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도, 통신도, 희망도 꺼져간다···가자 주민들 “도처에 죽음, ‘다음 차례’ 기다릴 뿐”

선명수 기자
28일(현지시간) 전기 공급 중단으로 암흑으로 변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상공에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인한 섬광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28일(현지시간) 전기 공급 중단으로 암흑으로 변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상공에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인한 섬광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이 본격적인 지상전에 돌입하면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는 한때 불빛도, 통신도 완전히 끊겼다. 3주 가까이 이어진 봉쇄에 외부 세계와 연결되던 ‘마지막 통로’마저 막혀가자 희망도 빠르게 사그라지고 있다. 주민들은 “우리는 그저 다음 차례를,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며 절망감을 토로했다.

이스라엘군의 대규모 지상군 투입 작전이 시작된 27일 밤(현지시간) 가자지구 내 모든 유·무선 통신과 인터넷이 끊기면서 이곳은 36시간 가까이 완전한 ‘고립’ 상태가 됐다.

통신 두절은 폭격으로 인한 사상자가 발생해도 응급차를 부를 수도, 가족의 생사를 확인할 수도 없음을 의미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가자지구가 이제 세상의 눈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음성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팔레스타인 사진 기자 압둘 라우프 샤트와 연락이 두절됐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적십자위원회, 국경없는의사회, 세이브더칠드런, 머시 코프 등 국제기구와 구호단체들도 한때 가자지구 안에 있는 직원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발만 동동 굴렀다. 세이브더칠드런은 가자지구 내부에 있는 직원으로부터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받은 뒤 직원들과 연락이 완전히 끊겼다고 밝혔다.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성명을 통해 “이런 정보 차단은 대규모 잔학 행위와 인권 침해를 은폐할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후 팔레스타인 통신업체 팔텔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파괴된 통신 인프라 시설을 29일 오전부터 점진적으로 복구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신호가 너무 약해 유선통신 밖에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도 언제 또 다시 끊길 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다.

이날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구호단체의 활동을 위해 가자지구에 스타링크 위성을 지원할 의사를 내비쳤으나, 이스라엘은 스타링크가 하마스의 테러활동에 악용될 수 있다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막겠다”고 밝혔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머리 위에서 전투기 소리가 들리면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신원 미상으로 집단 매장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몸에 매일 이름을 적는 것으로 전해졌다. 배터리가 남아 인터넷 연결에 성공한 이들은 소셜미디어에 유언장을 올리기도 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날까지 가자지구 내 사망자는 전쟁 3주 만에 8000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베첼렘의 가자지구 활동가인 올파트 알쿠르드는 “이스라엘군은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는다. 이 전쟁은 사실상 민간인을 상대로 한 전쟁”이라면서 “우리는 매일 ‘마지막 날’을 살고 있다. 우리 차례를 기다릴 뿐”이라고 절망감을 토로했다. 그는 이미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70여명의 가족과 친척들을 잃었다.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작가 나이루즈 카르무트는 “이전 전쟁 때는 많은 이들이 그래도 휴전과 삶에 대한 희망을 걸었다면, 이번 전쟁은 다르다”면서 “사람들은 그저 임박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가오는 미사일과 로켓 소리를 듣지 못한 채 그냥 폭사한다면, 그것이 이 모든 잔혹함 속에서 차라리 자비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팔레스타인 시인인자 에드워드사이드 도서관 설립자인 모사브 아부 토하도 연일 계속되는 로켓과 미사일 소리가 “죽음이 나에게 다가오는 소리”로 들린다면서 “죽어서 묻어줄 사람이 있는 이들은 그래도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신원 미상 시신이 집단 매장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3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신원 미상 시신이 집단 매장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전력과 의약품 부족으로 가동 중단 위기에 놓인 가자지구 내 병원들의 현재 상황도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스라엘의 봉쇄가 길어지면서 이미 상당수 병원이 전력 중단으로 폐쇄됐으며, 일부 병원은 응급실 기능만 남긴 채 가동이 중지된 상태다. 구급차 가운데 상당수는 휘발유 부족으로 운영을 멈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가자지구 내 최대 병원인 알시파 병원 주변도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았다고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이스라엘군은 2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하마스가 가자지구 내 최대 병원인 알시파 병원 지하에 지휘센터를 숨겨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한 점의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며 이를 부인했다.

현재 물과 연료, 의약품이 모두 부족한 알시파 병원에는 환자 5000여명을 포함해 이재민 약 6만여명이 공습을 피하기 위해 대피해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의 폭격이 심할 때면 병원 건물도 15분마다 흔들린다고 전했다.

이 병원에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여읜 신생아 130명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 공습에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에서 산모들이 숨을 거두는 와중에 의사들이 달려가 출산시킨 미숙아들로, 이 병원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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