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지칭하는 말들

신예슬 음악평론가

세상에는 음악 장르를 지칭하는 수많은 이름이 있다. K팝, 트로트, 재즈, 국악, 인디, 힙합, 월드뮤직, 뉴에이지, 클래식 등 음반 가게나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 장르의 이름은 음악을 분류하는 데 뿐 아니라 “무슨 음악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대답할 때도 유용하게 쓰인다.

[문화와 삶]음악을 지칭하는 말들

나에게도 종종 무슨 음악을 좋아하냐는 질문이 찾아온다. 보통 나는 현대음악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대답하는데, 가끔은 “현대음악은 뭔가요? 현대적인 음악인가요?”라는 질문이 되돌아온다. 그럴 때 나는 “현대음악은 현대의 모든 음악을 지칭하기보다는 서양음악사의 맥락에서 현대라는 시기를 지칭하고 여전히 유럽 악기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를테면 클래식 음악 장르에서의 현대인 셈인 거죠”라고 거칠게나마 그 이름 뒤에 숨은 맥락을 설명하곤 한다.

현대음악이라는 말이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나도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된다는 이유로 이 단어를 사용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이 이름이 과연 최선일지, 마땅한 대안은 없을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우선 이 음악에서 현대라는 시기만큼 중요한 것은 유럽이라는 지역에서 이루어져 온 그간의 역사다. 이제는 세계 각지에서 만들어지는 현대음악이 각자의 지역성과 역사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 공동의 과거가 유럽 문화라는 사실은 명시되지 않은 채 암묵적인 맥락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런 아쉬움이 있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현대음악’이라는 이름을 유럽 전통을 따르는 근래의 음악이 독점하는 상황이 문득 묘하게 느껴졌다. ‘클래식’ 혹은 ‘고전음악’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게 비단 이들만은 아닐 것이고, 제각각의 문화권에 소위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음악이 있을 텐데 말이다. 이 큼지막한 개념어들이 구체적인 장르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쓰이는 상황을 곰곰이 되짚다 보니, 이 음악들이 그 이름뿐 아니라 그 말이 뜻하는 가치도 자연스레 선점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올해 봄, 서울대학교 현대음악시리즈 STUDIO2021과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열린 ‘바람의 외침’이라는 공연을 접했다. 한국의 대금, 아르메니아의 슈비, 유럽의 플루트까지 세 개의 목관악기를 중심으로 꾸려진 이 공연의 취지는 이 악기들로 연주하는 세 문화권의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을 고루 들려주겠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음악을 모아 최대한 동등하게 선보이려 노력한 이 무대는 어쩌면 너무 당연했지만 매순간 감지하지 못했던 것들을 일깨워주었다. 이는 바로 클래식을 한국 전통음악이나 아르메니아 전통음악과 마찬가지로 유럽 전통음악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현대음악은 근본적으로 유럽 전통에 깊게 뿌리내린 음악이라는 것이었다. ‘유럽 전통음악’ ‘유럽 전통을 따르는 현대음악’이라는 적혀 있지 않았던 말들을 상상하면 이 음악들을 이전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연이 촉발한 생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예컨대 ‘한국 전통음악’ 대신 ‘한국 고전음악’이라는 표현은 어떨지, 전통과 고전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지, 한국 전통음악의 역사를 따르는 현대음악은 어떤 모습일지, 현대음악의 전제와 범위는 얼마나 유연해질 수 있을지 등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음악에 관한 말들을 교차시키며 서로를 비추어 보니, ‘클래식’과 ‘현대음악’이라는 이름 이면에 숨어있던 문화적 헤게모니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듯했다.

몹시 사소할 수도 있는 이 명칭을 고민하게 되는 이유는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이 말들이 음악에 관한 우리의 사고방식과 결코 무관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통용되는 용어를 쓰는 것은 편리한 일이고 때로는 그 용어 사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최대한 ‘서양’ 혹은 ‘유럽’ 혹은 ‘유럽 전통’이라는 말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천천히 언어 습관을 바꿔보려 한다. 작은 부분이지만 이런 실천이 이 음악을 위계 없이 더 정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세상의 수많은 고전과 현대의 음악을 더 열린 마음으로 만날 수 있게 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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