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슬픔에서 분노로...5월 대선 때 ‘에르도안 심판론’ 부상

정원식 기자
지난 9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아디야만에서 불도저와 굴삭기 등이 지진으러 붕괴된 건물 잔해를 치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9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아디야만에서 불도저와 굴삭기 등이 지진으러 붕괴된 건물 잔해를 치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에르도안, 당신 어머니였더라도 이랬겠나. 당신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나?”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 안타키아에 사는 자페르 마흐무트 본주크(60)는 12일(현지시간) AP통신 인터뷰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터트렸다. 그는 규모 7.8의 강진이 튀르키예를 강타한 지난 6일 무너진 아파트 잔해에 깔린 노모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노모는 결국 다음날 그의 눈앞에서 숨을 거뒀다. 노모의 시신은 지진 발생 6일이 지나서야 수습됐다.

AP는 대참사에 대한 튀르키예 정부의 무능한 대응이 시민들의 정서를 슬픔에서 분노로 바꿔놓고 있다고 보도했다.

남동부 아디야만에 사는 엘리프 부스라 오즈투르크는 AP에 “3일 동안 도움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면서 “구조팀은 인원이 너무 적어서 생존자가 있을 것이 확실한 곳에만 간다”고 말했다.

남동부 오스마니예 사는 불렌트 구젤(42)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재난위기관리청(AFAD) 구조팀이 너무 늦게 왔다”면서 “오마니예는 잊혀졌다. 우리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타이주에서 의사로 일하는 메흐메트 알리 에디볼루는 구호품을 실은 첫 비행기가 지진 발생 후 30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고 말했다. 그는 “군대, 경찰, 지방정부, 중앙정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각자도생으로 가족과 친척을 구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종교적 이유 때문에 구조가 지연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안타키아 일부 주민들은 이 지역에 역대 선거에서 에르도안 대통령 지지율이 낮았던 이슬람 소수종파 알레비가 살고 있어서 정부의 구호 순위에서 밀렸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턱없이 부족한 정부의 구호물자 지원 탓에 시리아 난민을 탓하는 여론도 감지된다. 일부 지역에서는 내전으로 튀르키예에 정착한 시리아 난민들이 가뜩이나 허약한 튀르키예 복지 제도에 부담을 준다는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고 AP는 전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아디야만을 방문해 지닡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아디야만을 방문해 지닡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에르도안 대통령이 비정부기구(NGO)와 군대의 두 축으로 구성돼 있던 지진 대응 기능을 AFAD로 집중시킨 탓에 오히려 지진 대응 역량이 떨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투르커 에르투르크 예비역 해군제독은 뉴욕타임스에 “에르도안 정부가 군의 기능을 제한해 재난 대응 계획과 훈련이 없어졌다”며 “권위주의 정부에서는 모든 결정을 상부가 내려줄 때까지 기다린다”고 말했다.

정실 인사도 문제다. 지진 대응 기능이 AFAD로 일원화 되면서 전문가들이 여당 충성파 의원들로 대체됐다. 2018년에는 재난 대응 경험이 전무한 신학자가 AFAD 최고위직에 올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0일 아디야만을 방문해 “너무 많은 건물이 파손돼 불운하게도 우리가 원하는 만큼 신속하게 개입할 수 없었다”며 지진 발생 후 처음으로 정부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는 그러나 “지진 발생 순간부터 국가의 모든 장비와 인력이 현장에 있었다”면서 여론 악화의 원인을 가짜뉴스 탓으로 돌렸다.

오는 5월14일 대선이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무덤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스탄불 카디르 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는 솔리 오젤 교수는 WSJ에 “이 정부는 아무런 준비도 돼 있지 않았다”면서 “이번 지진의 잔해에 깔려 있는 희생자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정부가 지진세 명목으로 거둔 세금 380억달러의 용처를 밝히라고 거세게 압박하는 등 벌써부터 이번 지진 사태를 정치 쟁점으로 만들려는 태세다.

지진으로 가족 5명을 잃은 미카일 굴(53)은 NYT에 “20년간 에르도안 정부에만 표를 줬다”면서 “이번에는 절대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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