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탈서울공화국

‘길과장’은 오늘도 상경 출장…세종 시대 8년, 행정 비효율 여전

허남설 기자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후 중앙행정기관들 줄줄이 이전

잦은 상경 출장에도 정책 관련자와 대면접촉·토론 줄어 부작용

서울 종속 벗어난 자족도시 되기 위해선 일자리 창출 등 필요

완전한 행정수도 되려면 청와대·국회 이전도 해법으로 꼽혀

국무조정실·기획재정부 등 주요 중앙행정기관 대부분이 세종으로 이전한 지 올해 8년이 넘었지만, 세종은 여전히 청와대와 국회, 외교부·국방부 등 일부 부처가 남은 서울에 행정적으로 종속된 도시다. 사진은 지난달 23일 촬영한 정부세종청사 전경.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국무조정실·기획재정부 등 주요 중앙행정기관 대부분이 세종으로 이전한 지 올해 8년이 넘었지만, 세종은 여전히 청와대와 국회, 외교부·국방부 등 일부 부처가 남은 서울에 행정적으로 종속된 도시다. 사진은 지난달 23일 촬영한 정부세종청사 전경.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세종특별자치시는 정부가 권력과 자원을 동원해 조성한 기획 도시다. 2012년 특별자치시 출범 이후 3년 동안 국무조정실 등 중앙행정기관들이 줄줄이 이전했다. 지난해 행정안전부가 이전한 뒤 서울에 남은 부처는 외교부와 국방부 정도다. 한국개발연구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 15개도 세종에 있다.

세종의 도로망은 대전, 청주 등 주변 대도시와 고속철도(KTX) 역사로 연결된다. 인구는 10월4일 기준 35만3000명으로 2012년(11만5000명)의 3배 이상으로 불었다. 세종은 사실상 행정수도로서 외관을 갖췄다.

하지만 ‘국토 균형발전’이란 명분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여전히 논쟁 대상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를 내세웠지만, 현실에선 150㎞ 떨어진 서울에 종속적이다. 행정부를 통할하는 청와대, 행정부를 감시·견제하는 국회와의 관계 때문이다. 행정부는 청와대에 보고하고, 국회와 조율할 의무가 있다. 균형발전 논리로 행정부 건물을 세종에 몰아서 세웠지만, 권력구조 때문에 행정부 사람은 서울에 있어야 한다. 세종에 ‘길과장’(길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과장), ‘카국장’(카카오톡으로만 보고를 받는 국장)이 많은 까닭이다.

장관은 보통 서울사무소에 상주하고, 실·국장은 매일같이 서울과 세종을 오간다. 과장급 이하 공무원들은 장관은 물론 실·국장도 만나기 힘들다. 세종 근무일수가 공무원 급수에 비례한다는 말도 나온다. 2급 국장은 주 2일, 3급 과장은 주 3일 세종에서 일한다는 이야기다. 고위급과 하위급이 얼굴을 마주하는 회의는 거의 없고, 보고서 결재는 쌓아뒀다가 기회를 봐서 한꺼번에 받는다. 2016~2018년 중앙부처 공무원 출장 횟수가 86만건, 소요 비용이 900억원을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서울행 버스로 향하는 퇴근길 정부세종청사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지난달 23일 업무를 마치고 서울행 버스로 향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서울행 버스로 향하는 퇴근길 정부세종청사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지난달 23일 업무를 마치고 서울행 버스로 향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행정 중심지’ 세종에서 발생하는 ‘행정 비효율’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다만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 당시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는 오송에, 인력과 자료는 세종에, ‘정부 컨트롤타워’는 서울에 각각 떨어져 조기 수습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공직사회에 경고음이 울렸다. 이러한 비효율이 국민이 체감하는 정책의 문제가 될 가능성을 본 것이다. ‘정책 품질’에 미치는 악영향을 주목하는 연구 결과도 잇따라 나왔다. 공직사회 내 상호작용이 줄면서 실제 정책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김찬우 금강대 공공정책학부 교수는 논문 ‘행정기관의 세종시 이전이 정책 결정의 질에 미치는 효과’(2019년 8월)에서 행정기관의 세종 이전 여부가 공무원 조직 내 의사결정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2018년 11~12월 당시 세종시로 이전을 마친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보건복지부 등 6개 부처와 서울에 남았던 행정안전부·통일부 등 4개 부처의 국·과장, 실무자급 공무원 2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다. 의사결정에 필요한 대면접촉, 집단토론, 보고서 검토 등의 빈도를 주요 지표로 삼아 ‘이전 기관’(세종)과 ‘잔류 기관’(서울)을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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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는 뚜렷했다. 이전 기관 공무원들은 동료 공무원이나 연구기관, 외부 전문가 등 정책 관계자들과 접촉한 횟수가 현저히 떨어졌다. 이전하기 전 주당 평균 2.35회에서 이전 1년 만에 1.95회로 감소한 뒤, 조사 시점까지 1.90회로 다시 줄었다. 반면 잔류 기관 공무원은 2.20→2.12→2.08회로 낙폭이 크지 않았다.

회의 횟수도 줄었다. 이전 기관은 평균 2.58→1.95→1.90회로 떨어졌고, 잔류 기관은 2.10→1.95→1.98회로 변동했다. 보고서를 검토한 횟수는 이전 기관에서 보고서 한 건당 2.20→1.70→1.65회로 줄었다. 잔류 기관은 1.98→1.81→1.78회로 비교적 소폭 줄었다. 김 교수는 “대면접촉과 집단토론의 기회 감소가 정책 결정의 질에 부정적 효과를 미쳤다”고 결론냈다.

당사자들의 증언도 김 교수가 계량화한 결과와 다르지 않다. 한국행정연구원은 2017년 10월 장관·공무원 심층 대담을 바탕으로 정책 결정 과정을 분석한 보고서 ‘중앙부처 세종시 이전 이후 정책 결정 과정 실태조사’를 펴냈다. 공무원들은 ‘설익은 정책’이 나올 가능성을 우려했다.

“회의를 거치며 정책을 보완하는데, 상급자 출장이 잦아 체크포인트 10개 중 7개밖에 고려하지 못한다. 원샷(one shot) 회의로 끝낼 수밖에 없다.”(산업통상자원부 실장)

“장차관 주재 정책 토론, 미팅은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이 실종됐다는 의미다.”(교육부 실장)

“피드백(feedback)의 질이 떨어졌다. 서면, 전화, SNS를 활용하지만 쌍방향 소통과 깊이 있는 검토엔 어려움이 있다.”(고용노동부 실장)

“회의를 하려 해도 A국장은 서울에 있고, B국장은 이동 중이며, C국장은 세종에 있으니 성원이 잘 안 된다.”(문화체육관광부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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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문제는 코로나19 확산처럼 전례가 없고 긴급한 과제를 맞닥뜨릴 때다. 연구자들이 ‘비정형적 정책 결정’이라고 부르는 경우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나 입국 제한 같은 조치는 방역의 관점뿐만 아니라 경제와 외교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정책 집행과 효과 발생까지 걸리는 시간도 변수가 된다. 거리 두기를 시행한 날 바로 방역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재난지원금 예산을 편성해도 실제 집행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적절한 시기에 정확한 정책 결정을 내리는 일은 여러 부처 당국자와 전문가에게 높은 수준의 협업과 토론을 요구한다.

행정연구원 대담에서 한 국무조정실 국장급 인사는 “(세종으로 이전한 후) 심층 토의가 곤란해졌다. 일상적 정책에선 크게 체감되지 않지만 AI(조류인플루엔자)나 메르스 대처 속도와 정확성엔 네거티브 이펙트(negative effect·부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보고서는 “대면접촉과 집단토론 기회, 직무 투입과 심층 검토 가능성이 줄어 판단의 정확성, 적시성을 확보하기 어렵게 됐다”며 “궁극적으로 정책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에 참여한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는 “현재 세종은 집단지성을 쌓아 새로운 대안을 만들려는 시도가 거의 안 통하는 구조”라며 “코로나19 확산 같은 새로운 상황에선 고도의 정책 결정이 필요한데, 시기를 놓치거나 정확도가 떨어지면 국민이 피해를 입는다”고 말했다.

해법으로는 청와대와 국회 이전이 꼽힌다. ‘완전한 행정수도’ 건설이다. 여당이 최근 쟁점화하고 많은 행정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방안이다. ‘서울 회귀론’에 비해 보다 현실적이고, 균형발전을 고려한다는 명분에도 부합한다. 국회는 ‘세종의사당’을 세우는 분원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청와대 이전은 개헌과 높은 반대 여론을 극복해야 하지만, 여야가 합의하면 곧 풀릴 문제라는 관측이 많다.

다만 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행정수도는 그 자체로 지속 가능한 도시가 될 것인가’란 점이다. 올해 15년째를 맞은 혁신도시가 남긴 교훈 때문이다. 행정수도는 전국 혁신도시 10곳과 입지와 규모만 다를 뿐 공공기관 이전으로 지방도시 발전을 꾀한다는 동기는 같다. 정동만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6월 혁신도시 공공기관 직원 중 기혼자 가족동반 이주율은 52.3%로 절반 수준이다. 충북(28.6%), 경북(36.6%), 강원(42.9%) 등 이주율이 저조한 혁신도시는 주말에 ‘유령도시’로 불릴 정도다.

정부도 “그간 공공기관 이전에 역점을 두면서 혁신도시 자체 발전동력 확보는 다소 미흡했다”고 자성한다. 공공기관 이전의 한계는 입증됐다. 관건은 인구 유입을 이끌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에 중점을 둔 민간 산업과 교육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국토부 혁신도시발전추진단은 현재 ‘산·학·연 클러스터’ 구축을 통한 지역 특화산업 발전 등 ‘혁신도시 시즌2’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7월 말 발표한 혁신도시 활성화 방안도 지역 산업과 지역 인재 육성에 초점을 뒀다.

세종도 아직 민간기업 유입이 활성화됐거나 지역 산업 생태계가 조성된다는 징후가 뚜렷하지 않다. 고위급 공무원들은 교육 문제를 들어 서울에 가족을 남겨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울대 등 대학과 연구기관을 유치해 세종에서도 산·학·연 연계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세종이 하나의 도시로서 존속해야 균형발전 핵심축이란 다음 목적도 이룰 수 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세종은 주민 1명당 최다 행정기능이 집중된 곳이지만, 서울처럼 문화와 상업 등 여러 기능이 융·복합되면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도시가 됐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균형발전 촉매제로서 공공기관 이전에 더해 정부가 ‘앵커기업’ 이전에 힘을 쏟는 등 일자리 창출 기능을 강화하는 조치들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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