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마나 한 재산공개와 공직윤리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가상자산·공직윤리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독립적 검증·조사위원회의 전수조사 필요

공직자 재산등록·공개 제도 전반 손봐야

지난 5월 17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김남국 의원의 자리가 비어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5월 17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김남국 의원의 자리가 비어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주간경향] 며칠 전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하다 나오는 길에 국회 정문 앞 횡단보도에 섰다. 길 건너편에 국민의힘이 건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총체적 남국, 민주당”이라고 쓴 현수막이다. 김남국 의원 사태로 곤궁한 처지에 빠진 민주당을 비꼰 듯하다. 실제로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 보유·거래를 둘러싼 의혹이 제기된 이후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언론 보도가 줄줄이 나오고 있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전수조사 필요

그만큼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 의혹을 둘러싼 파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국회의원이 의정활동에 충실하지 않고 위원회 활동 중에도 가상자산 거래를 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심각한 공직윤리 위반이다. 거래 규모나 거래 횟수 등도 과도하다. 게다가 본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자금출처나 거래를 둘러싼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초기 대응을 미온적으로 하다가 민심을 잃었다.

현재 검찰이 김남국 의원 건에 대해서는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착수했으니 곧 진실이 규명되기를 기대한다. 다른 한편 국회 차원에서도 응분의 징계가 이뤄져야 한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그렇게 가벼운 자리가 아니다. 설사 불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국회의원이 자신의 직무에 전념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공직자로서의 기본 윤리를 어긴 셈이다. ‘김남국’과 ‘가상자산 등록 조항 신설’로 논의의 범위를 축소해서는 안 된다. 이미 국회에서는 그렇게 논의 범위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국회는 지난 5월 25일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해 가상자산을 공직자 재산 등록·공개대상에 포함했다. 국회법도 개정해 국회의원 본인과 배우자, 직계존비속의 가상자산을 등록하게 했다. 개정안 부칙에서는, 21대 국회의원들이 임기개시일 이후의 가상자산 소유 현황 및 변동 내역을 오는 6월 30일까지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에 등록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가 이해충돌 여부를 검토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무소속 김남국 의원의 가상화폐 보유 논란과 관련해 검찰이 지난 5월 15일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과 업비트를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의 모습. | 연합뉴스

무소속 김남국 의원의 가상화폐 보유 논란과 관련해 검찰이 지난 5월 15일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과 업비트를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의 모습. | 연합뉴스

언뜻 보면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이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전수조사’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가 단지 ‘검토’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가상자산을 소유하거나 거래한 국회의원이 있다면, 그 경위나 자금출처·흐름 등을 조사해야 한다. 이런 일을 국회 내부에 있는 자문기구인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가 하기는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가상자산 전문가와 공직윤리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독립적인 검증·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전수조사하는 일이다. 조사범위도 국회의원부터 시작해 고위공직자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 이미 발생했을 수 있는 문제를 덮고, “앞으로 잘하자”고 말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 공직자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졌을 때, 국민권익위원회가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했던 사례도 있다. 어떤 형태로든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위공직자 전체의 가상자산 소유·거래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

물론 가상자산은 익명성과 은닉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려움이 있더라도,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 만약 전수조사를 피해서 가상자산을 숨긴 고위공직자가 있다면, 나중에라도 드러났을 때 정치적·법적 책임을 물으면 된다. 전수조사에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땜질식 법 개정으로는 안 돼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이 아닌 다른 고위공직자들의 경우에는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하더라도 6개월 후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돼 있다. 독립생계를 하는 직계존비속은 가상자산을 등록하지 않는 ‘고지거부’도 가능하다. 곳곳에 허점이 있다. 여론의 분노가 높으니까 ‘땜질식’ 입법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회에 공직자 재산등록·공개 제도 전반을 손봐야 한다. ‘가상자산’만 문제가 아니다. 지금 국회에는 상당한 주식을 갖고 있다가 국회의원이 된 의원이 여럿 있다. 그중에는 자기가 대주주로 있던 회사에 이익이 되는 행위를 해서 물의를 빚고 있는 의원들도 있다. 법안 발의뿐만 아니라 정책토론회 개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익을 줄 수도 있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의 특성상 직접 나서지 않아도, 동료의원에 부탁해 자기 회사에 이익이 되는 행위를 하도록 이끄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런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주식 백지신탁’ 제도를 도입했지만, 실태를 보면 무용지물임을 알 수 있다. 주식 백지신탁은 신탁된 주식의 매각을 전제로 한다. 그래야 주식을 신탁한 고위공직자와 그 회사와의 이해관계가 단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상장주식의 경우에는 매각이 안 된다는 이유로, 주식을 수탁받은 금융기관이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말로만 백지신탁이지, 실제로는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면 되찾아 간다. 그러니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에 자기가 대주주로 있던 회사를 위해 의정활동을 하는 ‘이해충돌’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김남국 의원이 지난 5월 14일 국회 의원실로 출근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날 출근 후 페이스북을 통해 탈당을 선언했다.  | 연합뉴스

김남국 의원이 지난 5월 14일 국회 의원실로 출근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날 출근 후 페이스북을 통해 탈당을 선언했다. | 연합뉴스

따라서 주식 백지신탁 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 비상장주식도 적극적으로 매각을 추진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국회의원들의 주식, 가상자산, 부동산 등을 둘러싼 이해충돌과 각종 법령·윤리 위반을 감시할 독립기구도 필요하다. 직계존비속은 독립생계를 이유로 재산등록을 거부할 수 있는 ‘고지거부’ 조항도 폐지하거나 대폭 손봐야 한다.

부(富)를 택하려면 공직을 떠나야

공직자 재산등록·공개제도는 정파적인 문제가 아니다. 공직자의 재산형성 및 재산증식 과정에서 부정이나 투기, 공직을 이용한 사적(私的) 이익 추구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건강한 보수, 진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직자 재산공개를 시작한 사람이 보수로 분류할 수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취임 직후인 1993년 2월 27일 본인의 재산을 공개했다. 아직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의 법제화 이전인데, 본인부터 스스로 재산을 공개하고 장관 등 고위직들도 공개하도록 이끌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명예가 아니라 부를 택하려면 공직을 떠나라”고 공직자들에게 주문했다. 그 얘기는 지금도 유효하다. 재산을 불리는 데 관심이 있다면,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을 맡을 것이 아니라 공직 바깥에 있어야 한다. 공직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자기 재산을 불리는 데 관심이 있다면, 그건 국민에 대한 심각한 배신이다.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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