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달’에서 ‘펜트하우스’까지… 소득에 따른 거주지 분리의 역사

심윤지 기자

“새벽부터 한밤까지 근심 잘 날 없어도 마음만은 부자라네 우리동네 달동네”

- 드라마 <달동네>의 주제가 일부

1980년부터 1981년까지 방영된 일일드라마 <달동네>는 제목 그대로 도시 고지대의 ‘달동네’를 배경으로 합니다. 아내와 사별하고 세무서 과장으로 정년퇴직한 ‘김과장댁’을 중심으로 방앗간을 운영하는 이무기댁, 이발소집 염병권댁 등 주변에서 평범하게 볼수 있는 여섯가구의 희노애락을 다룹니다.

‘달동네’는 당시에도 최하층 도시노동자들이 모여사는 주거공간이었지만, 드라마는 이곳을 부정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각박한 ‘서울살이’ 속에서도 넉넉한 고향 인심이 남아있는 포근한 공간이자, 머지 않아 ‘중산층’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것이라는 희망의 터전으로 묘사하죠.

드라마 <달동네>의 한장면. 유튜브 채널 <옛날TV : KBS archive> 갈무리. https://www.youtube.com/watch?v=ahijjFS_tIs

드라마 <달동네>의 한장면. 유튜브 채널 <옛날TV : KBS archive> 갈무리. https://www.youtube.com/watch?v=ahijjFS_tIs

“너는 인간 쓰레기야. 물론 나는 너보다 더한 쓰레기고.... 우린 결국 쓰레기통에서 만난거야... 난 지금 쓰레기통에서 나가고 싶을 뿐이야.”

- 드라마 <서울의 달> 중 주인공 흥식의 대사

군사독재정권이 막을 내리고 경제성장의 과실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던 90년대에 들어서자, 달동네에 대한 이미지는 달라집니다. 1994년 방영된 드라마 <서울의 달>은 달동네를 ‘탈출’하지 못하는 도시 빈곤층들의 어긋난 욕망을 그립니다.

한탕을 꿈꾸며 달동네 탈출을 바라는 제비족 홍식(한석규), 홍식에게 속아 서울에서 상경한 고향친구 춘섭(최민식), 대학나온 남자와의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을 하려는 영숙(채시라) 등 … 이들은 도시화의 낙오자이자, 산 아래의 외부세계와 격리된 하층민들로 묘사되죠.

이는 1980년대 중후반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강남개발과 도시재개발, 대규모 주택 공급에서 달동네 거주민들이 소외되고 분리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드라마 <서울의 달>의 한장면. 유튜브 채널 <옛드:MBC 레전드 드라마> 갈무리 https://www.youtube.com/watch?v=J0FPpasyx6w&t=4

드라마 <서울의 달>의 한장면. 유튜브 채널 <옛드:MBC 레전드 드라마> 갈무리 https://www.youtube.com/watch?v=J0FPpasyx6w&t=4

“전 우리 SKY캐슬이 아이들 교육시키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라 그게 제일 마음에 들어요”

- 드라마 중 주인공 서진의 대사

아파트라는 주거양식이 일반화된 2000년대는 어떨까요. 가난한 주인공이 비좁은 옥탑방에 사는 드라마가 종종 등장하긴 했지만, 80~90년대와 같이 빈곤층 밀집지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점차 자취를 감췄습니다. 대신 <SKY캐슬>과 <펜트하우스>처럼 강남 지역 상류층 거주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가 연이어 인기를 끌었죠.

이곳에 사는 거주민들은 변호사·의사 등 ‘엘리트 계층’으로, 부동산을 통해 부의 축적을 이루고 계층 세습을 위해 자녀 교육에 집착하는 인물들로 그려집니다. 스스로를 선택받은 특권층으로 여기는 주민들은 오윤희의 딸 배로나(펜트하우스), 강예서의 라이벌 김혜나(SKY캐슬)와 같은 ‘외부인’의 존재를 ‘침입’으로 간주하고, 이들에 대한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를 숨기지 않습니다.

드라마 <SKY캐슬> 예고편 한장면. 유튜브 채널 ‘JTBC Drama’ 갈무리 https://www.youtube.com/watch?v=1aQA8094U-s

드라마 <SKY캐슬> 예고편 한장면. 유튜브 채널 ‘JTBC Drama’ 갈무리 https://www.youtube.com/watch?v=1aQA8094U-s

거주지 분리, ‘저소득층’에서 ‘고소득층’ 중심으로

국토연구원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 <소득불평등과 거주지 분리의 특성 및 변화>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이후 방영된 TV 드라마를 통해 ‘소득수준에 따른 거주지 분리’ 현상을 통시적으로 고찰해냅니다. 그리고 거주지 분리의 주체가 ‘저소득층’에서 ‘고소득층’으로 바뀌고 있다는 특징을 발견해내죠.

뉴타운(재개발)사업 직전의 아현동 달동네 모습.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뉴타운(재개발)사업 직전의 아현동 달동네 모습.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보고서가 당시 신문기사를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198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이촌향도(도시유입인구 급증) 흐름 속에 처음 등장한 ‘판자촌’은 1990년대 초반까지도 다수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신도시 중심의 대규모 택지개발과 주택공급이 이루어지면서, 소득수준에 따른 거주지 분화와 이로 인한 갈등도 표면화되기 시작합니다. 택지 개발 과정에서 달동네 일부는 강압적으로 해체됐고, 신도시와 구도시, 민영아파트와 임대아파트 차별이 사회 문제로 등장했습니다. 주택 가격 급상승기였던 2000년대 이후로는 이른바 ‘타워팰리스’ ‘강남 8학군’으로 상징되는 배타적인 상류층 거주지가 본격적으로 형성됐고요.

보고서는 이러한 양상을 실증적인 수치로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전체적인 소득불평등은 다소 완화됐지만 소득수준에 따른 거주지 분리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7년 전국 시군구 평균 소득지니계수는 0.514였는데, 2021년에는 약 0.470으로 다소 감소했습니다. 소득지니계수는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하다는 뜻으로, 4년전보다 수치가 감소했다는 것은 소득 불평등이 일부 완화됐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반면 국토연이 개인소득빅데이터(KCB·Korea Credit Bureau)를 활용하여 시군구 단위에서의 거주지 분리 정도를 측정한 결과, 거주지 분리 지수는 2017년 0.013에서 2021년 0.015로 4년 전보다 다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역별로는 광역시의 거주지 분리지수가 0.019(2021년 기준)로 가장 높았고, 수도권은 0.018, 비수도권은 0.013이었습니다. 소득에 따른 ‘끼리끼리’ 현상이 광역시·수도권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죠.

보고서는 “2009년 이후 소득불평등 수준이 개선됐는데도 불구하고 소득 수준에 따른 공간 분리 정도는 오히려 높아졌다”며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 거주지의 분리가 이런 변화를 주도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2017년~2021년 사이 신규 주택 공급이 소득 수준에 따른 공간분리를 다소 완화하는 효과를 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게이티드 커뮤니티’의 등장, 어떻게 봐야할까

최근 고소득층 중심으로 나타난 공간적 분리를 정책적으로 막는 것이 가능한지, 규범적으로 바람직한 것인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압적이고 물리적인 계층 혼합은 보이지 않는 차별과 낙인효과 심화, 사회 갈등의 심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고요.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본격화한 ‘게이티드 커뮤니티’(단지에 보안장치나 물리적 장벽을 설치해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막는 것)의 확산은 “시민 모두가 공통적으로 누려야 하는 도시 경관에 대한 접근을 직간접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우려합니다. 예를 들어 ‘한강 경관’을 공공재로 인식할 것인가, 사유재로 인식할 것인가에 따라 재건축 층수 규제 이슈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교통이나 교육 등 사회서비스가 구매력이 높은 고소득계층의 거주지 중심으로 집중되면 될수록, 저소득층의 이동비용 부담도 증가할 수 있고요.

독자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댓글로 의견을 남겨주세요.


Today`s HOT
홍수 피해로 진흙 퍼내는 아프간 주민들 총선 5단계 투표 진행중인 인도 대만 라이칭더 총통 취임식 라이시 대통령 무사 기원 기도
이라크 밀 수확 안개 자욱한 이란 헬기 추락 사고 현장
2024 올림픽 스케이트보드 예선전 폭풍우가 휩쓸고 간 휴스턴
연막탄 들고 시위하는 파리 소방관 노조 총통 취임식 앞두고 국기 게양한 대만 공군 영국 찰스 3세의 붉은 초상화 개혁법안 놓고 몸싸움하는 대만 의원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