를 먹으면 되죠”라고 한 마리 앙투와네트라도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분리배출에 열심인 한 시민일 뿐.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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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수거업체가 있는 아파트가 아닌 공동주택에선 각자 알아서 분리배출을 한다. 우리의 일은 여기서 끝난다. 이제부터 그들의 일이 시작된다. 재활용 산업의 끄트머리에 매달린 사람들이 밤이고 낮이고 춥든 덥든 종종걸음을 친다. 팔릴 수 있는 재활용품과 돈이 되지 않는 쓰레기를 고르는 작업을 ‘폐지 줍는 노인’들이 맡는다. 고물상 연합단체 ‘자원재활용연대’에 따르면 전체 재활용품 중 자원회수센터에서 처리되는 비율은 25%뿐이고 30%는 아파트에서 배출되는 재활용품, 나머지 45%는 영세 고물상에서 처리된다.

고물상을 살펴보자. 폐지 줍는 노인들은 하루에 40~200㎏을 수거하고, 현재 폐지 가격은 ㎏당 40원이다. 최대 200㎏을 수거해도 하루 8000원을 번다. 우리 동네 고물상 사장님은 “할머니들이 새벽 5시부터 문을 두드려. 저녁 7시에 문 닫을 때까지 수차례 수레만 차면 온다니까” 하신다. 하루 8시간 200㎏ 수거 시 시급은 약 1000원. 2020년 최저시급은 8590원. 즉 재활용품 수거인들은 최저임금의 13%를 받고 도시의 거리를 치우고 재활용품을 구원해낸다. 고물상 사장님은 “우리는 옛날 사람이라서 하지. 앞으로 이 할머니들 죽고나면 누가 하려고?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야. 돈 엄청 들지. 그걸 참 모른다니까”라고 덧붙인다. 그래서 계산을 해보았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최소 6만6000명이 재활용품을 수거한다. 하루 200㎏씩 6만6000명이 수거할 경우 총 13만200t이 된다. 거리에 쌓인 13만200t을 세금으로 처리할 경우 청소차 4752대와 1만4000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수거한 재활용품은 자원회수시설에서 재활용품으로 선별되거나 소각된다. 내가 사는 마포구 자원회수시설의 경우 하루 처리용량이 750t, 사업비는 1600억원이다. 따라서 13만200t을 처리할 경우 마포구 자원회수시설 17개, 즉 2조8000억원이 필요하다. 물론 운영비도 든다. 한 지자체의 재활용 선별장 원가 상정 보고서를 보면 45t급 시설 운영에 해마다 38억원이 드는데, 13만200t으로 환산하면 1년에 1조1000억원이다. 그러니까 추가 청소차와 수거인력 비용을 제외해도 자원회수시설에만 총 3조9000억 원의 세금이 필요하다. 이런 일을 월 20만원, 6만6000명의 임금 1320억원으로 ‘퉁친’ 셈이다. 이는 총비용의 3.4%다.

이 착취의 밑바닥에는 우리가 내다 버린 물건이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 흘러 내려 어떻게 처리되는지가 놓여 있다. 얼마 전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폐지를 줍는 노인에게 보조금을 주는 방향으로 ‘자원 재활용법’을 발의했다. 왜 재활용시장에 개입해 애먼 세금을 쓰느냐, 수거 경쟁이 심해지면 어쩌냐 등 반대 의견이 들린다. 전 브라질 대통령 룰라는 “왜 부자를 돕는 것은 투자라 하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하는가”라고 되물었다. 심지어 이 돈은 가난한 노인을 위한 시혜적 비용이 아니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 처리에 드는 정당하고도 윤리적인 비용이다. 우리의 일상을 빚진 자들에게 빚지고 있는 것도 모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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