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성 약한 학생인권조례, 정말 교권 하락 주범일까

김나연 기자
지난 18일 교사가 숨진 채로 발견된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25일 어머니와 어린이가 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 18일 교사가 숨진 채로 발견된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25일 어머니와 어린이가 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최근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하락’의 주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4일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공교육이 무너졌다”며 학생인권조례 재정비 의사를 밝혔다. 같은 날 윤석열 대통령도 참모들에게 “불합리한 자치조례 개정을 병행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이 차별받지 않고 일상생활이 존중될 수 있도록 인권 보장’을 규정한다. 2010년 경기도교육청을 시작으로 서울·광주·전북·충남·제주·인천 등 전국 7개 시도가 이를 마련했다.

정부와 일부 교원단체는 학생인권조례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사생활의 자유 권리 조항’을 문제 삼는다. 교사가 특정 학생을 칭찬하면 ‘차별’이 되고, 수업 중 휴대전화를 못 쓰게 하면 ‘사생활 침해’라는 항의를 받는다는 것이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지난 24일 브리핑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칭찬 스티커를 주게 되면 칭찬 스티커를 못 받은 자녀 부모가 ‘우리 아이를 차별했다’라고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지난 23일 보도자료를 내고 “두발, 복장 등의 개성 실현 권리, 소지품 검사 금지, 휴대전화 사용 원칙적 허용 같은 규정은 기본적인 생활지도조차 못하도록 강제하는 꼴”이라고 했다. 이어 “학교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정하는 학칙을 무시하고 자율성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학생에 대한 교육적 제한조차 무력화시킨다”고 했다.

학생인권조례만으로 교사의 생활지도가 힘을 잃는 것은 아니라는 반박이 나온다. 학생인권조례는 강제성이 매우 약하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은 2012년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하면서 “각 학교에 이번에 공포된 학생인권조례를 언제까지 어떻게 적용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학교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이다”면서 “이번 조례는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이 많아서 학교는 이를 현장 실정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하면 된다”고 했다.

학생인권조례 자체가 아니라 이에 관한 교육과 협의가 쟁점이 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25일 기자와 통화에서 “조례를 악용한 것이 문제이지 조례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조례가 강제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는 자체적으로 학칙을 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에는 교권과 무관하게 학교 공동체 발전을 위한 조항도 여럿 있다. 빈곤, 장애학생 등 소수자 학생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고, 두발, 복장 규제도 금지한다. 2021년 서울 학생인권조례에서는 ‘학생들의 복장을 학칙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이 삭제되면서 여학생 속옷 색깔까지 규제하던 일부 학교의 학칙이 모두 폐지되기도 했다. 송 위원은 “학생인권조례의 본래 취지는 나의 인권이 소중하면 타인의 인권도 소중하다는 것”이라며 “불합리한 체벌이 사라지거나 학생과 상의하며 학칙을 만들어가는 수평적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 학생의 권리와 함께 책임 조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면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예컨대 미국 뉴욕시 학생 권리 및 책임 장전에는 ‘연령, 인종, 성별 등과 관계없이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 ‘적절한 자료로 수업을 준비하고 교과서 등을 적절하게 유지 관리해야 한다’ 등 학생의 책무를 규정한 별도 조항이 있다. 교총은 “뉴욕시 학생 권리 및 책임 장전은 학생 권리 부여에 따른 의무와 책임 조항이 매우 자세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학교장이 징계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24일 교직 3단체와 함께 연 기자회견에서 “학생인권조례에 학생 권리 외에 책무성 조항을 넣는 부분에 대해서 적극적인 생각을 갖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도 ‘학생 및 보호자는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다른 학생의 학습권과 교원의 교육활동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조항을 추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학생인권조례에는 학생의 책임이 간략하게 들어가 있어 강화할 필요가 있지만, 교원지위법 개정 등 교사 보호 장치 마련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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