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우주로 나아가는가’…다누리호 이후 우주전략 고민할 때

이종필 교수

(37) 월드컵 8강 부럽지 않은 대한민국의 ‘달 탐사 7강’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다누리호, 태양 중력 이용하는 ‘탄도달전이’ 궤도 따라 달까지 여행
연료 소모 줄이면서 심우주 항해기술 경험도 쌓아

달 탐사와 같은 우주 진출은 국가의 ‘토털파워’ 뒷받침돼야 가능
‘세계 7강’ 달성은 기술적인 성취를 넘어서는 의미

지난 8월5일 미국에서 발사된 한국 최초의 달 탐사선 다누리호가 135일간 약 600만㎞에 달하는 긴 여정 끝에 며칠 전인 12월7일 달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러시아,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7번째로 달에 탐사선을 보낸 나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명시적인 숫자만 봐도 달 탐사 ‘7강’은 월드컵 ‘8강’보다 더 나은 성취이다. 특히 달 탐사와 같은 우주 진출은 국가 전체의 ‘토털파워’가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보다 앞선 6개국은 모두 인구가 1억명이 넘는 나라들이며 경제 규모도 우리보다 훨씬 크다. 또한 일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앞선 네 나라는 모두 19세기 제국주의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중국은 지금 제국주의를 꿈꾸는 나라이다. 이들이 가장 먼저 달에 탐사선을 보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세계 7강으로 달 탐사선을 보낸 것은 특정 분야에서 어떤 기술적인 성취를 이루었다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는 일이다.

우선은 그 ‘어떤 기술적인 성취’ 자체도 간단하지가 않다. 다누리호는 지구에서 달로 곧장 향하지 않고 멀리 태양 쪽을 향해 먼 거리를 우회하는 경로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연료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다누리호의 원래 중량은 550㎏이었다. 그러나 개발과정에서 전력계 및 구조체의 무게증가로 인해 전체 중량이 678kg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중량이 늘면 연료를 더 많이 써야 한다. 그렇게 되면 원래 계획했던 임무를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수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누리가 선택한 방법은 탄도달전이(Ballistic Lunar Transfer·BLT) 궤도를 따라 비행하면서 연료를 25% 정도 절약하는 것이었다. 이 궤도는 태양과 지구 사이의 중력 균형점인 라그랑주 점1(L1) 근처까지 갔다가 다시 지구와 달로 돌아오는 궤적을 그린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먼 길을 둘러가는 여정에 연료를 더 많이 쓸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평균 거리는 대략 38만㎞이지만 BLT 궤적에 따른 이동경로는 600만㎞에 달한다. 그럼에도 BLT 궤적에서 오히려 연료를 덜 쓸 수 있는 것은 지구와 태양, 달의 중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탐사선을 달로 바로 보내려면 우선 지구의 중력을 충분히 벗어날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속력이 빠르면 탐사선이 달 궤도에 안정적으로 진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탐사선이 달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자체 연료를 소모해 역추진으로 속력을 줄여야만 한다. BLT 항로는 천체들의 중력을 최대한 활용해 탐사선이 자연스럽게 달 궤도에 포획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연료를 크게 아낄 수 있다.

탐사선이 지구 궤도를 벗어나는 과정에서는 태양을 향해 발사하는 것이 유리하다. 태양의 중력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탐사선이 언젠가는 달을 향해야 하므로 중간에 비행 방향을 바꿔야 한다. 이와 같은 선회기동을 하기에 적절한 지점이 바로 L1이다. 라그랑주 점은 태양과 지구처럼 두 개의 아주 무거운 물체가 서로 공전할 때 제3의 아주 가벼운 물체가 이들 두 개의 무거운 물체의 중력 속에서 균형을 이루어 세 물체의 상대적인 위치가 변하지 않는 점을 말한다. 이런 점들은 총 5개가 있어 L1~L5로 표현한다. L1은 지구에서 태양 방향으로 150만㎞ 정도 되는 지점이며,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위치한 L2는 지구에서 태양 반대 방향으로 150만㎞ 정도 되는 지점이다. 다누리호는 지구를 떠나 태양 방향으로 L1을 향해 가다가 그 근처에서 방향을 다시 지구로 바꾸었다. 이것이 지난 9월2일의 일로, 이때 다누리호는 궤적수정기동(Trajectory Correction Maneuver·TCM3)을 통해 기수를 달로 돌렸다. 이 기동이 전체 여정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기동이었다.

지금까지 지구 궤도를 도는 위성만 운용해 본 우리로서는 달에 처음 탐사선을 보내면서 달보다 훨씬 먼 거리까지 인공의 물체를 비행시켜 봤다는 것이 큰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다누리의 BLT 궤적에서 지구로부터 가장 먼 거리는 무려 154만8000여㎞에 이른다. 다누리호는 지난 9월7일 이 지점을 통과했다. 이와 같은 심우주 비행에서는 당연하게도 통신과 제어가 가장 큰 문제이다. 이 모든 난관을 뚫고 다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달 궤도에 진입했다는 것은 우리의 심우주 항해 기술이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누리호가 먼 거리를 둘러가는 항로를 택한 것이 결국에는 우리가 훗날 심우주를 탐험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BLT 항적으로 달 탐사에 나선 경우는 1990년 일본의 탐사선 히텐과 2011년 미국의 탐사선 그레일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달 궤도선 다누리가 지난 8월26일 오후 2시 지구로부터 약 124만㎞ 거리에서 촬영한 지구(오른쪽)와 달의 모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달 궤도선 다누리가 지난 8월26일 오후 2시 지구로부터 약 124만㎞ 거리에서 촬영한 지구(오른쪽)와 달의 모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다누리호에는 미 항공우주국(NASA)이 달의 영구음영지역에서 물을 탐색하기 위해 개발한 섀도캠과 국내에서 개발한 5개의 장비를 탑재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고해상도 카메라는 향후 우리가 보낼 달 착륙선의 착륙 후보지를 탐색한다. 달까지 가는 여정에서는 지구와 달의 모습을 함께 사진에 담기도 했다. 한국천문연구원의 광시야 편광 카메라는 전 세계의 기대를 받고 있다. 편광이란 빛과 같은 전자기파에서 전기장의 진동 방향이다. 햇빛이 달 표면에서 반사될 때 달 표면 입자들의 성질에 따라 편광이 달라진다. 이를 분석해 달 표면과 크레이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달 표면을 편광영상으로 촬영하는 것은 다누리호가 처음이다. 경희대의 달자기장 측정기는 달 주변의 자기장 세기를 측정해 달의 출생의 비밀에 다가갈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감마선 분광기는 달 표면의 원소 성분과 분포를 분석한다. 이는 달의 자원을 탐사하는 첫 단계라 할 수 있다. 또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제작한 우주인터넷 탑재체는 우주인터넷을 시험하는 장비이다. 지난 8월25일 다누리는 지구에서 121만㎞ 되는 지점에서 우주인터넷 탑재체 1차 성능시험에 성공했고 10월28일 지구에서 128만㎞ 되는 지점에서 2차 시험에 성공했다. 이때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포함된 영상 및 사진을 지구로 전송하는 데에 성공했다. 우주에서는 통신이 자주 끊기기 때문에 중계장치에서 데이터를 분할해 저장하고 전송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다누리호의 성공은 우리가 IT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달까지 이어갈 수 있는 중요한 토대이다.

다누리호는 내년부터 1년 동안 임무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난 11월28일 윤석열 대통령이 발표한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에 따르면 5년 안에 달 탐사용의 독자적인 발사체 엔진을 개발하고 2032년 달 착륙선을 보내 자원 채굴을 시작한다. 2045년에는 화성에 태극기를 꽂을 계획이라고 한다.

다음 과제는 우주산업이라는 새로운 생태계를 발전시키는 것
국가전략 차원의 비전과 철학에서부터 출발해야

우리는 우주개발의 후발주자여서 지금까지는 우주로 진출하기 위한 기초기반 기술 확보에 주력해 왔으나 이제는 누리호라는 자체 발사체도 개발했고 다누리호라는 달 탐사선도 달 궤도에 안착한 만큼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 ‘우주경제’라는 개념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마침 지금은 국가 주도의 우주개발에서 민간이 주도하는 이른바 ‘뉴스페이스’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이기도 하다. 우주산업이라는 새로운 생태계를 어떻게 키우고 발전시킬 것인가가 앞으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우리는 아직 후발주자여서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등 우주개발에 앞선 나라가 가는 길을 무작정 쫓아갈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충분히 준비될 때까지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전쟁 수행의 주체가 누구인가, 전쟁이 수행되는 공간이 어디인가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스타링크라는 저궤도 위성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전쟁의 양상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따라서 우주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도 국가전략 차원의 비전과 철학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주란 우리에게 무엇인지, 왜 우리는 우주로 나아가려고 하는지 그 전략적 목표가 명확하지 않으면 돈은 돈대로 쓰고도 의미 있는 성과를 후대에 남기지 못할 수 있다. 예컨대, 광복 100주년이 되는 해에 왜 화성에 굳이 태극기를 꽂아야 할까? 누가 먼저 국기를 꽂는가라는 국가별 경주는 20세기 중반 미·소 냉전시대의 산물이다. 게다가 화성엔 이미 구소련의 국기와 성조기, 오성홍기가 나부끼고 있다. 또한 우주‘경제’를 위해서라면 2045년까지의 탐사계획에 소행성이 반드시 포함됐어야 한다. 소행성 자원 채굴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주선진국들의 관심사였고 이들 나라는 계속 탐사선을 보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과 룩셈부르크, 아랍에미리트연합, 일본 등은 우주자원 채굴과 관련된 법제도 정비하고 있다.

미 백악관은 지난 4월 ‘우주공간에서의 서비스, 조립 및 제조(In-space Servicing, Assembly and Manufacturing·ISAM)’라는 국가우주전략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인공위성의 수명 연장, 업그레이드, 위치 조정, 우주쓰레기 제거, 인공위성 연료 공급 같은 서비스 활동과 우주공간에서 우주구조물을 조립 또는 심지어 제조하는 활동까지 포함돼 있다. 말하자면 우주공간에서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구현되는 셈이다.

물론 우리가 미국이 하는 모든 것을 따라갈 수는 없다. 그러나 세상이 어느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지는 알 필요가 있다. 연말연시 큰 선물처럼 무사히 달 궤도에 안착한 다누리호를 바라보며 흐뭇한 자부심을 가짐과 동시에, 앞으로 우리의 우주전략은 어떠해야 하는지 전문가들과 함께 고민해 보는 것도 정책결정권자들의 신년구상에 포함됐으면 좋겠다.

▶이종필 교수

[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왜 우리는 우주로 나아가는가’…다누리호 이후 우주전략 고민할 때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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