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배다리’, 베니스비엔날레에 선보이는 이유가 있다

한대광 기자

제물포 포구 개항으로 떠밀려 난 조선인 거주지

주민, 문화예술인들이 가꾼 환경·생태 마을로

가치 인정받아 세계 3대 비엔날레 출품

인천 동구 금곡동 ‘문화상점 동성한의원’을 찾은 관람객들이 지난 17일 가게에 전시된 책들을 둘러보고 있다.|한대광 기자

인천 동구 금곡동 ‘문화상점 동성한의원’을 찾은 관람객들이 지난 17일 가게에 전시된 책들을 둘러보고 있다.|한대광 기자

‘1883년 제물포 포구 개항으로 떠밀려난 조선인 거주지, 인천 3·1 만세운동 발원지, 근대교육·기독교·노동운동의 산실, 성냥공장, 헌책방거리···.’

인천 동구 금곡동과 창영동에 위치한 ‘배다리’는 지역에서 가장 많은 별칭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인천 역사의 보물창고다. 역사적 가치가 큰 건축물도 많이 보존돼있는 곳이다. 인구는 296만명(2022년 12월 기준)을 넘어서는 등 인천은 팽창하고 있지만, 배다리의 가치는 ‘구도심’이란 이유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왔다.

배다리가 최근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역사·문화 자산을 기반으로 환경·생태를 중시하는 미래형 마을공동체를 일구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활동하고 있다. 주민들은 마을을 두 동강을 내려는 관통도로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하나로 힘을 모아 성과를 거두는 경험을 했다.

한의원은 제로웨이스트샵·책방 등이 결합한 복합상점으로 변신했다. 빨래터를 재생해 꾸민 카페를 비롯 골목 곳곳에 이색 식음료점들이 생겨나고 있다. 피규어·동물아트·목공 등을 체험하는 각종 공방도 있다. 성냥박물관과 미술관 등 전시시설도 들어섰다. 한때 40여곳에서 5곳으로 줄었던 책방이 다시 8곳으로 늘어났다.

이런 변화에 주목한 건축문화계에서는 오는 5월 20일부터 6개월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개최되는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에 배다리를 소개한다. 한국관에서는 원도심인 배다리와 전북 군산시, 이주도시인 경기 안산시 등의 도시재생을 분석하고 미래까지 그려보는 작품이 전시된다. 베니스비엔날레는 세계 3대 비엔날레 중 하나다.

1948년 12월 미군 Norb-Faye가 촬영한 배다리 시장 모습. 공유사이트 Flickr 캡처

1948년 12월 미군 Norb-Faye가 촬영한 배다리 시장 모습. 공유사이트 Flickr 캡처

1948년 12월 미군 Norb-Faye가 촬영한 배다리 시장 모습. 공유사이트 Flickr 캡처

1948년 12월 미군 Norb-Faye가 촬영한 배다리 시장 모습. 공유사이트 Flickr 캡처

인천 3.1운동 발화점 창영초등학교
인천 노동운동 시작된 곳도 배다리

배다리의 역사는 1883년 제물포 포구(현 인천항 일대)의 개항과 함께 시작됐다. 당시 제물포 포구 일대는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치외법권을 행사하는 조계지가 형성됐다. 외세에 의해 밀려난 서민들은 배다리는 물론 율목동, 송현동, 금곡동, 창영동 등으로 밀려났다. 당시 밀물 때면 바닷물이 들어와 작은 배를 댈 수 있었던 배다리에는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됐고 조선인 마을도 만들어졌다.

구한말 외국자본과 문물의 유입 흔적은 이 지역 곳곳에 남아 있다. 1897년 한국 최초의 철도기공식이 우각역(현재 경인전철 1호선 도원역 인근)에서 열린 것을 비롯해 1890년대에 지어진 알렌별장와 미국 감리회 선교사 기숙사, 영화학교(1892년), 창영학교(1907년) 등이 세워섰다.

일제 강점기에는 전국적으로 유통됐던 소성주를 제조했던 인천양조장 건물, 성냥공장 등도 배다리 일대에 들어섰다. 특히 1919년 3월6일에는 인천에서 처음으로 창영초등학교 4학년생들이 만세 시위를 벌이기 시작하면서 6만8100명이 참가하는 만세운동으로 확대됐다. 1921년에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성냥공장인 조선인촌주식회사에서 노동착취를 반대하는 동맹파업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천지역 노동운동의 시작이었다.

배다리는 시장(현 동인천역 뒷편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한때 번성했다. 1915년 2월14일자 매일신보는 배다리시장에 대해 “한번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매우 곤란할 뿐 아니라, 평시에는 나무바리나 혹 왕래하던 우각동 마루터기에서부터 삼마장 거리나 되는 배다리까지 각 촌의 어른, 아이들은 물론하고 행인이 연락부절”일 정도로 인천에서 제일 번성했던 시장이라고 기사화 했다.

한국전쟁 후에는 피난민들이 물건을 내다 팔면서 배다리 시장은 확장됐다. 헌책방 거리도 이 당시 조성됐다. 배다리에서 가장 오래된 집현전과 한미서점은 1953년부터 책방을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40여개가 넘는 중고서점들이 번성하면서 서울 청계천, 부산 보수동과 함께 전국 3대 중고서점 거리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인천을 휩쓴 개발에 밀리면서 배다리를 찾는 이들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서점들도 곳곳으로 흩어졌다. 배다리를 끼고 있는 동구 인구는 5만명대로 떨어지는 등 ‘구도심’으로 밀려났다.

지난 17일 인천 동구 배다리에 위치한 ‘배다리잇다 스페이스 작은미술관’ 앞에서 예술가들이 벽화를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 한대광 기자

지난 17일 인천 동구 배다리에 위치한 ‘배다리잇다 스페이스 작은미술관’ 앞에서 예술가들이 벽화를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 한대광 기자

배다리 관통 산업도로 위기가 전환점으로
주민대책위 이어 시민문화단체도 배다리에 합류

30년 넘게 상권이 침체하고 정체만을 거듭하던 배다리의 변화는 의외의 사건에서 시작됐다. 인천시가 배다리 한복판을 관통하는 산업도로를 추진하려는 계획이 2006년 알려지면서다. 산업도로는 경제자유구역인 송도와 청라지구 간 물류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추진됐다. 배다리의 역사와 문화, 생활생태계가 단절되고 파괴될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주민들은 ‘중ㆍ동구 관통 산업도로 무효화를 위한 주민대책위원회’를 지역 시민문화단체 등은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을 각각 결성해 저항하기 시작했다. 인근 아파트 단지 주민들도 베란다에 플래카드를 거는 등 산업도로 반대 운동은 확산했다.

인천 동구 배다리에서 환경·생태 마을 만들기를 벌이고 있는 스페이스빔 건물로 지난 20일 한 주민이 들어가고 있다. | 한대광 기자

인천 동구 배다리에서 환경·생태 마을 만들기를 벌이고 있는 스페이스빔 건물로 지난 20일 한 주민이 들어가고 있다. | 한대광 기자

특히 2007년 산업도로 건설 현장에 텐트를 치고 배다리에 대한 기록과 퍼포먼스를 벌였던 문화예술 단체 ‘스페이스 빔’은 아예 배다리로 이사를 했다. 1926년에 만들어진 인천양조장 건물이었다. 이 단체는 배다리영화제, 배다리 주말극장, 헌책 잔치 등은 물론 마을텃밭, 생태놀이동산, 벼룩장터, 도시캠핑 등 지속 가능한 생태마을 공동체를 일구기 위한 활동을 벌여왔다.

배다리 산업도로 반대 활동이 계속되면서 이 지역에 정착하려는 행렬이 이어졌다. 대표적 공간으로는 ‘문화상점 동성한의원’을 꼽을 수 있다. 이 지역을 대표하던 동성한의원의 옛 가치를 살리기 위해 간판은 지금도 내걸려 있다. 2009년 문을 연 이곳은 공유상점이다. ‘나비날다 책방’ ‘제로웨이스트샵 슬로슬로’ ‘뜨개방 실꽃’ ‘식물가게 뒤뜨레’ ‘지유오븐’ 등 5개 가게가 한 공간에서 영업 중이다. 별도의 창작자들이 만든 엽서·배지 등도 판매되고 있다.

가게 주인들이 없을 때는 서로를 돌보는 구조다. 무인으로 운영되기도 하는데 대신 15살 고양이(반달이)가 가게를 지킨다. 반달이와 사진 한컷을 찍기 위해 찾는 손님들도 상당하다. 문화강좌, 독서모임 등도 진행된다. 문화·생태 활동가 등이 아예 배다리에 정착하면서 지속적으로 벌여온 산업도로 반대 운동은 인천시와 주민대표 등이 2019년 도로를 지하화하는 방안으로 일단락됐다.

인천 동구 배다리에 위치한 서점 ‘시와 예술’을 서점과 미술전시 등을 함께 하고 있다. | 한대광 기자

인천 동구 배다리에 위치한 서점 ‘시와 예술’을 서점과 미술전시 등을 함께 하고 있다. | 한대광 기자

지방정부도 가세한 배다리 재생사업
주민들이 직접 다양한 문화 공간 만들기도

배다리는 드라마 도깨비와 영화 <극한직업> 촬영지로도 인기를 모았다. 노란색 벽으로 단장된 한미서점은 인천의 사진 명소로 주목 받기도 했다.

인천 동구는 ‘배다리 근대역사문화마을’ 조성에 나섰다. 동구는 건물 내·외관 개선비, 임차료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그림·캐릭터·미니어처 공방 등을 비롯해 이탈리안·멕시코 식당, 갤러리, 카페 등 다양한 시설이 입주했다. 이들 업소들은 내·외부 경관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배다리를 찾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한다.

인천 동구 배다리에 입점한 미니어처 공방 달리. | 한대광 기자

인천 동구 배다리에 입점한 미니어처 공방 달리. | 한대광 기자

지난 10일 인천 동구 배다리에 영업 중인 빨래터 카페에서 손님들이 음료를 즐기고 있다.  | 한대광 기자

지난 10일 인천 동구 배다리에 영업 중인 빨래터 카페에서 손님들이 음료를 즐기고 있다. | 한대광 기자

배다리잇다스페이스 작은미술관, 성냥마을박물관도 배다리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아벨서점 바로 옆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옛 빨래터를 재생한 빨래터카페와 함께 쌈지문화공원, 작은미술관이 나란히 들어서 있다.

작은미술관에서는 인근 서흥초등학교 학생들이 동구의 골목길을 그린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2019년 문을 연 성냥박물관은 102년 전 문을 연 조선인촌주식회사 자리에 세워졌다. 배다리에 살던 주민들은 한국전쟁 이후에도 생계를 위해 성냥갑 부업을 했다. 성냥박물관은 배다리 주민들의 역사와 함께 1970년대까지 생필품이었던 성냥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주민들도 배다리의 변화 물결에 동참하고 있다. 2층 건물로 지어진 배다리 사랑방은 주민들이 주축이 된 배다리협동조합을 만든 공간이다. 1층에는 배다리 옛 손만두 식당을 유치해 마을식당으로 운영하고 있다. 2층은 주민들의 사랑방 공간이다. 주민들은 일방통행로도 넓히고 건물 개보수, 텃밭 가꾸기 등을 통해 골목길을 새롭게 꾸미고 있다. 복합문화공간 창영당, 사진관, 의상실 등도 주민들의 손으로 조성됐다.

인천 동구 배다리에 세워진 성냥박물관에 지난 17일 각종 성냥이 전시되어 있다. | 한대광 기자

인천 동구 배다리에 세워진 성냥박물관에 지난 17일 각종 성냥이 전시되어 있다. | 한대광 기자

인천 동구 배다리 주민이 직접 만든 복합문화공간 창영당 앞에 지난 20일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 한대광 기자

인천 동구 배다리 주민이 직접 만든 복합문화공간 창영당 앞에 지난 20일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 한대광 기자

배다리는 아직 실험 거듭 중
젠트리피케이션 우려도 제기돼
“품격있는 역사문화마을로 발전시켜야”

배다리가 변신을 거듭하고 있지만 아직 실험 중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우선 해결할 과제는 젠트리피게이션이다. 인천 동구가 추진한 ‘배다리 문화·예술의 거리 조성 사업’이 사업지 내 기존 상인들과 지역 상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배다리 주민들과 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배다리위원회는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을 열고 “동구가 추진 중인 배다리 문화·예술의 거리 조성 사업이 해당 사업지 내 임차료 인상을 유발하고 기존 업체와 신생 업체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카페 등 동종 업계 과다 난립 등으로 기존 운영업체 중 한 곳이 운영난에 이기지 못하고 폐업한 사례가 발생해 기존 주민들이 쫓겨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지방정부 지원을 받은 업체의 자생력 확보도 과제다. 한 업체 관계자는 “배다리가 주목을 받고는 있지만 아직은 사진찍기 좋은 곳 정도로 인식되는 경향도 있다”면서 “배다리를 둘러보고는 식당이 밀집한 인근 개항로에서 소비하는 추세가 많다”고 말했다.

문화상점 동성한의원 공간을 기획한 나비날다 책방의 청산별곡(활동가명) 대표는 “느리지만 예전보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진 상황”이라며 “본인들이 선택해 배다리에 정착한 만큼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민운기 스페이스빔 대표는 “오랜 역사문화 자산을 기반으로 바람직한 미래 마을을 만들려는 실험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정부가 주민들과 충분한 협의도 없이 과거를 단순히 상품화·대상화하려는 시도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면서 “환경·생태적 관점에서 배다리 대안 공동체 마을로 거듭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 배다리> 책자를 발간한 이희환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는 “개발의 위기로부터 주민들의 노력으로 지켜온 배다리마을을 민관이 협력해 품격있는 역사문화마을로 발전시켜야 한다. 창영학교에 인천교육박물관도 짓고 마을생태계를 잘 보존해나가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제2의 송월동 동화마을이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인천 동구 배다리의 골목길 모습. 배다리에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서로 다른 모양의 집들이 들어서 있다. | 한대광 기자

인천 동구 배다리의 골목길 모습. 배다리에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서로 다른 모양의 집들이 들어서 있다. | 한대광 기자

인천 동구 금곡동 배다리 골목에 지난 20일 중고책방들이 나란히 들어서 있다. | 한대광 기자

인천 동구 금곡동 배다리 골목에 지난 20일 중고책방들이 나란히 들어서 있다. | 한대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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