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미국·멕시코, 남유럽, 중국 등 세계 곳곳에서 ‘50도’에 달하는 폭염이 발생했다. 세계 기상학자들은 이번 폭염들 모두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미국·멕시코와 남유럽의 폭염은 기후변화가 아니었으면 발생할 확률이 ‘0%’에 가까웠고, 중국 폭염은 250년에 한 번 정도 일어날 수 있는 이변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올여름 동시에 발생했다.
기후연구단체 세계기상원인분석(World Weather Attribution, WWA)은 25일(현지 시간) 이런 내용을 담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극한 폭염이 발생한 중국, 미국·멕시코, 남유럽에 기후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했다.
미국에서만 1억명 넘는 사람이 이번 폭염의 영향을 받았다. 미국 애리조나주 등에서 수십 명이 죽었고, 멕시코에서는 21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프랑스에서는 원자로를 냉각하는 강물이 줄어들어, 두 원전의 전력 출력을 제한할 가능성이 생겼다. 고온 건조한 환경이 오래가며 미국 서부 등에서는 산불이 늘었다.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는 올리브, 우유, 토마토 등의 생산량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미국에서도 대규모 농작물 피해가 생기며 기후위기는 경제 위기로도 번지고 있다.
WWA는 각 지역에서 폭염이 지속했던 기간을 기준으로 현재 기후에서 이런 폭염이 발생할 가능성을 연구했다. 미국·멕시코는 18일간, 남유럽은 7일간, 중국은 14일간 평균 최고기온이 재현될 가능성을 분석했다.
인간이 만든 기후변화 때문에 이제 이런 수준의 폭염은 드물지 않다. WWA의 분석 결과 이번과 유사한 폭염은 미국·멕시코에서는 약 15년에 한 번, 남유럽은 10년에 한 번, 중국은 5년에 한 번꼴로 발생할 수 있다.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WWA는 산업화 이전(1850년~1900년) 기후에서 현재와 같은 폭염이 발생할 확률을 계산했다. 미국·멕시코는 최대 950년에 한 번, 남유럽은 4400년에 한 번꼴이었다. 확률 최젓값은 산출할 수 없을 만큼 작았다. 마리얌 자카리아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그랜덤연구소 박사는 지난 24일 온라인으로 중계된 사전브리핑에서 “과거 기후에서 이런 폭염은 ‘극단 값(outlier)’으로 발생 확률이 무한히 낮았다”라며 “기후변화 없이는 사실상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의미”라고 말했다.
중국 폭염은 과거에는 250년에 한 번 발생할 수 있던 폭염으로 분석됐다. 중국에서는 2세기에 한 번 발생할까 말까 했던 폭염이 한 세기에도 20번 발생할 수 있는 일이 된 셈이다.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약 1.2도 올랐다. 여기서 0.8도가 더 올라 ‘2도 상승’한 지구가 된다면, 이런 폭염이 발생할 확률은 2배 이상 올라 2~5년에 한 번꼴로도 발생할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폭염 피해가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폭염의 영향으로 발생한 초과 사망자를 분석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심정지 등 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폭염이 인간 건강에 미치는 영향의 전체 피해를 파악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기후변화, 노령화, 도시화 추세가 폭염 취약성을 악화시키지만, 유럽과 북미의 많은 지역에서는 폭염 대책이 마련되며 건강 영향이 감소하고 있다”라며 “폭염 대책을 신속히 정비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