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여전히 만원이다

양권모 편집인

아무리 땅을 넓히고 주택 공급을 늘려도 서울은 만원(滿員)일 수밖에 없다. 사람 나면 서울로 가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시절부터 ‘서울은 만원’이다.

“서울은 넓다. 아홉(현재 스물다섯) 개의 구에 가, 동이 대충 잡아서 380개(현재 522개)나 된다. 굉장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넓은 서울도 370만명(현재 972만명)이 살아 보면 여간 좁은 곳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꽉꽉 차 있다. 집은 교외에 자꾸 늘어서지만 연년이 자꾸 모자란다.”(1966년 이호철 장편 <서울은 만원이다>)

양권모 편집인

양권모 편집인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문화권력은 물론 모든 가치가 비정상적으로 집적된 서울은 쉼없이 사람과 돈, 자원을 빨아들였다. 이미 서울은 만원이던 1966년 370만명이던 인구가 1970년 500만명을 넘어섰고, 1988년에는 1000만명을 돌파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택지를 개발하면서 외연을 확장했으나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꽉곽 찼다. 급기야 경기도에 열서너 개의 신도시를 개발해 밀려드는 인구를 분산했지만 서울은 여전히 만원이다.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95%를 넘어섰지만 1966년 때처럼 ‘연년이 자꾸 모자란다’. 집값과 전셋값 때문에 서울 밖으로 이주한 가구들은 기회만 되면 서울로 진입을 준비한다. 특히 서울 부동산은 교환가치가 사용가치를 압도하는 시장이다. 서울 부동산에 대한 잠재 수요가 날로 확대되는 이유다. 역대 정권에서 10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나왔지만 서울의 집과 집값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서울과 수도권 초집중 체제를 바꾸지 않고서는 부동산 모순을 원천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수도권이 더 커졌다. 수도권 인구는 2596만명, 비수도권은 2582만명이다. 국토의 12% 땅에 인구의 52%가 거주한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이 한 도시와 그 주변에 몰려 사는 나라는 없다. 수도권 집중이 가속되는 건 서울이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가치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기업, 의료, 금융, 교육 등의 최고기관이 몰려 있다. 소위 상위권 대학의 80%, 100대 기업 본사 91%가 서울에 있다. 나라 전체 일자리의 54%가 서울과 수도권에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수도권으로 전입 사유는 직업, 교육, 주택 구입 순이다. 예나 지금이나 일자리를 찾으러,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집을 사기 위해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야 하는 세상이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그냥 두고는 어떤 주택, 인구, 교육, 환경 정책도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부동산 양극화는 피할 수 없다. 결국 장기적으로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집값 안정은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인구이동이 발생하지 않고 균형발전이 이루어질 때야 가능하다.

수도권 과밀 억제와 균형발전을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처음 행정수도 건설이 추진된 것은 박정희 정권 때다. “서울의 근본문제가 인구 증가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서울의 인구집중을 억제하는 가장 확실한 방안은 행정수도 이전입니다.”(1977년 2월 박정희)

그 “가장 확실한 방안” 행정수도 건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념에 힘입어 실현 목전까지 갔었다. 2003년 12월 ‘신행정수도건설 특별조치법’은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다. 서울에 집중된 가치를 분산시키고 이를 통해 수도권 집중 완화와 균형발전의 주춧돌이 될 행정수도는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막혔다. ‘경국대전’ 이래 관습헌법 위배라는 기이한 논리가 동원됐다. 분명 원래 계획대로 행정수도가 건설되었다면 수도권 과밀 해소와 균형발전은 더욱 큰 성과를 냈을 터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건설된 세종시는 어정쩡한 위상이다. 중앙부처의 3분의 2가 옮겨갔지만 정부의 핵심인 청와대와 국회는 서울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반쪽’ 행정수도로 인한 비효율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심대한 행정 비효율성을 시정하기 위해서도 ‘반쪽’은 해소되어야 한다.

2017년 대선에서 주요 후보들은 모두 세종시에 행정수도를 세우겠다고 공약했다. ‘행정수도 이전’에 여야를 떠나 어느 정도 공감대가 마련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공론화 과정 없이 ‘부동산 사태’ 해결을 앞세워 갑자기 행정수도 이전을 제기함으로써 ‘정쟁화’ 빌미를 제공한 것은 아쉽다. 그렇다고 행정수도의 대의가 부정될 수는 없다. 괴물스러운 ‘수도권공화국’을 해체하고, 헌법이 명한 국토의 균형발전을 이루고, 정부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행정수도 문제를 이번에는 매듭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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