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방류 두고 볼 텐가

이정호 산업부 차장

“오염수가 과학적·객관적으로 안전하며, 국제법·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처분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검증해 나갈 것이며….”

이정호 산업부 차장

이정호 산업부 차장

이 문구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성 오염수와 관련해 국무조정실 등 유관 부처에서 지난 22일 배포한 ‘보도참고자료’의 일부다. 정부가 언론에 준 자료이니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알리고 싶은 내용이다. 같은 날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 위한 중요한 행정 절차에 도장을 찍었다는 내용을 정부가 설명하며 등장한 글이다. 일본은 이르면 올봄 오염수를 방류한다.

그런데 이 문구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개운치 않은 대목이 있다. 바로 ‘처분될 수 있도록’이란 표현이다. 처분의 사전적 의미는 ‘처리하여 치움’이다. 지금처럼 오염수를 탱크에 담아놓는 ‘저장’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처분’은 오염수를 얼른 바다에 내보내고 싶어 하는 일본 정부의 이해와 들어맞는 개념이다. 원전을 관리하는 도쿄전력 공식 홈페이지에도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처분’이란 표현이 명시적으로 등장한다.

환경단체와 일부 과학계는 오염수 방류를 핵심으로 한 ‘처분’이 해양 환경에 큰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본다. 오염수를 지속적으로 땅 위에 저장한 뒤 방사성 제거 기술이 발달할 시점을 기다리자는 입장이다. ‘처분’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는 것인데, 한국 정부는 국민에게 정보를 알리는 자료에서 처분을 기정사실화한 듯한 태도를 보이는 셈이다.

‘처분’이란 표현은 지난해 6월 오염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한·일 국장급 화상회의’ 결과를 한국 정부가 설명할 때에도 똑같이 등장했다. “오염수가 객관적·과학적 관점에서 안전하며 국제법과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처분되도록 일본 측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하였다”라는 대목이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라보는 한국 정부의 기본 인식에 문제가 있을 공산이 크다는 신호다.

백번 양보해 오염수를 바다에 ‘처분’하고 싶은 일본의 의지를 한국이 받아들인다고 치자. 그러려면 방사성물질이 정화돼 안전성이 보장돼 있다는 확증이 필요하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 관계자나 과학자가 오염수를 직접 살피는 일에 부정적이다. 대신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통해 검증받겠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IAEA 예산 분담금 비율에서 세계 3위이고, 대표적인 원전 강국이다. IAEA가 일본을 상대로 중립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일본 정부는 올해 4월 삿포로에서 열릴 주요 7개국(G7) 환경장관회의에서 오염수 방류의 투명한 처리 방식을 환영한다는 문구를 공동성명에 담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상황이 급하다. 한국 정부는 오염수 방류를 불가피한 현실로 인정하는 맥 빠지는 사후대책 대신 방류 저지를 목표로 한 사전대책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별일 없을 것이니 믿어달라”는 일본 정부의 설명에 국민 안전을 맡길 수는 없다. 국제해양재판소에 가처분 신청을 해 오염수 방류에 제동을 걸고, 일본에 맞선 국제 여론전을 전개해야 한다. 일본과 경제나 안보 협력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도 국익이다. 하지만 국민의 건강과 안전보다 가치 있는 국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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