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찾아가는 이동노동자 쉼터’ 가보니
서울 최저기온이 1.2도를 기록한 지난 7일 오후 1시30분, ‘부릉’ 소리를 내며 달려오던 오토바이가 도봉구 창동 일대 ‘B마트’(배달의민족 물류창고) 주차장에 멈춰 섰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임청욱씨(57)는 먼저 도착해 있던 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휴, 너무 춥네.” “저번 주보단 낫지.” 배달노동자 10명은 장갑과 넥워머, 밀러터리 점퍼, 방한화 등으로 무장한 모습이었다.
기온이 줄곧 영하로 떨어진 지난주에 비하면 따뜻한 날씨였다. 그래도 노동자들은 연신 “춥다”고 했다. 배달 일을 하는 이들은 ‘콜’을 기다리며 밖에서 견뎌야 하는 시간이 많다. 15분 정도 이 곳에 서 있었다는 김모씨(37)는 “얼마 전 캐나다산 방한화를 18만원 정도 주고 샀다”고 말했다.
“여름이 체력전이라면 겨울은 ‘아이템전’이에요. 옷을 여러 겹 껴입고, 열선 히터도 달고, 각종 방한 용품도 챙겨야 하니까요.”
전성배씨(37)가 ‘찾아가는 이동노동자 쉼터’ 현수막을 단 캠핑카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달부터 B마트 인근, 공영주차장, 고속버스터미널 등 배달 노동자들이 자주 모여 있는 장소들을 찾아 이동형 쉼터를 순회 운영하고 있다. 이곳 B마트 도봉쌍문점 일대는 노원·도봉·강북에서 일하는 라이더들이 ‘비둘기’처럼 모였다 사라지는 곳이다.
캠핑카에는 라이더들에게 나눠줄 커피와 다과, 넥워머 등이 빼곡하게 비치돼 있었다. 전씨는 “서울에 (고정형) 이동노동자 쉼터가 4군데 있지만 라이더들에게는 접근성이 좋지 않다”면서 “캠핑카는 여러 명 들어와 머물기엔 좁지만 곳곳에 이런 공간이 있는 게 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날 찾아가는 쉼터를 방문한 이들은 모두 40~50명 남짓이었다. 라이더들은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다과를 받아가거나 안으로 들어와 잠시 몸을 녹이면서 하나 같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쉼터 관리를 맡고 있는 전씨는 수년간 배달 경험이 있어 이쪽 사정에 밝다. 그는 “코로나19가 한풀 꺾이면서 배달 수익성이 많이 떨어졌다”면서 “외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주문량 자체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배달 노동자는 원래 겨울 한파 때 호황을 보는 계절성 노동자인데, 요즘은 전보다 훨씬 벌이가 못하다”고 말했다.
일감은 줄었으나 한파에 대기하는 시간은 늘어났다. 김씨는 “하루 총 15시간 정도 일하는데 그 중 5시간 정도는 콜을 대기하는 데 쓰는 것 같다”면서 “한 번 기다리기 시작하면 평균 20~30분, 많게는 1시간까지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30년간 운영하던 봉제공장을 관두고 배달 일을 시작했다는 최원림씨(57)도 “일이 많으면 계속 돌아다녀서 추운 것도 모를텐데…”라고 했다.
“안전 운전하세요, 선생님. 내일도 오니까 내일도 꼭 들르세요.”
배달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최씨가 일어서자 큰 소리로 전씨가 인사했다. 배달할 음료와 과자, 채소 꾸러미를 물류창고 직원에게서 받아 든 최씨는 오토바이에 물건을 싣고 이내 모습을 감췄다. 초록색 플라스틱 상자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내던 다른 라이더들도 오토바이를 몰고 하나둘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