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

정희진 여성학자
[정희진의 낯선 사이]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은 옳은가. 만일 그렇다면 아픈 사람은 인생의 모든 것을 잃은 이가 될 것이다. 너무나 익숙한 이 통념은 건강하지 않은 이들의 사회적 성원권을 박탈하고 우리의 일상을 통제하는 이데올로기다.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재개념화가 필요한 시대다.

[정희진의 낯선 사이]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

정신질환 환자들이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진짜 아픈 사람은 저 사람(대개 ‘가해자’)인데, 병원은 왜 내가 다니지?” 건강 상태는 ‘전문가’의 진단, 개인의 감각에 따라 다르다. 육체적 건강에서 정신적 부분을 분리하는 사고방식부터 논쟁적이다. 어떤 상태가 건강한 것일까. 전두환씨의 건강이 ‘불편한’ 사람은 나뿐일까.

건강한 상태는 일상생활의 어려움과 사망의 연속선에 있는 몸의 일생을 계량하는 문제다. 정의하기 어려운 인간의 조건일 수밖에 없다. 건강이 개인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주관적, 경험적이다. 지구상에는 인구수만큼의 면역력과 내성(耐性)의 개수가 있다. 질병도 자신의 행방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몸, 환경, 질병의 삼라만상을 진단할 수 있는 명의는 없다.

누구나 쉽게 아프고 대개 만성 질환이다. 가장 난센스인 것은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가 아닐까. 감기도 우울증도 가볍지 않다. 고통스럽고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건강함과 그렇지 않은 상태, 양쪽의 범위가 모두 확대되어야 한다. 건강한 공동체는 건강의 구분이 흐릿한, 즉 ‘아픈’ 몸들이 가시화되는 사회다.

주변을 둘러보면 안 아픈 사람이 없는데도 아픈 사람을 이해하기보다 ‘안도감’과 피해 의식이 우리를 지배한다. 아픈 사람은 낙오자가 된다. 고령화 시대의 보험산업은 간병의 노동을 위로하기보다 공포를 조장하는 듯하다. 질병이 완치보다 평생 관리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는 이 시대에도, ‘암에 걸리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암 환자도, 장애인도, 질병과 장애의 경계에 있는 이들도 본인의 의사에 따라 ‘건강한’ 이들과 똑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일상이 최상의 민주주의다.

건강도 경쟁 시대인지라 사람들은 자기 건강을 위해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육체적 고통은 타인과 소통이 가장 어려운 영역이자 인간이 두려워하는 최고의 권력이다. 의사의 권력은 그들의 실력, 명예 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의사든 수많은 ‘유사(類似) 의사’든, 그들의 권력은 아픈 사람의 고통에서 나온다. 고문이 최고의 ‘극적(劇的’인 정치인 이유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의 범주는 빈부 격차로만 한정할 수 없다. 성별, 성정체성, 장애, 이주민, 인종, 외모, 지역 차별까지 다양한 약자가 가시화되고 있다. 하지만 ‘건강 약자’ 개념은 생소하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킬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도, 여전히 개인적 과제로 여겨진다. 건강도 계급에 따라 양극화한다. 사회·경제·심리적 약자는 건강 약자가 되기 쉽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기후 이상을 초래하고, 산불과 사막화는 생명의 멸종과 ‘건강 난민’을 양산하고 있다. 건강이 불가능한 시대에 건강 숭배가 강화되니 더욱 스트레스다.

안전, 안전 보장(그 유명한 안보)의 ‘본뜻(se/cure)’은 완벽한 준비로 근심이 없는 상태(free from care)가 아니라 상호 보살핌이 없는 상황(without care)을 뜻한다. 전자는 “물샐 틈 없는” 언설로 상징되는 기존 국제정치에서의 의미고, 후자는 여성주의를 비롯한 대안적 평화학 개념이다.

‘건강한 젊은이’가 ‘병든 어른’을 싫어하는 현상을 나는 이해한다. 타인의 앓는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누구나 나이 들고 병든다. 고령화 시대, 인간의 평균 투병 기간은 10년이다. 질병 사회는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무서운 팩트다. 시름을 나눌 수밖에 없다. 동병상련과 연대 외에는 대안이 없지만, 마스크 대란 같은 사태는 동병의 처지에도 상련하지 않는 인간의 비참함을 보여준다.

건강을 잃는다고 모든 것을 잃어야 하는 상황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정의롭지 못한 사회다. 건강을 잃는 것보다 건강과 젊음에 대한 지나친 찬양과 욕망으로 잃는 것이 더 많다.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는 ‘마음의 평화’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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