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환경부, ‘일회용품 정치쇼’가 웬 말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올해 11월24일부터는 음식점 및 카페에서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젓는 막대 사용이 금지되고, 편의점과 슈퍼마켓에서는 비닐봉지 사용이 금지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20일을 채 안 남긴 상태에서 환경부는 규제 집행을 포기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종이컵 사용규제는 아예 없애고, 빨대 등은 기한 없는 계도기간 연장 혹은 단속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환경부는 종이컵을 규제하는 국가가 없고, 다회용기 세척시설 설치가 어려운 매장이 많기 때문에 사용 금지보다는 분리배출을 통한 재활용률을 높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종이컵 규제 국가가 없을까? 네덜란드는 내년부터 매장 내 일회용 플라스틱컵의 사용을 금지한다. 단, 플라스틱이 코팅된 종이컵도 플라스틱컵에 포함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도 재질과 관계없이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은 금지하고 있다.

카페의 경우 매장 내 플라스틱 일회용 컵 사용 금지 때문에 어차피 다회용 컵은 사용해야 한다. 일회용 종이컵 사용을 허용한다고 해서 카페 내 설거지 필요성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플라스틱컵만 규제하고 종이컵 사용은 허용하면 플라스틱컵을 종이컵으로 모두 바꿔버리는 풍선효과가 일어날 가능성만 높아진다. 아이스 음료를 종이컵으로 담는 카페가 벌써부터 보이고 있다.

음식점도 마찬가지다. 컵이 아니더라도 그릇이나 접시 설거지는 어차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컵 설거지 때문에 인력 부담이 그렇게 크게 증가하는 것인가? 이번 발표로 머뭇거리던 음식점들이 앞 다투어 다회용 컵을 치우고 테이블마다 종이컵을 쌓아둘까 걱정이다.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 금지가 무력화되면서 일회용 컵 보증금제의 마지막 숨통마저 끊어 버렸다. 매장 안에서 쓰는 컵조차 규제를 못하는데 테이크아웃 컵을 보증금으로 관리하자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종이 빨대 가격이 높고 빨리 눅눅해지는 등의 문제가 있어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당장 금지할 수 없다고 한다. 계도기간을 연장하고 그사이 대체품 품질이 개선되고 가격이 안정화될 수 있도록 생산업계와 논의하겠다고 한다. 선후가 완전히 잘못되었다. 규제가 받쳐줘야 종이 빨대 시장에 투자 및 기술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단가 인하 및 품질 개선이 가능하다. 실제 지난 몇년 동안 종이 빨대 단가가 크게 떨어지고 품질도 개선되어 왔다. 그런데 이번 발표로 카페들이 종이 빨대 구매를 취소하고 플라스틱 빨대로 모두 돌아섰다. 종이 빨대 제조 업체가 모두 도산하게 생겼는데 누구와 논의할 것인가?

비닐봉지는 대체품 사용이 이미 안착되었으니 단속이 불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편의점 사용 봉투의 70%가 일회용 생분해성 비닐봉지인데 안착이 된 것인가? 언제부터 환경부가 생분해성 비닐봉지를 대체품으로 인정했나? 생분해성 비닐봉지도 일회용품이고 플라스틱이다. 생분해성 비닐봉지 사용량의 증가는 쓰레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쓰레기를 줄이는 건 아름다운 일이지만 규제가 뒷받침 안 된 자발적 참여는 공허하다. 기후위기, 미세플라스틱, 쓰레기 대란 등 다중 환경위기를 돌파하려면 캠페인만으론 안 된다. 환경부는 환경을 지키려 싸우는 곳이다. 국민 환심을 사는 정치, 하지 말라.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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