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멍! 우리 동네 내가 지킨다…반려견 순찰대 시험보는 날

이유진 기자
지난 4월30일 서울 강동구 일자산공원 잔디광장에서 ‘서울 반려견 순찰대-해치 패트롤’ 선발대회가 열렸다. 대형견, 소형견, 다양한 견종이 참가했고 하나같이 용맹함을 과시했다. 사진|이유진 기자, 유기견없는도시

지난 4월30일 서울 강동구 일자산공원 잔디광장에서 ‘서울 반려견 순찰대-해치 패트롤’ 선발대회가 열렸다. 대형견, 소형견, 다양한 견종이 참가했고 하나같이 용맹함을 과시했다. 사진|이유진 기자, 유기견없는도시

“앉아! 일어나, 기다려! 후추! 후추야, 이리와!”

집에서는 <TV동물농장>에 제보할까 싶을 정도로 신통방통한 재주를 부리던 우리 강아지가 ‘멍석’을 깔아놓으니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견주들은 태연한 척 반려견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명령에 맞춰 간식을 흔들어대던 그들의 손끝에서 애타는 심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지난 4월30일 서울 강동구 일자산공원 잔디광장에는 콧바람에 상기된 강아지들과 긴장감이 역력한 견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강동구가 시범 운영하는 서울 반려견 순찰대 ‘해치펫트롤’ 선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1시간에 15팀씩 총 75팀이 반려견 순찰대 시험에 응시했다.

‘해치펫트롤’은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 강동구청, 강동경찰서 그리고 (사)유기견없는도시가 시범 운영하는 주민 참여형 방범순찰대로 5월부터 두 달간 시범 운영된다. 선발된 순찰대원과 견주는 매일 1회, 최소한 주 3회 이상 꾸준히 산책하며 동네의 범죄 위험요소, 방범 시설물 파손, 생활 불편 사항을 발견해 경찰서나 구청에 신고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반려견 순찰대 선발대회에 합격한 75마리와 강동 리본센터 훈련견까지 총 100마리 강아지가 서울시 강동구 일대를 산책하며 치안, 위험, 생활 불편 요소 등을 살펴볼 예정이다. 유기견없는도시 제공

반려견 순찰대 선발대회에 합격한 75마리와 강동 리본센터 훈련견까지 총 100마리 강아지가 서울시 강동구 일대를 산책하며 치안, 위험, 생활 불편 요소 등을 살펴볼 예정이다. 유기견없는도시 제공

선발대회 현장에서 만난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 강민준 경위는 “자치경찰위원회 출범 후 주민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취지를 살려보자는 의견이 있었고 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도 늘어나 자연스럽게 ‘반려견 순찰대’를 구상하게 됐다. 반려견 순찰대는 ‘우리 동네, 내가 지킨다’는 자치 치안 문화와 더불어 올바른 반려견 문화 정착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유기견없는도시’ 유하나 부장은 “반려견 순찰대는 강동구에서만 시범 운영하다 보니 타 지역에서도 모집 문의 전화가 많이 왔다. 특히 유기견없는도시 본원이 위치한 안산시청에는 ‘우리는 왜 반려견 순찰대를 꾸리지 않느냐’는 민원이 빗발쳤다고 하더라. 강동구에서 운영이 잘되면 서울시 전역으로 확대될 것이고 다른 지자체에도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전했다.

순찰대원 선발시험은 총 3가지 동작인 ‘앉아’ ‘기다려’ ‘이리와’를 견주의 명령에 따라 차례로 이행하면 합격이다. 이번 선발은 시범 운영인 만큼 1차에 합격하지 못했더라도 몇 번의 응시 기회가 더 주어졌고 덕분에 100%에 가까운 합격률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수많은 강아지들이 한 자리에 모였으나 시종일관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시험이 치뤄진 점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사진|이유진 기자, 유기견없는도시

수많은 강아지들이 한 자리에 모였으나 시종일관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시험이 치뤄진 점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사진|이유진 기자, 유기견없는도시

■평온하게 치룬 선발대회… 대부분 유기견 출신

이번 반려견 순찰대 선발대회에서는 두 가지 특징이 눈에 띄었다. 첫째는 소형견에서 대형견까지 다양한 종의 강아지가 한자리에 모였음에도 어떤 강아지도 짖지 않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시험이 치러졌다는 점이다. 취재에 앞서 ‘개판’을 예상한 기자의 예측은 빗나갔다. 또한 취재를 위해 접한 대다수 참가견은 유기견 출신이었다. 이에 대해 강 경위는 “유기견을 입양할 정도의 시민의식을 지닌 시민이라면 반려견 문화와 지역 봉사에 선도적인 역할을 자처하는 분들이 많지 않겠느냐”며 “현장이 조용한 이유 역시 평소 산책을 많이 하고 훈련이 잘된 강아지들이 모였기 때문일 것”이란 해석을 내놓았다.

경호원이던 박기휴 씨는 유기견 제제를 만나 동물 재활훈련사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경호원이던 박기휴 씨는 유기견 제제를 만나 동물 재활훈련사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골든리트리버 믹스견 ‘제제’와 함께 참가한 박기휴씨는 제제를 만나고 직업을 바꿀 정도로 삶의 큰 변화를 겪었다. 견주 부부에게 아이가 생기면서 유기견 신세가 된 제제를 거둔 박씨는 하루에 3번 이상 산책을 해야 하는 대형견을 돌보기 위해 경호원을 그만뒀다. 현재는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 동물병원에서 재활훈련사로 일하고 있다.

“산책을 하다 보면 반려견이나 아이들에게 뜻밖의 위험 요소가 많아요. 공사 현장을 잘 치우지 않아서 도로에 날카로운 나사나 못이 바닥에 박혀있어 제제가 발바닥을 다친 적이 있어요. 민원을 넣어도 두세 달 넘게 개선되지 않았고요. 이제 제제가 순찰견 신분이니 신고를 하면 불편한 점들이 빨리 해결될 거라 기대하고 있어요.”

제제는 박씨와 손발을 척척 맞추며 단 한 번의 시도로 무난하게 시험에 통과했다. 제제는 견주의 진심 어린 돌봄과 훈련으로 유기견에서 반려견으로 그리고 순찰견으로 아름다운 ‘견생 업그레이드’를 보여줬다.

김시은씨는 해외 취업 중 귀국해 우연히 만난 구조견 하나를 계기로 현재 전문 강아지 훈련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시은씨는 해외 취업 중 귀국해 우연히 만난 구조견 하나를 계기로 현재 전문 강아지 훈련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시은씨의 보더콜리 ‘하나’ 역시 유기견이었다. 하나는 2018년 5월 서울 천호동 한 주택 화장실에서 아사로 추정되는 개 세 마리의 백골 사체가 발견된 사건 현장의 또 다른 피해견이었다. 충격적인 사건은 당시 언론에 보도됐고 ‘애니멀 호더’에 대한 규제 필요성이 대두되기도 했다.

“하나는 당시 4개월이었고 너무 어리고 말라서 그나마 목줄에서 빠져나와 살 수 있었다고 해요. 저는 일본에서 인테리어 일을 하다 입국해 쉬던 중이었는데, 우연히 방문한 강동 리본센터(지자체 관할 유기동물 분양센터)에서 하나를 만나 한눈에 반해 입양하게 됐어요.”

보더콜리는 농장에서 양몰이개 역할을 할 만큼 활동성이 많은 견종이다. 사람에 최적화된 주거 환경에서는 ‘사고를 많이 치는 견종’이 될 수밖에 없는 종이다. 반려견 케어를 해본 적이 없는 김씨는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울 정도로 하나와의 생활이 힘들었다. 결국 그는 리본센터 선생님과 상담을 거듭하다 강아지 훈련 전문가 코스를 밟게 됐고 현재 5년째 훈련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하나는 하루에 두세 시간은 꼭 산책을 한다. 하나가 길에 떨어진 다른 사람의 휴대폰을 찾아낼 정도로 영리해 앞으로 순찰대 활동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포부를 전했다.

‘16세’ 짱순이는 반려견 순찰대 최고령자다. 노환으로 귀가 들리지 않지만 오랜 주인과의 팀워크로 무난히 시험에 통과했다.

‘16세’ 짱순이는 반려견 순찰대 최고령자다. 노환으로 귀가 들리지 않지만 오랜 주인과의 팀워크로 무난히 시험에 통과했다.

■내 새끼 최고! 최고령 대원부터 3대 출동 가족까지

반려견 순찰대 시험에 합격한 최고령견은 작지만 용맹한 요크셔테리어 믹스견 ‘짱순이’였다. 짱순이는 2006년 9월에 태어난 방년 16세로 견주 장영훈씨와 생후 50일부터 평생을 함께해왔다. 장씨는 짱순이가 약간의 노환 빼고는 건강이 양호하다고 자부한다. 장수 비결은 하루도 거르지 않은 한두 시간 산책과 먹성을 뒷받침하는 튼튼한 이빨에 있다. 짱순이는 사람이든 강아지든 잘 먹고 열심히 운동하는 것이 최고의 건강 비결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운다. 다만 짱순이는 현재 귀가 들리지 않는 상태다. 어느 날인가부터 견주가 귀가해도 여전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증상을 알게 됐다고 한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데 어떻게 선발 시험에 치를 것이냐”는 질문에 장씨는 “손동작만으로 충분하다”며 짱순이와의 16년 팀워크를 앞세워 자신했다. 이에 호응하듯 짱순이는 시험에 무난히 통과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후추는 가족 3대가 출동해 남다른 응원을 받으며 몇 차례 고전 끝에 합격했다.

후추는 가족 3대가 출동해 남다른 응원을 받으며 몇 차례 고전 끝에 합격했다.

할머니부터 엄마·아빠, 딸 부부까지 3대가 선발전 현장에 출동한 가족도 있었다. 검은색 푸들 믹스견 ‘후추’네 가족이다. 후추는 소방서를 통해 구조된 세 마리의 유기견 중 한 마리였다. 두 마리는 입양에 성공하고 마지막으로 후추가 남았을 때 소방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입양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곧 안락사된다’는 소식을 본 딸이 무작정 후추를 집으로 데려왔다. 당시 유지현씨는 키우던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상실감에 시달리는 펫로스증후군을 심하게 앓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시는 반려견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한 터였지만 후추를 보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라면상자에 담겨 온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아기(후추)가 너무 여리고 작더라고요. 우리 딸이 얼마 전 시집을 가서 후추는 내 차지가 됐는데 얘 없었으면 우리 부부는 아주 심심할 뻔했어요. 후추가 복덩이에요.”

시험을 치르는 중 “후추야 이리와”를 아무리 외쳐도 딴청을 피우자 응원석에서는 안타까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할머니는 “후추는 목에다 리본만 묶으면 주인이 오라고 해도 얼음이 되어버리는 것이 특기”라며 “집에서는 온갖 재주를 다 부리고 잘했는데 지금 좀 긴장한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몇 차례 시도와 짧은 훈련 끝에 후추는 당당히 반려견 순찰대에 합류했다. 3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번 선발대회에 합격한 75마리와 강동 리본센터 훈련견까지 총 100마리의 용맹한 순찰견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온 동네를 살핀다. 강동구 곳곳에서 몽글몽글 든든함이 피어오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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