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고려장 부추길 민주당 공약 1호

더불어민주당이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를 총선 1호 공약으로 발표했다. 반가운 일이다. 간병인을 혼자 쓰면 한 달 간병비가 450만원, 간병인을 여럿이 나눠 써도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간병파산’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이니 간병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국민 부담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병원이 책임지는 게 당연한 간병을 환자가 개인적으로 간병인을 고용해서 해결하다보니 다른 나라에선 볼 수 없는 기이한 일도 적지 않다. 간병인이 제대로 환자를 돌봐주지 않아도 병원에 항변할 수 없고, 간병 교육을 제대로 받은 게 아니라 환자가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드물게는 환자를 학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간병비를 급여화해 병원이 간병을 책임지면 이런 일들은 없어질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 공약대로 요양병원 ‘간병비만’ 급여화하면 어떨 일이 벌어질까? 우리나라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인 10명 중 7명은 의학적으로 입원이 필요하지 않은, 건강상태가 나쁘지 않은 노인이다. 2022년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인이 약 300만명이니 이 중 210만명은 집에서 살 수 있는 노인이었던 셈이다. 심지어 10명 중 5명, 150만명은 장기요양등급도 받지 못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은 노인이었다.

그러면 왜 집에서 살 수 있는 노인들이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것일까. 첫째, 장기요양보험의 재가 서비스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은 노인이 집에서 살겠다고 하면 재가급여로 100만원 정도의 서비스를 받는 데 반해, 요양병원에 입원하면 건강보험에서 250만원을 진료비로 지급한다.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의 재가급여를 250만원까지 늘리면 요양보호사의 방문시간을 2배로 늘리고, 의사와 간호사가 한 달에 한두 번 왕진을 와서 건강을 관리해주고, 병원에 가야 하면 동행해주고, 도시락도 배달해주고, 집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집도 고쳐주는 것까지 할 수 있다. 지금 쓰는 돈으로도 노인들이 집에서 존엄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데, 정부가 집에서 살고 싶은 노인들의 등을 떠밀어 요양병원에 입원시키는 격이다.

둘째, 노인 돌봄 재정이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으로 이원화되어 있어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지 않은 노인도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요양보험은 건강상태가 나쁜 1~2등급 노인만 요양원에 입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장기입원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그런데 요양병원에는 장기요양등급이 없어도 입원할 수 있다. 요양병원이 장기요양보험에서 진료비를 받는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에서 진료비를 받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이 등급을 바탕으로 돌봄서비스 이용을 관리하는 국가의 노인돌봄 재정체계를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으로 재정이 이원화된 체계를 그대로 둔 채 ‘간병비만’ 급여화하면 국민들의 간병비 부담이 줄어들기는 하지만 덩달아 현대판 고려장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장기요양보험 재가 돌봄 급여가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요양병원을 선택하는 노인과 가족들이 지금보다 더 증가할 것이다. 이제까지 요양병원 간병비 부담 때문에 주저주저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판 고려장을 늘리지 않으려면 우선 노인들이 거동이 좀 불편하고 건강이 좋지 않아도 집에서 살기를 원하면 집에서 살 수 있도록 장기요양보험의 재가급여를 크게 늘리고 질도 높여야 한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집에서 돌봄을 받으며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한다. 올해 9월 내일신문에서 40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어디에서 노후 돌봄을 받고 싶어 하는지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노인 10명 중 7명은 집에서 노후를 보내기를 원한 반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입원하기를 원하는 노인은 10명 중 1명에 불과했다. 지금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노인도 10명 중 1명만 요양병원에서 계속 돌봄을 받고 싶어 했다.

민주당은 ‘간병비만’ 급여화하면 현대판 고려장을 부추긴다는 사실을 잘 몰라서 장기요양보험의 재가급여를 확대하는 공약은 쏙 빼고 요양병원 간병비의 급여화만 내세웠을까?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국민들의 간병비 부담이 9조원에 달하는데 달랑 시범사업 예산 80억원을 가지고 1호 공약이라고 내세우는 것은 전형적인 생색내기이다. 장기요양보험 재가급여를 확대하자고 하면 요양병원이 반대할 수 있지만, 어려운 정책이라도 국민들을 설득해서 정책을 만들어야 할 정당이 생색내기 포퓰리즘 정책을 공약 1호로 내세우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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