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바닥에 패대기’…물고기에도 복지를 허하라

김종목 기자

기존 “괴로움 느낄 능력 없다” 인식

최근 ‘고통 느껴’ 연구 결과 잇따라

국내 학술대회서 ‘물고기복지’ 다뤄

양식 어류의 삶을 개선하려는 목표를 두고 활동하는 단체인 물고기 복지 이니셔티브(fish Welfare Initiative) 로고. 출처: fish Welfare Initiative)

양식 어류의 삶을 개선하려는 목표를 두고 활동하는 단체인 물고기 복지 이니셔티브(fish Welfare Initiative) 로고. 출처: fish Welfare Initiative)

그간 동물복지 논의에서 물고기는 빠졌다. 물고기는 “고통이나 괴로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 즉 지각력 또는 쾌고감수능력”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낚시나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퍼덕대는 것도 단순한 반사 반응이라 생각했다.

함태성(강원대 로스쿨 교수)은 “최근에는 물고기도 고통을 느끼고 지각력이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연구 결과들이 꾸준히 나온다”며 동물복지 분야의 주요 사안으로 물고기 복지를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함태성은 지난달 25일 강원대 환경법센터와 지구와사람·사단법인 선이 주최한 ‘해양동물보호의 법적 쟁점과 과제’ 학술대회 중 ‘물고기복지에 관한 최근 논의 동향과 법적 쟁점’을 발표했다.

물고기 복지는 우선 ‘가두리 양식 형태의 대규모 집약적 물고기 양식 시스템’에 적용해야 한다. 함태성은 양식부터 운송과 도살 과정에서 물고기에 스트레스 같은 고통을 주는 사례를 소개한다. ‘질병 및 기생충 치료를 위한 화학물질이나 살충제 투여’ ‘물고기 사이 공격성을 유발하는 높은 입식 밀도’ ‘많은 수의 물고기 양식 때문에 바닷새, 물개 등 포식자들에게 노출’ ‘운송과정 중 수조의 물고기 밀집도와 물고기 배출 이산화탄소와 암모니아 부실 관리’ ‘공기, 얼음, 슬러리(slurry, 현탁액)를 통한 질식사 방식과 의식 소실 없이 소금에 놓아두기’ 등이다.

해외 여러 국제기구와 국가의 구체적인 물고기 복지 관련 법과 규정도 소개했다. EU의 ‘유럽연합 기능에 관한 조약(TFEU)’ 제13조는 “동물은 지각 있는 존재라고 명시하면서 회원국들에게 농업뿐만 아니라 어업에서도 ‘동물복지를 위한 요구사항을 충분히 고려할 의무’를 부과”한다.

스위스는 동물보호법 시행령 제100조에서 “물고기와 십각류는 조심스럽게 주의해서 잡아야 하고, 식용 목적의 물고기는 잡는 즉시 죽음에 이르게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문어 오징어 같은 두족류나 게, 가재 같은 십각류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지각력이 있는 동물로 인정한다. 뉴질랜드 동물복지법은 문어, 오징어, 게, 랍스터 등을 보호대상에 포함한다.

함태성은 현행 한국 동물보호법이 어류가 식용 목적일 때 시행령을 통해 보호 범위에서 배제하는 점을 지적한다. “살아있는 해산물을 즐기는 우리의 식문화 등을 감안한 현실 고려적 입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 방식이 오히려 현행 동물보호법의 입법목적과 취지에 반하고, 체계 정당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적확한 지적이라고 본다”고 했다. “전형적인 인간 중심적 사고가 반영된 규정의 한 예”라고도 했다.

대중의 인식은 법보다 앞서 나간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가 2021년 11월 내놓은 ‘2021 동물복지 정책 개선 방향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 어류 복지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9명은 “어류를 도살할 때 불필요한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함태성은 사람의 건강, 동물의 건강, 환경을 연결하고 강조하는 개념이자 의제인 ‘One Health, One Welfare(하나의 건강, 하나의 복지)’가 물고기 양식업을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순환체계를 만드는 데 기여하리라 본다고 했다.

박태현(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생태법인의 창설: 법적 쟁점과 과제’에서 “자연의 행위능력(또는 행위주체성)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인정을 바탕으로 자연을 권리를 갖는 주체로, 또는 사람과 같은 법인식을 갖는 것으로 인정하거나 선언”하는 사례를 소개했다. “자연에 법인격을 부여하거나 권리주체를 인정하는 법체계” 마련 사례다. “원주민의 인구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고 원주민문화와 생활양식이 살아 있으며 소위 서구법학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중남미”에서 자연 안에서 인간을 보고, 자연을 살아 있는 실체 또는 시스템으로 보는 법이 발달했다. 자연을 생명의 원천으로 보지 않고 자원이나 재산 같은 효용성의 대상으로 여기는 시스템을 거부하는 내용의 법이다.

가장 유명한 게 에콰도르가 2008년 근대 국민국가로는 최초로 어머니 지구로 지칭한 자연을 권리주체로 규정한 헌법이다. ‘좋은 삶’을 뜻하는 ‘부엔 비비르(Buen Vivir)’로도 알려졌다. 2010년 볼리비아도 ‘어머니 지구의 권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스페인 마르 메노르 석호. 출처 : 위키피디아

스페인 마르 메노르 석호. 출처 : 위키피디아

중남미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2022년 스페인은 유럽 국가로는 최초로 법(‘석호 및 그 유역의 법인격에 관한 법률’)을 통해 마르 메노르 석호가 법인격을 지닌 법적 공식 주체로 인정했다. 2023년 파나마는 특정 생물종인 바다거북의 권리주체성을 인정했다.

현행 법은 “자연인이 아니면서 권리능력을 갖는 법 실체를 총칭하여 법률에 따른 사람이라는 뜻”의 법인(法人, legal person)을 사단과 재단에 한정한다.

함태성은 “특정 생물종이나 생태계 등 이른바 자연물에 권리능력을 인정”하는 생태법인(eco legal person) 제정 필요성도 검토한다. 함태성은 “특정 자연물에 생태법인으로서 법적 지위를 부여하자는 제안은 인류세 시대에 우리의 인식은 지역공동체 세계공동체에서 지구공동체로 확장되어야 하고, 그 속에서 우리 인간은 지구공동체의 책임 있는 한 성원으로서 다른 다양한 생명존재와 공동존재하고 공동번영해야 한다는 인식과 윤리에 바탕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윤익준(대구대 법학연구소 교수)은 ‘해양동물보호 관련 국내 법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강금실(사단법인 선, 지구와 사람 이사장)이 ‘지구법학과 동물의 권리’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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