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부정한 35년의 세월···형제복지원 국가배상 소송 물꼬 트일까

이유진 기자    윤기은 기자
24일 중구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 생존자 연생모씨가 정근식 위원장의 발표를 들으며 괴로워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24일 중구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 생존자 연생모씨가 정근식 위원장의 발표를 들으며 괴로워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24일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함에 따라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손해배상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현행법상 과거사 피해자는 개별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해 승소해야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일괄 배상에 관한 법률을 마련해 과거사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를 도와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인근 형제복지원장에 대한 대법원 무죄 판결 이후 잊히는 듯했던 형제복지원 사건은 2018년 11월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부산사회복지연대가 형제복지원 수용자 126명의 신상기록 카드를 입수해 공개한 것이 계기가 됐다.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은 과거 검찰이 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데 대해 사과했다. 또 “(내무부) 훈령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한 판결은 법령 위반”이라며 사건을 비상 상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3월 비상 상고를 기각했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인정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의 비상상고 기각 직후 피해자들은 국가배상 소송에 나섰다. 이향직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대표는 회원 12명과 함께 지난해 5월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1월 생존 피해자 13명에게 국가가 25억원을 배상하라며 강제조정을 결정했으나, 지난해 12월 법무부가 이의신청을 해 조정이 결렬됐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한 국가 상대 손해배상소송은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3건,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에서 1건이 진행되고 있다.

답보 상태인 손해배상소송은 진실화해위 조사 발표로 물꼬가 트일 것으로 보인다. 서울·경기 피해자 협의회 소송 대리인인 문슬기 변호사(법무법인 승평)는 “법률대리 중인 사건 총 3건 중 2건만 기일이 열린 상태였고, 재판부에서 국가의 개입 여부에 대한 입증이 부족한 것 같다고 얘기하기도 했다”며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를 보고 다시 기일을 여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와 재판이 연기된 상태였다”고 했다. 문 변호사는 “국가의 개입 여부가 중요한 열쇠였던 만큼 이번 조사 보고서로 인해 국가의 위법행위 등에 있어서는 입증이 수월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개개인이 국가배상 청구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는 것은 한계로 지적된다. 이번 조사의 근거가 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 정리법)’은 우여곡절 끝에 20대 국회를 통과했지만, 배·보상과 관련한 내용은 빠졌다. 21대 국회에서는 피해자들에 대한 일괄 배상 및 시효 배제 등을 명시한 과거사 정리법 개정안이 7건 발의된 상태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실규명 대책위원장인 조영선 변호사는 “진실화해위 조사로 국가의 총론적 위법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큰 진전”이라면서도 “국가배상을 위한 소송 절차로 가면 개인이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입소 카드 분실 등으로 인해 입증이 어려운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특히 이 사건은 자력구제가 어려운 상황에 놓인 피해자가 다수라는 점에서 일괄 배상에 관한 법률로써 명예회복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와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피해자들이 명예를 회복하고 피해를 구제받는 일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30명을 대리하는 박태동 변호사(법무법인 일호)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사건의 발생 시기, 중요성, 피해자들의 연령과 건강 상태를 고려하면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적 해결은 이미 너무나 늦었음에도, 진실화해위의 권고사항 이행을 기다리려면 너무나 막연하고 멀다”며 “국가의 불법 행위가 확인됐고 사실상 그간 피해자들의 피해 호소에 대한 국가의 무대응으로 피해 배상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던 점 등을 고려해 현재 계류 중인 소송의 신속한 진행과 충분한 배상책 마련을 위해 범정부적 노력이 이뤄져야 마땅하다”고 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이채식씨(53)는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당장 살아가는 게 어려운 피해자들이 여럿”이라며 “당장이라도 먹고 살기 어려운 이들에겐 재판(배상청구)까지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배·보상 문제에 앞서 트라우마나 신체적 고통에 대한 지원이라도 먼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사건 관련 피해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는 지난 6월21일 부산시의회에서 통과된 ‘형제복지원 피해자 지원 개정 조례안’이 유일하다. 피해자들에 대한 의료비 지원 등 내용을 담고 있다. 형제복지원이 문을 닫은 지 45년이 지나서야 지자체 차원의 지원안이 나온 것인데, 부산시로부터 지원금을 받은 사례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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