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의 가르침’ 열풍 왜···‘라떼’는 싫지만 ‘길거리 지식’엔 목말라

이영경 기자
2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의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세이노의 가르침>이 올라있다. <세이노의 가르침>은 출간 5개월 만에 60만부를 발주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영경 기자

2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의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세이노의 가르침>이 올라있다. <세이노의 가르침>은 출간 5개월 만에 60만부를 발주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영경 기자

2023년 상반기 출판계를 휩쓴 책은 단연 <세이노의 가르침>(데이원)이다. 지난 3월2일 출간돼 5개월 만에 24쇄 60만부를 발주했으며, 주요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고 있다. 예스24, 교보문고 등의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도 <세이노의 가르침>이었다.

교보문고의 경우 17주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유시민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돌베개), 방탄소년단의 <비욘드 더 스토리>(빅히트뮤직)에 3주간 자리를 내준 뒤 다시 1위를 수성했다.

독자들의 연령대도 다양하다. 교보문고는 <세이노의 가르침>의 독자층이 30대부터 50대 후반까지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고 밝혔다. 알라딘 구매자 분포도 역시 20~50대에 걸쳐 있다.

“자수성가한 60대 흙수저 출신 남성의 이야기가 대체 왜 세대와 성별을 막론하고 불티나게 팔리는가?”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쓴 사회학자 양승훈은 ‘서울 리뷰 오브 북스’ 여름호에 “‘라떼’에 대한 혐오와 ‘길거리 지식’에 대한 갈증 사이, 세이노의 자리”란 글을 싣고 서점가에 부는 ‘세이노 열풍’을 분석했다. 양승훈은 “‘라떼’로 온 지면을 도배하고 있는 책 한 권이 서점을 강타하고 있다”며 “전무후무한 베스트셀러가 된 가운데, <세이노의 가르침>에 대한 사회적 반향도, 식자층의 진지한 비평도 찾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세이노의 가르침 제본판.

세이노의 가르침 제본판.

세이노는 누구인가

현재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No’라고 말하라(Say No)라는 뜻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세이노는 1955년생이다. 친부모의 사망으로 고등학생 시절부터 생활고에 시달렸으나 의류업·정보처리·외환투자·부동산 경매·주식으로 자산을 증식해 순자산 1000억원을 만든 자산가다. 데이원 출판사는 조선일보와 공동으로 세이노의 순자산을 검증했다고 한다. 60대 후반의 나이이니 그의 가르침은 젊은 세대에겐 ‘라떼’다.

심지어 ‘새로운’ 책도 아니다. 세이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언론에 기고해왔으며 독자들이 ‘세이노의 가르침’이란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고 그의 글들을 정리해 제본집을 만들었다. 2019년부터 제본판이 6600원에 판매됐다. 여기에 세이노가 새로운 글을 보태고 손봐서 정식 출간한 것이 <세이노의 가르침>이다.

데이원 출판사는 “자사에서 출판한 <내가 주식을 사는 이유>의 오정훈 작가와 <부의 수레바퀴>의 작가 ‘낯선 곳에서의 아침’ 모두 <세이노의 가르침>에서 배움을 얻었다며 인용했다. 제본서를 구해 읽어본 후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데이원은 “애당초 3000부 정도 제작해 오래 걸려도 다 팔게 되기를 바랐을 뿐, 이 정도의 호응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저렴한 가격과 매우 솔직한 내용이 인기 비결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세이노의 가르침>의 정가는 7200원이며, 전자책은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세이노의 글을 읽은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인터넷 카페 ‘세이노의 가르침 카페’. 인터넷 캡처

세이노의 글을 읽은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인터넷 카페 ‘세이노의 가르침 카페’. 인터넷 캡처

왜 세이노를 읽는가

양승훈은 세이노가 경험에서 우러나는 ‘구체적인 길거리 지식’을 제공한다고 분석한다. 세이노의 글은 위악적이고 욕설을 쓰기도 한다. 젊을 때는 건강 같은 건 챙길 필요가 없다면서 “건강하고 비전 없고 무능한 가난뱅이가 되기를 원하느냐”고 질타한다.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 되기 위해 ‘근무시간 외’를 활용하는 수밖에 없으며, 젊을 때 밤을 새워서라도 업무 지식을 습득하고 ‘노가다 지식’이라도 쌓아야 하는데 건강을 우선시할 새가 어디 있냐는 식이다. 양승훈은 “경매, 사업상 법정 분쟁 실무에 닳고 닳은 ‘빠꾸미’만 아는 길거리 지식으로 체화되고 자산 축적으로 증명된 그의 해석은 각종 전문적 지식이 제공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제공해주기도 한다”고 말한다. 세이노는 책에서 공무원 만나는 법, 좋은 변호사 만나는 법 등을 소개한다.

양승훈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주체의 탄생을 짚어내거나, 절망적 현실에 놓인 개인들을 달달 볶아대며 채근하는 태도를 폭력적이라 말해봐야 ‘세이노의 가르침’을 찾는 이들에게 아무런 가르침도, 반대로 위안도 줄 수 없다”고 말한다.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가난의 구조에 대해 날카로운 비평을 하는 사회과학자”의 이야기는 개인에게 생존술을 알려주지 못한다. 반면 세이노는 “낡고 투박한 잔소리 같아 보이지만 확실한 메시지”로 “선망 직장에 들어간 이들이 아닌 나머지 개개인의 생존술을 길거리 지식으로 전달한다”는 것이다.

세이노의 구멍, 지식의 구멍

양승훈은 ‘부자가 되기 위한 법’이라는 실용적 관점에서 <세이노의 가르침>에 누락된 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종잣돈을 준비하는 노하우는 전달하면서도 종잣돈이 큰 자산을 형성하는 과정엔 별다른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학습 능력 자체가 타고난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도 뺄 수 없다. “학습 능력은 부모의 학력, 소득, 주변 환경 등 사회적 맥락 때문이 아니더라도, 개별적인 편차가 크고 그 편차가 좁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세이노가 동의하지 않는 건강 문제도 학습 능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진입 장벽’이 낮은 점을 인기 이유로 꼽는다. 장 대표는 “매우 구체적인 재테크 팁을 알려주기보다는 오랫동안 멘토링을 해온 사람이 건네는 인생 가르침 같은 내용이라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것 같다”며 “세이노의 오래된 팬덤이 작동하는 것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양승훈은 “인간이 꼭 부자여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 지식을 습득한다 한들, 대단한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개인 생존술을 넘어 삶의 질의 평균을 높이고 편차를 줄이는 노력을 많은 지식인들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펼친다. ‘세이노 열풍’의 진짜 가르침은 “세이노의 길거리 지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지식 생산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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