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오염수’ 없는 총선

이정호 산업부 차장

조용하다. 한 달도 안 남은 총선에서 온갖 이슈가 터져 나오지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관한 얘기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일본 정부가 오염수를 처음 바다에 방류한 것은 지난해 8월이었다. 당시에는 이 문제가 올해 총선의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일례로 첫 오염수 방류를 한 주 앞둔 시점에 한 일본 언론이 “한국 정부와 여당 내에서 일본 오염수 방류가 불가피하다면 총선에 악영향이 적도록 방류를 빨리하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당시 한국 정부 당국자는 “일본 측에 조기 방류를 요청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해당 보도를 적극 부인했다. 지난해 오염수 방류의 위험성을 제기하는 야당과 ‘과학적인 대응’을 주장하는 여당의 대립 전선은 한국의 삼복더위보다 뜨거웠다.

이랬던 상황이 무색하게도 지금 국내 정치권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얘기를 꺼내는 경우를 찾기는 어렵다. 이유가 뭘까.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일이 생기는 한국 정치 풍토 속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총선 국면에서 다룰 ‘핫이슈’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총선 공약집을 보면 주요 정당 가운데 녹색정의당, 더불어민주연합, 진보당이 후쿠시마 오염수를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오염수의 해양 투기 금지를 위한 국제법상 요구를 한다거나 국내 어민을 지원하겠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다만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부족하다. 해당 공약의 순위도 전체 공약 가운데 꽤 뒤로 밀려 있다. 하지만 그나마 이 정도도 다행이다. 다른 대부분의 정당에선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관심을 찾기 어렵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간단히 넘길 일이 아니다. 만성적인 위험 가능성 때문이다. 과학계가 현재 가진 방사능 위험 평가체계의 기준은 ‘급성 피폭’이다. 급성 피폭은 인체가 강한 방사능을 짧은 시간에 쪼인 상황을 말한다.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폭발 현장에서 수일 동안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런데 수십년 동안 낮은 강도의 방사능에 노출됐을 때, 즉 ‘만성 피폭’에서 인간 신체가 어떤 변화를 겪을지 정확히 알아본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실험은 불가능해서다. 방사능에 노출된 수산물을 장기간 섭취했을 때 무슨 문제가 있을지는 확실히 모른다는 뜻이다. 후쿠시마 오염수가 섞일 태평양이 넓기는 하지만, 그것이 오염수로부터의 안전을 보증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내 일부 전문가들은 오염수 방류가 금세기를 넘길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오염수를 생성하는 근원인 후쿠시마 원전 내 방사성물질을 신속하고 깔끔하게 치울 만한 기술이 현재로서는 없어서다. 일본 정부가 제시한 ‘향후 30년 방류’조차 너무 낙관적이라는 시각이다. 한국 등 주변국에서 언제까지 만성 피폭을 걱정해야 할지 불확실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 17일 후쿠시마 오염수의 4번째 방류가 끝났다. 1차 방류부터 지금까지 총 3만1200t의 오염수가 바다로 나갔다.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라면 미래 세대가 살아갈 한국을 위한 주제를 선거에서 제기하고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그것이 국민에게 권력을 위임받아 나라를 운영하겠다는 정당과 국회의원 후보들의 태도가 아닐까.

이정호 산업부 차장

이정호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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