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의 필요충분조건

〈윤태범/ 방송통신대 교수·참여연대 정책사업단장〉

관청 혹은 바름(正)을 뜻하는 ‘공(公)’은 중국의 전국시대 한비자에서 처음 언급된다. 한비자에서는 “자기의 이익만을 취하는 것을 사(私)라 하고, 이 사와 반대되는 것을 공(公)”이라 하였다(自環者謂之私, 背謂之公). 즉 공은 자기 이익을 멀리하고 타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니, 공직자는 곧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한자만이 아니다. 공과 같은 뜻을 가진 영어 ‘Public’의 어원인 ‘Pubes’의 원뜻도 “타인을 돌보다”라고 하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의 의미나 혹은 이것에 근거한 공직자의 의미와 역할에는 하등 차이가 없다.

그런데 최근 공직자들 사이에 공의 의미를 크게 훼손한 사례들이 연이어 등장,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몇몇 장관(혹은 장관 후보자)들의 부도덕성이나 과거의 그릇된 처신들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고, 결국 일부는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이는 모두 ‘공’의 의미를 망각한 데서 비롯된 사례들이다.

-이해충돌 상황에 관여됐는가-

그동안 장관들이 ‘공’을 망각하고 부도덕하게 처신하였다가 장관직을 중도에 그만둔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건국 이후 군부정권까지는 차치하고 민주화 이후 본격적인 민간정부라고 한 김영삼 정부 때부터 최근까지 조사해보면, 줄잡아 30여명 정도가 부도덕한 처신으로 중도에 사퇴하였다. 장관급의 수를 감안하면 적지 않은 규모이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공직의 꽃인 장관들이 한두명도 아니고 30여명이 도덕성 문제로 중도 하차하였다는 것은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이들 대부분은 주식, 부동산, 이권 개입 문제로 그만두었다.

장관은 어느 공직자보다도 앞서서 ‘공’의 의미를 실천해야 하기에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장관 스스로가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의 상황에 처하지 말아야 한다. 쉽게 말해서 이권과 관련되는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이해충돌의 상황에 처하는 것만으로도 장관은 물론 정부정책도 국민의 불신을 받는다. 한 예로 땅을 많이 가진 장관이 ‘서민을 위한 부동산 정책’을 펼친다면 어떤 국민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장관 후보자의 적격성을 검증하기 위한 일차 관문은 후보자의 이해충돌 상황에 대한 면밀한 확인이다. 이해충돌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 장관직에 임명될 수 없다.

국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장관에 대한 청문회제 도입을 적극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청문제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이해충돌 문제는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절차 도입만 논의하고 있을 뿐이다. 장관 후보자의 이해충돌 여부가 청문과정에서 제대로 확인되지 못한다면 청문회는 무의미한 요식행위일 뿐이다.

미국의 경우, 의회 인준을 필요로 하는 고위직 후보자가 대통령에 의하여 지명되면, 후보자는 자신의 재산등록 사항과 경력 등을 자세히 기록한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미 의회는 이를 토대로 후보자가 공직수행과정에서 이해충돌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면밀하게 청문한다. 소유하고 있는 주식이나 부동산 등으로 인하여 이해충돌의 발생 가능성이 예견될 경우, 후보자가 이를 사전에 해소하지 않으면 의회 인준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미 의회의 청문제도는 이해충돌 확인제도이다.

-청문회서 가능성까지 걸러야-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아직 이해충돌을 제대로 규정한 법을 갖고 있지 않다. 공직윤리의 기본법이라고 할 수 있는 공직자윤리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아직까지 법 어디에도 이해충돌에 대한 규정이 없다. 청문회 도입에 앞서서 공직자윤리법에 공직자의 이해충돌 관련 규정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청문제도는 그저 형식적 절차로서만 활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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