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133명 사망’ 테러 배후 우크라 지목한 푸틴 “모두 처벌할 것”···보복성 공격 강화하나

최서은 기자
지난 22일(현지시간) 테러가 발생한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장에서 구조대원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구호 작업을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2일(현지시간) 테러가 발생한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장에서 구조대원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구호 작업을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의 공연장에서 최소 133명의 희생자를 낳은 무차별 테러의 책임을 우크라이나에 돌리면서, 이번 테러를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는 빌미로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악 테러’ 사망자 수 계속 증가…용의자 “돈 때문에 범행”

23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전날 모스크바 북서부에 있는 대형 공연장인 ‘크로커스 시티홀’에서 벌어진 무차별 총격과 방화 테러로 이날까지 133명이 사망했고, 100명 이상이 다쳤다. 부상자 중에도 위독한 사람들이 많아 앞으로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 정부는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명하면서 이번 테러 공격을 강력히 규탄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후 대국민 연설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이들에게 깊은 조의를 표한다”며 책임자들에 대한 강경 대응 의지를 밝혔다. 그는 “이 범죄를 저지른 모든 가해자와 조직은 처벌을 피할 수 없다”면서 “그들이 누구든, 누가 지시했든, 우리는 테러리스트의 배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찾아내 처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정부는 24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러시아 당국은 이번 공격 혐의로 핵심 용의자 4명을 포함해 11명을 체포했다. 이들의 구체적인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용의자들은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국영 방송사 RT의 편집장 마르가리타 시모냔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검거된 테러범 중 1명은 당국의 신문 과정에서 “지시자가 공연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살해하라는 임무를 맡겼다”면서 “나는 돈을 위해 공연장에서 사람을 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일 튀르키예를 통해 러시아로 입국했으며, 범행 대가로 50만루블(약 730만원)을 받기로 했다고 전했다.

당국은 추가 공범을 찾아내기 위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는 한편, 현장 수색과 구조 작업도 계속하고 있다. 수백명의 구조 인력은 전날부터 사건 현장에 투입돼 구조물 해체와 인명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구조물이 붕괴되고 불에 타 수색 작업은 앞으로 며칠 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우크라 배후설’ 제기…우크라이나 보복 공격 강화하나

22일 러시아 크로커스 시티홀 위로 거대한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22일 러시아 크로커스 시티홀 위로 거대한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는 이번 공격의 배후로 우크라이나를 지목했다. 푸틴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을 비롯한 러시아 주요 인사들은 잇따라 우크라이나를 비판하고 보복을 경고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사건 이후 “용의자들이 범행 후 차를 타고 도주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으려 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측과 접촉했다”면서 우크라이나 배후설을 제기했다. 푸틴 대통령 역시 대국민 연설에서 “그들은 우크라이나 방향으로 도주했는데, 초기 정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쪽에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다만 용의자들이 우크라이나와 관련되어 있다는 구체적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 같은 주장을 강력히 부인했다. 미국 역시 이번 테러에 우크라이나는 관련성이 없다며 이번 일의 배후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를 지목했다. IS의 아프가니스탄 지부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은 이번 공격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고, 미국도 관련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안보 전문가들은 IS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 해도 푸틴 대통령이 3년 차에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 등 안보 정책에 대대적인 변화를 주고 내부 결집을 꾀할 구실로 이번 테러를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우크라이나 군사 정보 기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고 2차 동원을 시작하기 위해 이번 사태를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찰스 리치필드 부국장은 “크렘린궁이 분위기를 반전시킬 확실한 경로는 (테러를) 우크라이나 전쟁과 연관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러시아가 내부의 반대 의견을 가혹하게 진압하거나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해 군인을 추가 징집하는 조치 등을 취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러시아 고위 관계자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고성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레오니트 슬루츠키 러시아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은 텔레그램에서 “잔혹한 키이우 정권이 테러리스트를 고용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면서 “우크라이나가 이번 테러의 배후로 밝혀진다면 러시아가 전장에서 명확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역시 “그들이 키이우 정권의 테러리스트라는 것이 확인된다면 무자비하게 파괴할 것”이라며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자 재벌 기업인인 콘스탄틴 말로페예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핵 공격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에게 48시간 동안 도시를 떠나게 하고, 모든 힘과 수단을 동원해 이 전쟁을 끝내자”고 말했다.

러시아 사회 ‘충격’…시민들 추모·봉사 이어져

러시아 시민들이 23일(현지시간) 콘서트장 인근 테러 희생자들을 위한 임시 추모 장소에서 애도를 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시민들이 23일(현지시간) 콘서트장 인근 테러 희생자들을 위한 임시 추모 장소에서 애도를 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여년 만에 최악의 테러로 꼽히는 이번 공격으로 러시아 국민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마음을 안고 방문해왔던 대형 공연장은 순식간에 1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낳은 비극의 장소로 변했다.

공연장 인근의 건물 잔해들은 테러의 참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했고, 도시는 테러에 대한 긴장감이 가득해졌다. 모스크바의 심장 붉은광장은 철제 울타리로 둘러싸여 출입이 차단됐고, 학교 수업과 각종 문화·스포츠 행사들이 잇따라 취소됐다.

공연장 앞에는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공간이 마련됐고, 온종일 전국 각지에서 온 추모 인파가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시민 아크보레 아빌카시모바는 “어제 뉴스를 보고 한숨도 못 잤다”며 “끔찍했고, 충격적이었다.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아나스타샤 로디오노바는 “테러리스트는 ‘엎드려!’ 이런 말도 없이 조용히 걸어 들어와서 사람들을 쐈다. 소리가 흩어져서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면서 “내 동생의 아내는 시체 위를 달렸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보니 재킷은 피범벅이 돼 있었다. 5분만 늦었어도 우리는 총에 맞았을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또 다른 생존자는 NYT에 “공격이 시작되자 패닉과 공포를 느꼈다”면서 “우리는 정문에서 도망쳤고, 모두가 밀기 시작했다. 남편은 도망쳐야 한다고 소리쳤다”고 말했다.

많은 시민들은 발 벗고 나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인근 지하철역 앞에는 ‘모스크바 자원봉사단’ 점퍼를 입은 청년들이 추모객들을 안내했고, 모스크바의 혈액 센터들에는 희생자들을 위해 헌혈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 20대 남성은 전날 테러 소식을 듣자마자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와 밤을 새웠다면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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